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프로그램… 교육 인프라 2% 부족하다
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
기사입력 2010.08.18 10:01

[특별기획] 국내 박물관 교육의 명암 -(上) 프로그램 '봇물'… 문제점은?
전문 인력 부족·단순 체험에 그쳐… 학교 교과 과정과 맞물려 진행해야

  • 방학 때 유난히 바빠지는 곳이 있다. 박물관도 그 중 하나다. 단순히 유물을 보존하고 감상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는 어엿한 배움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어린이에게 지식을 채워주고 세상 보는 눈을 넓혀주는 박물관 교육,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을까? 국내 박물관 교육의 현황과 문제점, 대안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박물관 교육이란 소장품 감상과 체험 등 박물관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예술·역사 전반에 대한 안목을 길러주는 교육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박물관 교육이 활성화된 건 최근 5년 사이의 일. 2010년 8월 현재 한국박물관협회에 등록된 약 600개(국립 34개·공립 128개·사립 315개·대학 111개)의 박물관 중 상당수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본 적이 있거나 현재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요즘 같은 방학 기간엔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이 부쩍 늘어난다. 하지만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 일러스트=한규화
    ▲ 일러스트=한규화
  • “박물관 교육, 어딜 가나 똑같아!”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최모 씨(42세)는 최근 초등학교 2·3학년에 재학 중인 자녀를 데리고 서울에서 진행되는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크게 실망하고 돌아갔다. 박물관의 특성과 직접 관련이 없는 ‘만들기 체험’만 가득했던 것. 최 씨는 “부산에 박물관이 몇 군데 없어 큰맘 먹고 서울까지 갔는데 박물관 소장품에 대한 관람이나 설명은 수박 겉핥기로 짧게 끝나고, 문화센터에서도 흔히 할 수 있는 ‘만들기’만 하다 돌아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전기선 박사(박물관교육 전공)는 “박물관들이 너도나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중복되는 내용이 많고 단순한 공예체험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며 “박물관 프로그램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교육’으로 이어지려면 각 박물관이 자체적 특성을 살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

    전문가들은 특히 우리나라 박물관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박물관 내 교육 전담 인력의 부족을 꼽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교육 담당 조혜진 씨는 “국립박물관이나 규모가 큰 사립미술관을 제외하면 박물관 교육 전문가가 배치된 곳이 거의 없고, 큐레이터(학예연구사)가 전시에서부터 교육까지 모두 맡아 진행하는 곳이 많다”며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5명의 정규직 교육 전문 인력이 배치돼 있어 비교적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한 사람이 연구·기획에서 운영까지 맡아야 하는 프로그램 수가 많아 이마저도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반면, 박물관 교육 선진국인 미국은 아무리 소규모의 시골 박물관이라 하더라도 최소 1명 이상의 교육 담당자가 배치돼 있을 정도로 전문 인력이 잘 갖춰져 있다. 특히 미국 5대 박물관에 꼽히는 게티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경우 각각 70명과 50명 이상의 교육 전문가가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전주박물관 교육 담당 김은영 씨는 “큐레이터가 전시 중심이라면 박물관 교육 전문가는 대상자를 고려해 전시를 교육적으로 풀어가는 사람”이라며 “박물관 교육이 유물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전문가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영국의 과학박물관에서어린이들이 커다란 관을 통해 소리의 전달을 배우는 '에코 튜브'를 체험하고 있다. / 영국 과학박물관 제공
    ▲ 영국의 과학박물관에서어린이들이 커다란 관을 통해 소리의 전달을 배우는 '에코 튜브'를 체험하고 있다. / 영국 과학박물관 제공
    박물관 교육과 학교 교육은 별개?

    박물관 교육이 학교 교육과 연계성 없이 따로따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영국의 경우, 학교 교육과정에서 박물관 부문을 제외할 수 없을 만큼 박물관 교육이 확고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학교와 박물관 간 연계 교육이 적극적으로 장려되는 건 기본. 학교와 연계가 잘된 박물관에 대해선 제도적 혜택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 이곳에선 모든 전시 프로그램이 학교 교과 과정과 맞물려 진행된다. 박물관은 5단계로 구분된 교과 과정 주요 단계에 따라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각 학교에선 박물관 프로그램 일정을 미리 살펴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박물관은 학교가 하지 못하는 현장 학습의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학교 교육을 보완할 수 있다”며 “특히 역사·미술 교과는 박물관 교육과 연계할 경우 큰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교육과학기술부 등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