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배 작가의 맛 이야기] 죽과 봉이 김 선달(상)
기사입력 2010.07.18 00:01

봉이 김 선달, 얄미운 손님에게 쉰 죽을 내어주며
"초 안친 팥죽 한 그릇 대령이오~"

  • 삽화=양동석
    ▲ 삽화=양동석
    꾀 많은 봉이 김 선달이 평양에서 죽 장사를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김 선달이 대동강 나루에 죽집을 차렸습니다. 이 집의 간판 메뉴는 녹두죽이었는데, 제법 맛이 있어 단골손님들이 꽤 있었습니다. 단골손님들 가운데는 산골에서 돈푼깨나 만지는 지주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산판과 돌밭을 가지고 있어 산골 마을에서는 부자 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산골 지주는 이따금 소작인들을 거느리고 평양을 찾았습니다. 산판에서 거두어들인 나뭇짐을 배로 실어와 평양 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을 끝내면 산골 지주 일행은 김 선달네 죽집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산골 지주가 어찌나 인색한지, 힘든 일을 한 소작인들에게 반 그릇짜리 녹두죽을 사 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뻔뻔스러운 작자야. 자기는 한 그릇을 시켜 먹으면서 소작인들에게는 반 그릇짜리를 사 줘?’

    김 선달은 산골 지주의 하는 짓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산골 지주는 성미가 고약한 양반이었습니다. 김 선달네 죽집에 오면 꼭 한 가지씩 트집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이봐요. 손님이 들어오면 깍듯하게 인사를 해야지, 어째서 소 닭 보듯 쳐다보는 거요?”

    “아니, 이 집에는 웬 파리가 이리 많이 날아다녀? 혹시 파리가 앉았던 녹두죽을 그냥 내오는 거 아니야?”

    김 선달은 그럴 때마다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어디 두고 보자. 지금은 넘어가지만, 다음에 또 비위를 건드리면 단단히 곯려 주겠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산골 지주가 소작인들을 거느린 채 죽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이렇게 내뱉었습니다.

    “죽집에 왔으니 죽이나 몇 그릇 팔아 줄까? 이 집 죽은 맛이 별로인데다 비싸기까지 해. 그 점을 생각해서 죽을 좀 넉넉하게 떠주소. 단골손님을 대접 못해서 지옥 가지 말고.”

    김 선달은 산골 지주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제는 지옥 가라고 저주까지 퍼붓네. 오냐, 잘 걸렸다. 오늘은 본때를 보여 주마.’

    김 선달은 갑자기 부엌으로 들어가, 아내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습니다.

    “사나흘 전에 팔다 남은 쉰 죽을 한 사발 떠서 저 양반에게 주라고. 알겠지?”

    김 선달은 아내와 짜고 부엌에서 나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단골손님이 오셨으니 죽을 좀 넉넉하게 떠요. 초는 치지 말고.” <하편에 계속>




  • 야채죽
    ▲ 야채죽
    별미식·구황식…
    40여 종의 죽 요리 발달

    죽은 곡식에 물을 많이 붓고 푹 퍼지도록 끓여 묽게 만든 음식이다. 금방 쑤어 뜨끈할 때 먹는 죽이 제일 맛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죽을 먹어 왔겠지만, 그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나온다. 1795년 발간된 ‘청장관전서’에는 “서울 시녀들의 죽 파는 소리가 마치 개를 부르는 듯하다”고 했는데, 당시에 사람들이 얼마나 죽을 많이 먹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임금은 아침에 일어나면 ‘초조반(初朝飯)’이라 하여 죽을 먹었다. 이때 주로 먹은 죽이 ‘타락죽’이라 불리던 우유죽이었다. 서민들은 먹기 어려운 보양식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자릿조반’이라고 해서 서민 중에 노인들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죽을 먹었다.

    우리나라의 옛날 문헌에는 40여 종의 죽 요리가 나온다. 이러한 죽들은 몸이 허할 때 먹는 보양식, 환자가 먹는 환자식, 입맛을 돋우는 식욕 증진식, 밥 대신 먹는 대용 주식, 별미로 먹는 별미식, 곡물이 부족하여 먹는 구황식 등 다양하게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