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이정의 '풍죽도'·조익의 '청죽도'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기사입력 2010.04.23 09:48

생동감 있는 '풍죽도', 슬픔을 담은 '청죽도'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드나요?

  • 이정, ‘풍죽도’, 비단에 수묵, 127.8X71.4cm, 간송미술관
    ▲ 이정, ‘풍죽도’, 비단에 수묵, 127.8X71.4cm, 간송미술관
    사군자 중 대나무는 겨울을 상징하지. 겨울에도 잎이 푸르러 변치 않는 절개를 뜻해. 또한 똑바로 자라는 모습은 곧은 마음을 상징하지. 게다가 대나무는 속까지 비었어. 욕심이 없다는 뜻이야. 자, 이만하면 선비들이 본받을 만하지 않니?

    ●대나무 그림 전문가

    이토록 중요한 대나무를 잘 그린 사람이 있어. 더구나 화원이 아니라 왕족이었지. 대체 누가 그렸느냐고? 바로 이정(1541~1622년)이라는 사람이야.

    이정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칼을 맞아 팔을 심하게 다쳤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뒤로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되었대. 피나는 연습을 했겠지. 이정의 대나무 그림은 모두 뛰어나지만 ‘풍죽도(風竹圖)’가 가장 유명해.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를 그린 그림’ 이라는 뜻이지.

    너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뭔지 아니? 여러 소리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 소리래. 이 그림을 보니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니? ‘풍죽도’는 보는 대나무가 아니라 듣는 대나무 그림이야.

    ●바람의 노랫소리 들어봐

    대나무는 네 그루야. 뒤쪽 세 그루는 색깔이 옅어. 주인공 대나무는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한 채 한가운데 있어. 색깔도 매우 짙지? 같은 대나무라도 옅고 진하기를 조절하니 입체감이 뚜렷해. 그 멋진 모습을 꼼꼼히 들여다볼까?

    화가는 일단 붓에 먹을 잔뜩 묻혔어. 거침없는 손길로 줄기를 위로 쭉 그어 올렸지. 아! 그런데 너무 곧으면 안 돼. 이 대나무는 바람을 맞고 있잖아. 그래서 중간쯤에서 붓을 약간 오른쪽으로 틀었지. 그랬더니 흔들리는 모습이 되었어.

    대나무의 생명은 곧은 선이야. 바람에 흔들릴지라도 절대 휘면 안 되지. 저것 봐. 자기 몸의 탄력을 이용해서 꿋꿋하게 버티잖아. 대나무 마디는 붓을 살짝 돌려 고리처럼 만들었어. 이번엔 잎이야. 역시 먹물을 잔뜩 찍었지. 화가가 신이 나서 단숨에 척척 그려 나갔어. 마지막으로 잔가지를 몇 개 쳐서 잎을 매달았어.

    자, 드디어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 풍죽이 탄생했어! 사락거리는 댓잎 소리가 들리지 않니?

  • 조익, ‘청죽도’, 종이에 채색, 100.9X53.0cm, 국립중앙박물관
    ▲ 조익, ‘청죽도’, 종이에 채색, 100.9X53.0cm, 국립중앙박물관
    ●슬픔을 담은 대나무

    ‘풍죽도’는 먹으로 그렸잖아. 진짜 댓잎처럼 푸른색이었다면,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물론 그런 작품도 있지. 바로 ‘청죽도(靑竹圖)’란 작품이야.

    ‘푸른 대나무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지. 그런데 좀 이상해. 푸른 대나무 옆에 굵은 아빠 대나무가 있는데, 가운데가 똑 부러졌어. 색깔마저 흐릿해. 자세히 살펴보면 깨알 같은 점도 박혔어.

    이 점들은 깊은 슬픔을 뜻해. 옛날 중국의 순임금이 죽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던 왕비는 그만 물속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대. 그러자 그 물가에 자라던 대나무 줄기가 모두 깨알 같은 점으로 얼룩졌다지. 사람들은 이 점들을 왕비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대. 이렇듯 ‘청죽도’속 대나무에는 사랑하는 왕을 잃은 왕비의 눈물이 배어 있어. 거센 바람에 맞서 꿋꿋하게 버티는 대나무와 왕비의 사랑과 슬픔이 담긴 대나무. 너희는 어떤 그림이 더 마음에 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