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배 작가의 서울 이야기] 소공동의 심술통 머슴 귀신 (상)
신현배
기사입력 2010.05.02 00:03

버려진 집에 이사오자, 귀신이 나타나…
"주인님, 한가족 됐으니 집안일 돕겠어요"

  • 삽화=양동석
    ▲ 삽화=양동석
    조선 시대에 신막점이라는 사람이 서울에 살고 있었습니다. 신막점은 가죽신 만드는 일을 하는 ‘갖바치’였습니다. 그는 소공동에 큰 집 한 채가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그 집에 들어가 살려고 식구들을 데리고 이사를 했습니다.

    ‘이 집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별일 없겠지? 하도 오래된 집이라서 그런 소문이 도는 거겠지, 뭐.’

    신막점은 꺼림칙했지만, 곧 그 생각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부지런히 이삿짐을 날랐습니다. 마당에 부려 놓은 짐을 집안으로 옮기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주인어른!”

    어디선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 찾아왔나?’

    신막점은 대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참 이상하네. 누가 불렀지?’

    신막점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또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인어른! 여기예요, 여기! 바로 당신 곁에 있어요.”

    순간, 신막점은 오싹 소름이 끼쳤습니다.

    ‘이 집에 귀신이 나온다더니, 귀, 귀신이로구나!’

    잔뜩 겁에 질린 그는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발이 땅에 붙어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또 귀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겁먹을 것 없어요. 나는 오랜 옛날부터 이 집에 붙어사는 귀신이에요. 이제 한가족이 되었으니 집안일 좀 거들어 줄까요?”

    “마, 마음대로 해.”

    신막점이 승낙하자 귀신은 일을 시작했습니다. 마당에 흩어져 있는 살림살이를 순식간에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 했어요. 오랜만에 일을 좀 했더니 배가 고프네. 주인어른, 저녁밥이나 차려 줘요.”

    “그, 그래. 상은 어디다 차려 줄까?”

    “마당에 그냥 차려 놓아요.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신막점은 아내에게 저녁상을 차리게 해 마당에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이 밥과 국과 반찬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습니다. 밥 그릇이며 국그릇, 반찬 그릇이 깨끗이 비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아암, 잘 먹었다. 나도 사람과 똑같이 먹고 마시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도 꼬박꼬박 식사를 차려 줘요. 밥값은 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나를 머슴이라 생각하고 무슨 일이든 시키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날부터 귀신은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신막점의 집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머슴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하편에 계속〉

  • 원구단 건물 중 현재 조선호텔 자리에 남아 있는 3층 팔각당 황궁우(사적 157호). 임금이 있는 덕수궁으로부터 정동 쪽에 쌓은 둥근 모양의 제단이었다.
    ▲ 원구단 건물 중 현재 조선호텔 자리에 남아 있는 3층 팔각당 황궁우(사적 157호). 임금이 있는 덕수궁으로부터 정동 쪽에 쌓은 둥근 모양의 제단이었다.
    태종의 '작은 공주'가 살았던 소공동

    현재 조선호텔이 있는 서울시 중구 소공동은 조선 초만 해도 ‘소공주댁’ 혹은 ‘작은 공주골’로 불렸다. 태종의 둘째 딸로 작은 공주인 경정 공주가 개국 공신인 조준의 아들 대림과 혼인하자, 태종이 땅을 주어 이곳에서 집을 짓고 살게 했기 때문이다.

    그 뒤 소공동은 선조의 셋째 아들 의안군이 화려한 궁을 짓고 살아 ‘남별궁’이라고 했다. 한편,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에 잠시 머물렀는데, 1593년 10월 피란을 떠났던 선조가 서울로 돌아와 자주 이곳에 와서 명나라 장수와 관원들을 만났다고 ‘남별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897년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이라 고친 고종은 소공동에 ‘원구단’이라는 제단을 세우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일제는 한일합방으로 조선을 점령한 뒤 1913년 원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