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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학기 중간고사에서 부쩍 비중이 늘어난 서술형 평가 이후 성적이 떨어진 아이들 때문에 엄마들은 노심초사다. "암기과목이면 외우게 하면 될 텐데, 서술·논술형이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푸념도 적잖다. 달라진 시험방식에 대한 궁금증과 속시원한 답변을 듣고 싶다는 서울 동산초등학교 학부모 3인과 서술형 평가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송재환 수석교사가 만나 서술형 평가에 대한 고민을 풀어봤다. 서술
형 평가, 어떻게 대비하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대담 참여자 : 송재환(서울 동산초 수석교사), 현진민(초등 5·2학년 딸 둘), 최광기(초등 5·3학년 남매), 안영미(중등 2, 초등 6·3학년 아들 셋) -
송재환 교사 : 서술형 평가 이후 특히 수학과 과학에서 아이들 점수가 많이 떨어져 당황한 학부형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이 두 과목에서 특히 두드러진 이유는 그간 이 과목들이 정답만 적으면 되는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정답을 썼어도 과정이 틀리거나, 과정을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정확한 언어적 표현이 미숙하면 만점을 다 받을 수 없다.
최광기 : 이번 단원평가 후, 국어 공부를 더 해야 할지 수학을 해야 할지, 서술형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시켜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송재환 교사 : 삼일운동 전개과정과 의의를 써보라는 문제가 있다면 어떤 아이들은 전개만 쓴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뭘 요구하는지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아무리 잘 써도 출제자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점수로 이어질 수 없다. 대부분 학교 시험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강조한 부분이 시험에 나온다. 수업에 더 충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술형 문제에 대응할 수 없다.
안영미 : 서술형이 되면서 채점기준에 대한 의문도 생겼다. 선생님마다 주관이 다르고 채점기준이 달라 A반에서는 정답이 된 부분이 B반에서는 오답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채점 기준이 있나.
송재환 교사 : 당연히 채점 기준은 있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그게 바로 서술형 평가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서술형 평가가 기존 평가와 다른 점은 다양성·창의성의 존중이다. 때문에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고 평가자마다 서로 다른 답을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평가를 학부모나 학생들이 수용하느냐이다. 이런 논란은 교사의 전문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면 크게 문제되지 않겠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첫 단추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최광기 : 교사는 교사대로 전문성에 대한 시비 때마다 교사로서의 자괴감을 느끼고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명확한 기준이 없을 때 오는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모두 신뢰할만한 해결책이 없을까.
송재환 교사 : 외국대학은 교수가 수업을 진행하면 조교가 앉아서 학생의 발문, 참여도 횟수 등을 세세히 기록한다고 한다.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모두가 평가를 인정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어떤 제도도 상호신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안영미 : 평가 기준이 달라졌다. 학교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송재환 교사 : 교사 평가가 바뀐다는 말은 수업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평가가 다양성, 종합적 비판, 분석력을 요구한다면 수업은 교사주도형에서 토의·토론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교사가 바꾸고 싶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일은 3·1운동에 대한 토론을 할 것이다’라고 했을 때 아이들이 배경지식 없이 와서 앉아만 있다면 과연 토론이 될까? 3·1운동에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고 정보를 찾아보고 와야 반론과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풍부한 독서다. 바탕지식이 없다면 문제 이해는 물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현진민 : 아이와 이야기하다 보면 문제도 이해하고 풀 수도 있는데 정리를 못해서 틀린 것들이 많았다.
송재환 교사 : 그게 표현력이다. 서술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문장의 완성도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과 TV 등의 영향으로 감탄사 중심의 표현만 한다. “뜨아, 웁스” 이런 표현만 쓰던 아이들이 실제로 주어, 서술어, 목적어가 분명히 드러나고 주장과 이유, 근거가 체계적으로 잡힌 글을 쓰려니 안 되는 것이다. 일기 검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단문 위주의 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빠진 글, 사건 나열이 전부인 글들이 너무 많다. 생활 속 바른 국어의 사용·습관화가 필요하다.
최광기 : 독서가 중요한 것은 알겠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송재환 교사 : 아이들의 즉흥적이고 얕은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영상매체에 의한 영향과 만화책이다. 물론 학습만화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흥미 위주로 읽는 취향에 빠지다 보면 제대로 독서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방법은 고전 읽기라고 생각한다. 원서, 원전에 근거한 이솝우화나 안데르센 같은 고전.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 입맛에 맞춘 슬림화된 책들이 너무 많다. 그런 책은 더 이상 고전의 가치를 품고 있는 제대로 된 고전이라고 볼 수 없다.
최광기 : 사실 압축된 책과 학습만화를 위주로 많이 사준 것 같다. 시중에도 원서 위주의 책보다는 압축된 도서들이 훨씬 많다.
송재환 교사 : 그게 문제다. 슬림화된 책을 읽은 아이는 나중에 절대로 원전을 읽지 않는다. 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절대 축약본의 책을 쓰지 않았다. 고전 한권 속에는 작가의 가치관, 세계관, 인간관계 등 다양한 철학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무시된 채 압축된 책은 아동심리전문가들이 말하듯 아이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아이들도 얼마든지 원전을 읽을 수 있다.
최광기 : 역시 다독보다는 정독이란 말인가.
송재환 교사 : 평소 아이들이 한 학기에 열권 정도의 문제집을 푼다. 그런데 왜 서술형 문제 하나를 제대로 풀지 못해 전전긍긍할까? 본질을 이해하고 원리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양으로만 승부했기 때문이다. 독서 역시 다독보다는 한권의 고전을 깊이 있게 읽고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문제를 이해하는 힘, 생각을 표현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서술형 평가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정독, 다양한 배경 지식은 기본이 돼야 한다. 서술형 평가에 대비하고 싶다면 양질의 독서, 다양한 글쓰기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초등 서술형 평가 대담] "선생님, 어떻게 대비하죠?"
김소엽 맛있는공부 기자
lumen@chosun.com
다독보다는 '정독' 암기보다는 '이해' 정답보다는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