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그림 산책] 강세황의 ‘영통동구’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소년조선일보ㆍ시공주니어 공동기획
기사입력 2009.12.11 09:51

'이렇게 멋진 바위가 있단 말인가…이런 경치는 혼자 즐겨야지'
에헴~! 개똥아, 넌 저 뒤에 오너라

  • 어, 저기 우리처럼 산책을 나선 사람이 또 있네. 험한 산길을 가고 있잖아. 잘 안 보인다고? 오른쪽 아래에 갓을 쓴 선비 말이야. 나귀까지 탔네. 가벼운 산책이 아니라 먼 길을 나섰군. 힘든 여행길이겠어. 오늘은 저들을 한번 따라가 볼까?


  • 강세황, ‘영통동구’, 종이에 담채, 32.8X54.0cm, 국립중앙박물관
    ▲ 강세황, ‘영통동구’, 종이에 담채, 32.8X54.0cm, 국립중앙박물관
    ▶웅장한 바위에 홀딱 반한 선비 마음 담아
    길은 험하지만 선비는 신이 났을 거야. 기막힌 풍경을 봤거든. 잘 봐. 구경에 방해될까 봐 시종은 아예 멀찌감치 뒤따라오게 했지. 원래는 시종이 앞에서 나귀를 끌어야 하거든. 멋진 경치를 혼자서 즐기는 기분! 아마 짜릿할 거야.

    이 그림 제목은 ‘영통동구(靈通洞口)’야. ‘영통골로 들어가는 첫머리’라는 뜻이지. 선비는 대체 무얼 보았을까? 왼쪽에 있는 글을 해석해 볼까? ‘어지러이 널려 있는 바위는 집채만큼 크고 웅장하다. 푸른 이끼에 덮여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랄 정도다. 밑에서는 용이 나왔다는 소문도 있다. 바위의 웅장한 모습은 정말 대단한 장관이다.’

    그래, 선비가 본 건 바위야. 넋이 나갈 정도로 크고 웅장했지. 이런 풍경을 보고 그냥 넘어갈 리 있겠어? 바위에 마음을 홀딱 빼앗긴 화가는 자신의 느낌을 마음껏 화폭에 담았어.

    ‘영통동구’를 그린 화가는 강세황(1713~1791년)이야. 송도 지방을 여행하면서 그린 ‘송도기행화’ 중 한 장면이지.

    영통골로 들어서니, 와! 장관이 펼쳐졌어. 길 양쪽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쭉 서 있는 거야. 얼마나 커 보였으면 사람을 개미처럼 작게 그렸을까? 눈을 크게 안 뜨면 못 찾을 정도야.

    늘어선 바위들은 마치 장엄한 합창을 하는 듯해. 바위 하나하나는 서로 다르고 볼품없지만 이렇게 모여 있으니 장관을 이루는 거지.

  • 강세황, ‘강세황 자화상’, 비단에 채색, 88.7X51.4cm
    ▲ 강세황, ‘강세황 자화상’, 비단에 채색, 88.7X51.4cm
    ▶입체감 살리려 바위를 강조
    그런데 이상하지 않니? 바위가 크기는 집채만한데 언뜻 보면 자갈처럼 생겼잖아. 게다가 산 중턱에 붕 떠 있는 느낌이야. 왜냐고? 새로운 기법으로 그렸기 때문이지. 바위를 그릴 때는 보통 선을 쭉쭉 내리긋거든. 어려운 말로 ‘준법’이라고 하지. 옛 그림에서 산과 바위를 표현하는 독특한 방법이야.

    하지만 이 바위에는 준법을 쓰지 않았어. 미리 테두리만 그리고 안을 색칠했잖아. 바위마다 색깔의 옅고 진함이 뚜렷하지? 입체감을 살리려 한 거야.

    ▶10세 때 그림대회 심사 맡은 강세황 
    ‘영통동구’의 나귀 탄 선비는 틀림없이 강세황일 거야. 그림 속에 자신을 슬쩍 그려 넣었어. 실제로 강세황은 자화상을 많이 그렸거든.

    강세황은 예술 감각이 뛰어났어. 당시 흔치 않았던 그림 평론가였거든. 많은 화가가 강세황에게 작품을 평가받았지. 강세황은 예술적 안목을 타고났나 봐. 10세 때 벌써 그림대회 심사까지 맡았다고 하니까. 강세황은 여러 면에서 눈에 띄는 화가였어. ‘영통동구’를 보면 좀 엉뚱한 상상력이 돋보이고, ‘자화상’을 보면 만만찮은 묘사력이 돋보여. 그만의 뛰어난 감각을 대번 알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