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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환자를 침대에서 안아 일으켜 내려주는 ‘실버 로봇’, 실제 환자처럼 아프면 아프다고 반응하는 ‘치과 로봇’, 신생아 같은 표정과 몸짓·소리를 내며 만지면 반응하는 ‘베이비 로봇’….
상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했던 로봇들이 최근 일본에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일에는 오사카대학의 히로시 이시구로 교수 연구팀이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이는 여성로봇을 내놓아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일본은 휴머노이드 로봇(인간의 형태를 모습으로 한 로봇) 분야의 ‘절대 최강국’. 그 바탕에는 ‘가라쿠리 인형’이 있다.
지난 3일 오전 9시 가와사키현 도시바과학관. 토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과학관 입구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벌써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기기기 제조회사인 도시바가 세운 이 과학관은 연평균 약 15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명소. 그 중에서도 창업자 다나카 히사시게(1799~1881년)의 방이 단연 인기다.
“받침대에 찻잔을 올려놓을 거예요. 건전지도 없는 한낱 나무 인형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냐고요? 잘 살펴보세요.”
안내원 오자키 나오 씨는 관람객들의 의심어린 시선에 여유있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2m 길이의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인형의 손에 찻잔을 올려놓았다. 인형은 일본인 특유의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고, 손님이 찻잔을 집어들자 멈춰 섰다. 잠시 후 손님이 찻잔을 다시 올려놓자 인형은 공손히 인사를 한 뒤, ‘빙그르’ 뒤로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관람객들 사이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
‘차 나르는 인형’은 다나카 히사시게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가라쿠리 인형’. 이 박물관에는 이 밖에도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활에 걸고 과녁을 맞히는 '활 쏘는 동자', 벼루에서 먹을 찍어 흰색 종이에 한자를 쓰는 ‘글자 쓰는 인형' 등 다나카 히사시게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가라쿠리’란 전기장치나 건전지 없이 오로지 태엽, 톱니바퀴, 캠, 실만으로 작동하는 인형 또는 기계장치를 일컫는 말. 단순한 부품만을 이용하지만, 그 안에는 상당히 정교한 기술이 들어 있다. 도시바과학관의 가와모토 노부오 학예관은 “태엽의 속도 조절에 조금만 실패하면 과녁을 맞힐 수도, 글자를 쓸 수도 없다”면서 “요즘 로봇이 모터를 움직여 복잡하게 하는 일을 단순한 부품만으로 정교하게 해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 가라쿠리 인형이 처음 등장한 것은 8세기 후반으로 알려져있다. 그후 17~18세기, 태엽시계 등의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해 다나카 히사시게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물론 실용적인 용도보다는 오락, 재미를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기술을 등한시하던 당시 일본 사회에 가라쿠리가 몰고온 영향은 상당했다. 가라쿠리 장인 한야 하루미투 씨는 “가라쿠리의 사람을 닮은 모습과 정교한 기계 기술은 오늘날 일본 로봇 산업의 바탕이 됐다”고 단언했다.
[로봇 강국 일본의 힘 '가라쿠리 인형'] ①도시바과학관
가와사키(일본)=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인형이 이럴 수가…" 탄성이 절로
차 나르는 아가씨ㆍ글 쓰는 여인ㆍ활 쏘는 동자
8세기에 첫 등장…日 로봇의 출발점
태엽ㆍ실 등 단순 부품만으로 움직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