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아빠들이 사는 법-프렌디] 노르웨이, 자녀가 아프면 부모 합쳐 20일 휴가
특별 취재팀
기사입력 2008.12.16 03:08

<2> 아빠 육아 권하는 사회 시스템
서구 기업들, 직무분담·재택근무·장기휴가 등 정착
"돈보다 아빠노릇이 더 중요"… 승진 앞두고도 휴직
저출산, 돈만으로 해결 안돼… 양육분담 등 이뤄져야

  • 호주 시드니에 사는 로드릭 매키넌씨는 일요일 저녁마다 두 딸의 방에서‘침대에서 저
녁식사(dinner-in-bed)’시간을 갖는다. 로펌 변호사였던 그는 육아를 위해 지난해 파
트타임 계약직 변호사로 변신했다. 시드니=김미리 기자
    ▲ 호주 시드니에 사는 로드릭 매키넌씨는 일요일 저녁마다 두 딸의 방에서‘침대에서 저 녁식사(dinner-in-bed)’시간을 갖는다. 로펌 변호사였던 그는 육아를 위해 지난해 파 트타임 계약직 변호사로 변신했다. 시드니=김미리 기자
    "뭐라고? 휴직하고 파트타임 일을 찾겠다고?"

    호주 시드니에 사는 카메론 크론(Krone·34)씨가 지난해 자신이 다니던 호주해양박물관에 휴직서를 냈을 때 동료들은 의아해했다. 디자인 담당매니저로 승진을 코앞에 두고 있던 그가 돌연 휴직을 신청한 데다, 그 이유가 두 살배기 딸 에디(Edie)의 '육아'였기 때문이다. "휴직했던 아내가 복직하면서 제가 육아에 더 기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휴직한 뒤 크론씨는 디자인스튜디오에서 월·화·금, 시드니공과대학(UTS) 연구원인 아내 루스(Ruth)는 화·수·목만 일하면서 육아와 가사를 분담한다.

    다행히 크론씨는 다니던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가족이 우선이냐, 일이 우선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라며 "회사가 그런 정서를 이해해줘서 기쁘다"고 말했다.
  • 아빠 노릇하기 쉬운 회사가 좋아

    친구 같은 아빠 '프렌디'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지기 힘들다. 무엇보다 아빠들이 몸 담고 있는 회사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2년 전 노르웨이에서 아빠 친화적인 기업 1위로 선정된 마이크로소프트(MS) 노르웨이의 그레트 요한슨(Johansen) 인사부장은 '자유로운 근무시간'을 비결로 꼽았다. "직원들이 하루 평균 8시간쯤 일하지만 집에 일이 있으면 언제 퇴근해도 무방하죠. 아이가 아프면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재택근무를 하면 됩니다." 이 회사는 매년 20%의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다국적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호주지사의 샤론 벨(Bell) 탤런트관리 국장은 "직원들의 삶의 균형(equilibrium)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보고 완벽한 탄력근무제와 재택근무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블랙베리폰과 노트북이 있는데 어디서 일하든 무슨 상관 있나요? 우리 일은 어차피 결과가 말해줘요."

    호주의 민영 수자원회사 유나이티드워터(United water)에서 실시하는 '직무분담제(job share)'는 두 명 이상이 한 업무를 분담하는 제도. 혼자할 때보다 급여는 적지만 "적게 벌고 시간을 갖고 싶다"는 아버지들의 의지를 반영한 제도다.

    전자부품업체인 타이코(Tyco)아시아퍼시픽은 육아나 가사 등을 이유로 근무 시간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 다른 날 이를 채우는 '보충시간제(make-up time)'를 실시한다.

    자리에 없으면 불안? 신뢰가 중요

    물론 탄력 근무제도에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르웨이의 경우, 1986년 아버지 휴가가 도입된 뒤5년간 이 제도를 활용하는 남성 직원들이 별로 없어 문제가 됐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봤던 것.

    오슬로 대학 여성학 센터 요르겐 로렌첸 수석 연구원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면, 회사는 '그러지 말고 아예 회사 그만두고 푹 쉬라'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1년부터 신생아를 가진 아버지가 의무적으로 쉬게끔 법령을 개정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2000년부터 재택근무, 탄력근무, 장기휴가 등 다양한 근무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IBM에서도 초창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손레지나 마케팅실장에 따르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상사들이 좌불안석이었단다. "의심 때문이랄까요? 하지만 업무 성과를 확인하고 신뢰가 쌓이면서 정착돼 가고 있어요. 회사입장에서는 사무 공간이 줄어드는 등 비용절감 효과를 얻었고, 우수 인력의 이직률도 낮아졌고요."

    호주의 일하는 아빠 중 탄력근무제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30%(2002년 기준), 집에서 근무하는 아빠는 9%. 제인 토르 호주 매콰리대 얼리차일드후드 연구소장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승진 시 여전히 차별을 받지만 맞벌이하는 도시의 젊은 아빠들은 상대적으로 소득에 대한 부담이 적어 파트타임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친화 기업 적극 지원해야

    정부의 '압력'은 필수적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지난 1986년 가족 아동국 산하에 '남성역할위원회'를 만들고 '아버지 휴가'를 제안했다. 신생아를 가진 아빠가 일정한 기간의 유급 육아 휴가(현재 8주, 내년부터 10주)를 의무적으로 쓰게 하는 제도. 게다가 부부 합쳐 46주의 육아 휴가를 나눠서 쓸 수 있다. 46주까지는 100% 월급이 그대로 지급되고 만약 거기서 10주를 더 쓰게 되면 이후에는 월급의 80%가 지급된다.

    노르웨이에서는 또 자녀가 아플 경우 부모가 합쳐 20일의 휴가를 쓸 수 있다. 회사에는 전화 한 통이면 된다. 자녀가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어떤 서류 작업도 필요가 없다.

    서구에 비하면 아시아에서는 아직 제도적 장치가 많지 않다. 그나마 일본이 '저출산'(2008년 1인당 합계 출산율 1.27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요코하마 국립대학 사회학과의 소마 나오코(35) 교수는 "초기엔 출산비용, 육아·교육비용을 제공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등 '돈'으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저출산의 근본적인 해결은 남녀의 가사·양육 분담, 즉 일과 가정의 양립에 있다는 걸 깨달은 정부가 최근 들어 가족친화기업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도가 올해 처음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게 격려하는 우수 중소기업들을 선발, 혜택을 주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핵심은 근무시간. "최장 노동시간으로 세계 1·2위를 다투는 일본과 한국의 기업들은 근무시간에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회사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해서 생산성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경험했고 깨닫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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