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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인의 축구 축제 남아공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 7월 5일. 대한민국 U-20 여자 축구대표팀은 독일에서 열리는 2010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참가를 위해 조용히 짐을 꾸렸다. 이들에게 관심을 보인 취재진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선수들은 “다들 알지도 못하는 월드컵을 우리끼리 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남녀 한국 축구 사상 최초 FIFA 주최 대회 3위. 지난 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선수들은 수십명의 취재진과 400여 명의 팬으로부터 뜨거운 환영 인사를 받았다. 대표팀의 중심엔 이번 대회서 8골을 터뜨리며 실버볼(우수 선수상)과 실버부트(득점 2위상)를 거머쥔 지소연 선수(19세·한양여대)가 있었다. ‘여자 박지성’ ‘지메시’란 별명으로 더욱 유명해진 지소연 선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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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성적을 거둔 소감이 궁금해요.
“남자축구에 비해 여자축구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해요. 더구나 6월은 월드컵이 있는 달이어서 U-20 여자월드컵이 전혀 주목받지 못했죠. 이번 대회에서 열심히 뛰어 한국 여자축구를 좀 알린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축구공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공 차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서울 이문초) 2학년 때 남자애들과 축구를 하는데 머리가 짧아서 그랬는지 감독님이 축구부원 모집 글을 보여주며 가입하라고 권유하셔서 정식으로 축구부에 가입했어요.”
지 선수는 초등학생 시절 남자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팀 내 유일한 여자 선수였지만 타고난 재능에 지독한 연습벌레라고 불릴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던 그녀는 5학년 때부터 ‘베스트11’로 뛰었다.
-어머니 얘길 할 때마다 눈물을 보이던데요.
“글쎄. 엄마 얘기를 하라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어요. 그냥 눈물부터 나요. 어떤 분은 그런 절 보고 효녀라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웃음). 엄마가 나랑 동생을 위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지 선수의 어머니 김애리 씨(43세)는 작은 봉제공장에 다니면서 지 선수와 남동생을 키웠다. 2002년부터 자궁암과 난소종양 등 잇따른 발병으로 병원을 드나들면서도 두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공장 일을 멈추지 않았다. -
-여자 축구가 활성화되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우선은 환경이 변해야 해요. 요즘은 초등팀·대학팀 할 것 없이 위기거든요. 여자축구를 하려는 아이도, 시키려는 부모도 없다 보니 선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팀 운영을 위한 자금 사정도 어렵죠. 여자 축구선수도 진로가 보장되고 자기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또 절 보고 축구의 매력을 알고 하고 싶어하는 후배가 많아졌으면 하고요.”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거듭났는데, 앞으로의 계획은요.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라니 쑥스럽네요. 앞으로의 꿈은 미국 리그에 진출하는 거예요. 이번 대회 때 축구협회에 계신 어떤 분이 미국팀 감독에게서 “(지소연은) 미국에 진출해도 전혀 무리 없는 선수”란 얘기를 들으셨대요.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고 돌아온 것 같아 뿌듯해요.”
-태극전사로서의 목표는 뭔가요.
“2015년 여자월드컵(성인)에서 뛰는 거예요. 지난 5월 여자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내년 독일 대회는 못 나가거든요. 하지만 2015년이면 스물 네 살이니까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초등 선수로 뛰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할게요.
“힘들 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축구가 진짜 좋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 흘린 땀방울만큼 보답받을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 다 같이 열심히 뛰어요. 모두 파이팅!”
[The 인터뷰] 한국 축구 역사 새로 쓴 '지메시' 지소연 선수 "초등 때무터 남(男) 못지 않았어요"
조찬호 기자
chjoh@chosun.com
여자 축구부 없어서 남자들과 운동… 3년만에 '베스트11'로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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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볼·실버부트상 받아
성인 월드컵·美 진출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