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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 언니가 날 기억할까?’
지난 9월 18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진행된 영화 ‘그랑프리’ 특별 시사회 현장. 주연 배우 김태희 씨에게 전할 꽃다발을 꼭 쥔 채 객석에 앉아 있던 이희연 양(8세)의 가슴이 기대와 설렘으로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이날 시사회는 김태희 씨가 자신이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의 난치병 어린이와 가족,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 잠시 후 무대 인사를 위해 모습을 드러낸 김태희 씨 앞에 희연이가 다가가 꽃다발을 내밀었다.
“희연아, 고마워. 어머! 머리에 핀도 꽂았네?”
한눈에 희연이를 알아본 김태희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가워했다. 그리곤 이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희연이의 손을 꼭 잡았다. 8개월 만의 만남이었다. -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해 10월 희연이가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소원 성취 기관인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문을 두드리며 시작됐다. 그해 초 ‘횡문근육종’이란 희귀 소아암 진단을 받아 병원에서 항암 치료 중이던 희연이가 “예쁘고 멋진 김태희 언니와 함께 신데렐라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싶다”며 소원 신청을 한 것이다. 어머니 최숙자 씨(34세)는 “당시 희연이에겐 김태희 씨가 나오는 드라마 ‘아이리스’를 보는 게 투병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며 “하지만 워낙 유명하고 바쁜 스타라 만남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 생각지도 못했던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희연이네 집으로 날아들었다. 희연이가 꿈에도 그리던 김태희 씨를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위시데이’(소원을 이루는 날)는 희연이의 두 번째 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을 앞둔 1월 19일로 정해졌다. 희연이가 이식을 받기 전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김태희 씨가 자신의 일정을 조정해준 덕분이었다.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위시데이가 찾아왔다. 자원 봉사자 언니 오빠들의 안내를 받으며 아침 일찍 미용실로 간 희연이는 언니 희선, 동생 희주와 함께 깜짝 변신을 시작했다. 얼굴엔 곱게 화장을 하고, 하늘하늘한 푸른색 공주 드레스도 차려입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대신해 가발까지 쓰자 정말 신데렐라가 된 듯 몰라보게 예뻐졌다.
재단의 소원천사로 봉사하는 사진작가 권영호 씨의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긴 희연이가 두세 컷쯤 독사진을 찍었을 때, 스튜디오 문이 열리며 김태희 씨가 들어왔다.
“네가 희연이구나? 사진 너무 예쁘게 잘 찍는데?”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김태희 씨 앞에서 희연이는 그만 ‘얼음’이 되고 말았다. 곧이어 본격적인 사진 촬영이 시작됐지만 희연이는 좋아하는 스타 앞에서 긴장을 풀지 못하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희연이를 위해 이번에도 김태희 씨가 먼저 다가섰다.
“많이 긴장되지? 그럼 언니 하는 포즈 그대로 따라서 해볼래?”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고, 허리에 양손을 얹고,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는 김태희 씨를 따라 희연이가 덩달아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어색하던 스튜디오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고 둘은 마주 보며 신나게 사진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난 뒤 김태희 씨는 희연이에게 자신의 사인과 짧은 편지가 적힌 수첩을 선물했고, 희연이도 그림과 편지를 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 뒤, 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할 때 희연이는 이날 선물로 받은 수첩을 가장 먼저 짐 속에 챙겼다. 이식을 앞두고 일반 항암 치료 때의 10배에 달하는 독한 항암제를 맞으면서도 수첩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위시데이의 행복한 추억 덕분에 아이가 힘겨운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고마움과 감동으로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또 한 번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올 4월 검사에서 희연이의 몸에 종양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태희 언니가 수첩에 ‘빨리 건강해져서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글을 적어줬어요. 그 글을 보며 힘을 내 치료를 받았는데, 이번에 정말 건강해진 모습으로 언닐 다시 만나게 돼 무척 기뻤어요. 저도 마음씨 고운 태희 언니를 본받아 아픈 사람들을 돕고 낫게 해주는 천사표 간호사가 될 거예요.”
"소원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난치병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서 ‘소원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원 신청 대상: 만 3~18세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동·청소년
△문의: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www.wish.or.kr) / 02-3453-0318
[소원을 말해봐] "아플 때마다 힘이 될 '추억' 생겼어요"
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
희귀 소아암 투병 중인 희연 양
"태희 언니 본받아 건강해져서 아픈 사람 돕는 간호사 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