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해선 안돼요"
우승봉 기자 sbwoo@chosun.com
기사입력 2010.01.09 23:53

산악인 박영석 대장 특별 인터뷰
등반 도움 준 네팔인들 위해 보건소 짓고 학교에 컴퓨터 지원
요즘 어린이들 너무 나약… 진취적·개척적인 생각 가져야

  • 박영석 대장이 세계 최단시간(44일) 남극점 정복에 성공했을 당시의 사진 앞에 앉았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 박영석 대장이 세계 최단시간(44일) 남극점 정복에 성공했을 당시의 사진 앞에 앉았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요즘 어린이들은 도전을 안 해요. 왜냐고요? 실패를 두려워해서죠. 하지만 정말 두려운 건 도전하지 않는 거란 걸 알아야 합니다.”

    박영석 대장(47세)의 화법(話法)은 매서웠다. 두루뭉술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다.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놓는 대답은 건조하고 직설적이었으며 명확했다. “실패를 하더라도 도전해야 합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해선 안되죠. 단, 실패를 할 땐 100% 완벽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도전에선 성공할 수 있어요.”

    극한의 상황에서 마주한 숱한 죽음의 고비 때문이었을까. 그의 대답은 늘 극과 극을 내달렸다. 눌러 쓴 모자 아래 선하게 자리 잡은 그의 눈매도 인터뷰 내내 매섭게 느껴졌다. 이런 그가 창 밖에 쌓인 눈과 어우러지자 마치 히말라야 눈표범을 앞에 두고 있는 듯했다.

    —기온이 많이 떨어졌는데, 요즘도 등반 준비 중이신가요?

    “오는 3월 히말라야의 고봉 안나푸르나로 출발하기 위해 대원들과 국내 여러 산을 오르며 호흡을 맞추는 중입니다. 안나푸르나는 코리안 루트를 개척할 두 번째 목적지죠. 10월엔 ‘무탄소’ 남극횡단을 준비 중이에요. 풍력과 태양열만을 이용해 작동하는 모터를 장착한 스노모빌을 이용해 5000km 거리를 횡단하는 거지요.”

    히말라야 14좌 완등, 7대륙 최고봉 등정, 지구 3극점 정복 등 지난 2005년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박영석 대장은 지난해부터 히말라야 14좌를 차례로 다시 오르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코스를 정해 ‘한국인이 튼길’(코리안 루트)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첫 코리안 루트를 내는 데 성공했다.

    —네팔에 자선사업을 벌이기 위한 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라 들었습니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까지 산악 인생 대부분을 보낸 네팔은 제겐 제2의 고향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많은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숱한 어려움을 이겨냈는데, 이제는 그 사랑을 되돌려 줄 때라 생각해요. 현지에 보건소를 짓고, 산간 초등학교에 컴퓨터실을 차려줄 계획입니다.”

    서울 토박이 박영석은 어려서 마치 시골아이들처럼 자랐다. 이태원에 살며 숭의초등학교를 다녔던 소년 박영석에게 놀이터는 바로 남산이었다. “가재도 잡고, 두릅도 따고, 아버지와 솥 들고 올라가 닭백숙도 해먹었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가 자연과 벗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네살 때 이미 아버지를 따라 북한산 백운대(836m) 정상에 올랐다는 박영석은 “당시 산을 다니며 느꼈던 해방감이 좋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김찬삼의 ‘세계여행전집’을 읽고 탐험가의 꿈을 키웠다지요?

    “여권을 내기도 힘들었던 시기에 김찬삼 씨의 책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막연하게나마 탐험가의 꿈을 키우던 중오산고 2학년 땐 마나슬루를 정복하고 돌아와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봤어요. 그 행렬에 ‘동국대 산악부’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대학생이 히말라야를 정복한 걸 보고 온몸에 전율이 흘렀어요. 막연했던 꿈이 구체적인 목표로 바뀌는 순간이었죠.”

    박영석은 그때부터 동국대 입학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고, 재수 끝에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산악부에 입단, 본격적인 산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내 인생에가장 힘들었던 게 대학 들어가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산을 오르니 무엇이 좋던가요?

    “사실 히말라야는 사진으로 보는 멋진 광경, 그게 전부입니다. 해발 5000m 이상은 아무런 생명체가 없지요. 적막합니다. 그렇다고 산이 싫다면 그곳을 오르겠습니까. 여기에 새로운 곳을 개척하면서 기록을 깨나가는 짜릿함이 어우러져 산을 찾게 되지요. 특히 히말라야는 신의 영역입니다. 그곳을 오르면 그만큼 겸손해지지요.”

    —왜 산에 오르나요?

    “저는 산악인이고 탐험가입니다. 산을 오른다는 건 제 삶의 일부이자 목표지요. 그게 바로 나의 인생이니까요.”

    —산을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지요?

    “함께 등반하던 후배들을 잃었을 때였습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더 많은 동료를 잃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요.”

    —지금껏 다닌 등반 중 가장 힘들었을때 는 언제인가요?

    “지구 상에 지옥이 있다면 북극이란 생각이 들어요. 입김을 내뿜는 순간 얼어버리죠. 벌어진 얼음 틈새도 건너야 하고, 얼음산도 넘어야 하지요. 텐트 속 온도가 영하 47도까지 떨어져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어요. 이 생활이 50~60일 동안 계속된다고 생각해보세요.”

    —등반이나 탐험에서 가장 힘든 건 추위인가요?

    “아닙니다. 바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자연 속에서 겪게 될 어려움은 이미 예상을 하고 가지요. 하지만 나 자신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무서운 거지요. ‘조금만 쉬자’라고 자신과 타협을 하게 되면 그땐 이미 지는 겁니다. 언제 포기할지 모르는 나약한 나 자신이 가장 힘든 상대고, 가장 무서운 상대지요.”

    —도전의 진정한 맛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성취보다는 준비과정에 진정한 맛이 있어요. 정상에 올랐을 땐 별생각이 안들죠.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는 단계. 결국 꿈을 꾸는 그 순간이 도전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지요.”

    —산악인으로서 자신의 라이벌이 있었나요?

    “히말라야 14좌 등반이 한창일 때, 언론에서 (엄)홍길이 형과 저를 두고 경쟁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형이랑은 참 친했는데, 그런 분위기 때문에 많이 서먹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해발 8000m가 넘는 산에서 경쟁을 한다는 건 정말 미련한 짓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나의 라이벌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국내 어린이들을 위해 계획 중인 일이 있다면….

    “요즘 어린이들은 너무 나약합니다. 진취적이고 개척적인 생각을 심어줘야 하지요. 개인적으론 ‘탐험학교’를 열고 싶어요.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이 1년에 한번씩 들어와서 교육을 받고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저학년은 자연과의 동화에 초점을 맞추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동굴탐사, 산악훈련 등을 시키는 거지요. 이렇게 탐험정신을 일깨워줘 ‘우리’ ‘도전’이라는 의미를 알려주고 싶어요.”

    ■ 박영석이 걸어온 길

    1963년 서울 출생
    1989년 동계 랑탕리룽 세계초등
    19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2001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2004년 남극점 도보탐험 성공
    2005년 북극점 도보탐험 성공, 산악 그랜드 슬램 달성
    2006년 에베레스트 횡단 등반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루트 개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