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민주주의 예외 지역이다?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도곡교육센터 부원장
기사입력 2023.03.08 15:00

-제2차 세계대전 후 보수·진보 이념 갈등 시기에 탄생한 ‘보이텔스바흐 수업’... 강압 금지, 논쟁 원칙, 정치와 생활의 연계
-보이텔스바흐 수업 모형... ①상황 던지기 ②쟁점 찾기 ③입장 드러내기 ④논쟁하기 ⑤최종 입장 정하기 ⑥실천 의지 다지기

  • “선생님, 교실에는 아예 민주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요!”

    나름 민주적으로 수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자부하였기에 A 학생의 발언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A 학생의 주장은 이렇다. 교사가 매 수업마다 해야 할 것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교실에는 애초에 민주주의가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교사 자체가 독재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어떤 면에서는 맞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그르다. 그렇지만 A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었다.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공부해야 할 것이 주어지고, 그것을 그날의 목표에 따라 수행해야 하니 A 학생에게 어쩌면 교실은 독재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A와의 대화 후 수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수업의 주인공이면서 학습의 주체자, 더 나아가 삶의 주역으로 자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보이텔스바흐 수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수업의 시작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교육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이 있던 시기, 독일의 정치교육학자들은 보이텔스바흐 논의를 통해 교수법에 관한 세 가지 최소 합의에 도달하였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이후 독일 정치교육 교수법의 주요한 원칙으로 활용되고 있다. 
  •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도곡교육센터 부원장
    ▲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도곡교육센터 부원장
    첫째, 강압 금지(교화 금지)

    교사는 학생에게 하나의 의견을 주입함으로써 학생 스스로 판단하여 입장을 정리하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된다. 학습자는 수업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견해를 스스로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논쟁 원칙(대립적 논점의 균형 확보)

    논쟁적인 주제는 수업 안에서도 논쟁적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논쟁을 할 때는 다양한 견해,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의견을 균형 있게 제시하고 이에 대한 토의와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셋째, 정치와 생활의 연계(학습자 지향)

    학생들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연계해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상황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 리딩엠 동탄반송점
    ▲ 리딩엠 동탄반송점
    보이텔스바흐 수업연구회는 위 원칙을 기반으로 우리 교육의 현실에 맞게 6단계의 수업 모형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한 수업 사례를 <보이텔스바흐 수업>이라는 책에 담았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에 따른 수업 모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황 던지기. 교사가 논쟁이 될 만한 상황을 제시한다. 둘째, 쟁점 찾기. 찬반 비율이 비슷한 쟁점을 선택한다. 셋째, 입장 드러내기. 학생 스스로 입장을 정하고, 근거를 정리하도록 한다. 넷째, 논쟁하기. 논의를 제시하고, 질문을 통해 반박을 해 본다. 다섯째, 최종 입장 정하기. 자신의 입장을 굳힌다. 물론 1차에서 정한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 여섯째, 실천 의지 다지기.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다양한 생활 장면에 적용한다.

    여러 수업 사례 중 인천장수초등학교 김경옥 교사의 수업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김경옥 교사는 언제나 그랬듯 급식을 하러 가기 위해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을 외쳤다. 바로 그때

    “왜 줄 서는 데 꼭 여자, 남자를 구분해야 해?”

    라는 학생의 작은 혼잣말을 들었다. 무심코 흘려들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디서 말대꾸냐고 꾸중을 할 수도 있겠지만, 김경옥 교사는 다르게 반응하였다. 점심 후 ‘줄 서기’를 주제로 논쟁 수업을 연 것이다. 

    교사는 이따금 ‘괜찮은 수업’이라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뭔가 논리적이고 결과물이 딱 나온 수업 말이다. 하지만 어설프고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더라도 논쟁을 통해 학생들이 논쟁의 규칙을 배울 수 있다면, 또 자신이 합의한 내용을 실제 교실에서 적용해 조금 더 나은 생활을 꾸려가는 경험을 하게 한다면 그것만큼 ‘괜찮은 수업’은 없을 것이다.

    글=김은경 리딩엠 도곡교육센터 부원장 #조선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