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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미소는 해맑았다. 지나칠 만큼 긍정적인 생각은 거친 승부의 세계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걱정마저 갖게 했다. 하지만 갸우뚱 했던 머리가 끄덕여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란 이런 사람에게 쓰는 표현일까. 지난달 26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세계선수권에 김연아·곽민정과 함께 참가해, 개인종합 23위에 오른 한국 남자 피겨의 기대주 김민석 군(군포 수리고 3년)을 지난 2일 안양실내링크에서 만났다.
-세계선수권 쇼트에서 생애 최고점(59.80점)으로 18위에 올랐다가 프리에서 무너졌습니다. 아쉽진 않았나요?
“조금 아쉽긴 했지만 목표는 프리 진출이었고, 쇼트를 잘 타서 만족해요. 국내 선수 처음으로 시니어세계대회 첫 출전에 첫 예선 통과를 한 점도 괜찮은 결과였다고 봐요.”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뒤엔 눈물을 쏟았지요? 마음 아파한 국민도 많았습니다.
“기대하지 못한 높은 점수가 나와 기뻐서 그랬나봐요. 사실 그렇게 힘들게 선수생활을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여느 선수들처럼 부상을 당했을 때 스케이트를 타면 아프고 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럴 때 힘들었던 게 전부죠.”
대답과 달리, 김민석의 짧은 피겨인생은 그리 평탄치 않았다. 잦은 병치레를 없애려고 6살 때 처음 스피드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그는 딱딱한 스케이트 탓에 발이 성할 날이 없자, 부모의 권유로 피겨로 스케이트를 갈아신었다. 처음부터 뛰어난 소질을 보인 건 아니었지만, 웬만큼 실력을 갖추고 남자 피겨선수가 드물었던 덕에 대전 둔원초 5학년 때는 국가대표 상비군에도 뽑혔다. 그렇게 물 흐르듯 갈 것 같았던 선수생활. 하지만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
-2008년 6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지요?
“심장마비였어요. 은행에 근무하셨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경제적으로 당장 스케이트 타는 것부터가 문제였어요. 김세열 코치님 등 주변분들의 도움으로 운동은 계속 할 수 있었지만, ‘이제 내가 어머니를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외아들이거든요.”
어린 나이에 마주한 엄청난 불행 앞에서 그는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2008년 초반만 해도 뛸 수 있는 트리플 점프가 한 두개 정도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이를 악물면서 2009년 초반에는 트리플 악셀을 실전무대에서 성공시켰어요.”
-피겨가 여성적인 운동이란 생각은 안 해봤나요?
“처음엔 그랬는데, 할수록 남자에게 더 맞는 종목이란 생각이 들어요.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정말 파워풀한 종목이죠. 남자선수들이 4바퀴씩 회전하는 걸 보세요.”
-세계선수권을 마친 뒤 이탈리아 시내에서 김연아·곽민정 선수와 함께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었죠?
“대회를 마치고 연아 누나랑 시내에 나갔는데, 상점들이 죄다 문을 닫아서 그냥 사진을 찍으며 놀았어요. 대회 중엔 연아 누나의 격려가 힘이 되기도 했죠.”
-김연아 선수가 샤이니의 온유랑 닮았다고 ‘석유(김민석+온유)’란 별명도 지어줬던데요.
“저로선 고맙지만, 샤이니 팬들에게 돌 맞을까봐 무서워요(웃음).”
-국내에서 여자 피겨만 관심을 많이 받다보니 서운한 점도 있지요?
“제가 아무리 국내대회에서 1등을 해도 (곽)민정이나 (김)해진이가 1등을 하면 제 이야기는 묻히죠. 이번 대회에서도 제 경기 땐 태극기를 2개 밖에 못 봤어요.”
-남자 피겨 선수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그만큼 부담도 크겠네요.
“책임감이 커요. 제가 연아 누나처럼 잘 해야 후배선수들도 힘을 얻고, 또 남자 피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테니까요.”
-앞으로의 목표는….
“주니어세계선수권에서 15위 이내에 드는 거예요.”
“꿈이 너무 소박하다”는 핀잔에 그는 “여유를 갖고 ‘다음엔 조금 더 잘 해야지’하다보면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했다. 어머니 김성애 씨(41세)가 끼어들었다. “이번 대회에서 프리를 마치고 나오는데, 오히려 저한테 ‘괜찮다’며 위로하는 거예요. ‘운동하는 애가 어떻게 저럴까’ 답답해 했는데, 그날 밤 혼자 잠을 못자고 끙끙 앓더라고요.”
질문을 바꿔 물었다. “올림픽 금메달은 언제쯤 딸 것 같아요?”
“2014년엔 참가에 목표를 두고, 2018년에 금메달을 노려볼거예요.”
[The 인터뷰] 한국 남자 피겨 기대주 김민석 군 "남자 피겨 '붐' 일으킬래요"
안양=우승봉 기자
sbwoo@chosun.com
초등 5학년 때 국가대표 뽑혀
피겨, 파워풀해 남자에 더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