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평가 산후조리원에 ‘감염관리 허술’ 국민청원 등장
이재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7.30 15:37

-“감염 신생아 식기 분리 안 하고 공동 사용” 주장
-로타·RS 바이러스 등 5년간 감염병 사고 1538건
-2023년 5단계 평가 앞둬 … ‘모자동실’ 등 갈등

  • 산후조리원의 감염관리가 허술하다는 국민청원이 제기됐다.
    ▲ 산후조리원의 감염관리가 허술하다는 국민청원이 제기됐다.
    “로타(ROTA)바이러스 등에 감염된 신생아가 발생해도 젖병 등 식기를 분리해 소독하지 않고 공유해 사용하고,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협력병원에서 약 처방 받아 복용시킨다.”

    “CCTV 사각지대로 우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겨드랑이에 아이 머리를 넣고 압박해 재우고, 체중당 하루 분유 섭취량을 넘겨 젖병 가득 채우고 토할 때까지 먹여 지쳐 잠들게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산후조리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촉구하는 청원이 제기됐다. 29일 청원에 따르면, 2018년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 동대문구의 한 산후조리원에 근무한 청원자는 부실한 위생관리와 상습적인 아동학대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원자는 내부에도 개선을 건의했지만 도리어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고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청원자는 특히 위생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해당 산후조리원은 신생아실 정기 청소·소독에도 불구하고 에어컨 필터에 먼지가 쌓인 상태로 수개월째 방치됐다고 주장했다. 또 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신생아의 젖병을 다른 신생아의 젖병과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고, 감염사실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이가 예쁘다며 수시로 입에 뽀뽀하고, 잠복성 결핵 보균자를 근무하게 하는 등 감염관리도 소홀했다고 설명했다.

    ◇ 산후조리원, 감염사고 빈발하는 관리 사각지대

    산후조리원의 신생아 감염은 해마다 늘고 있다.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이 복지부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3년~2017년 산후조리원에서 발생한 감염병 사고는 1538건에 달했다. 로타바이러스 395건, 감기 345건, RS바이러스(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319건 등이다. 복지부 측은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를 집단으로 관리하면서 신생아가 감염돼 의료기관으로 이송하는 사례도 급증했다”고 전했다.

    산후조리원은 사실상 감염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게 사실이다. 보건소가 3개월마다 산후조리원 보건관리 등을 감독하고 있지만, 법적인 기준에 맞춰 시설관리를 점검하는 수준에 그친다. 조사에 나서는 관계자들도 감염관리 전문가들은 아니다. 또 감염관리에 대한 필수교육도 산후조리원장만 해당해 실제 신생아와 산모를 돌보는 직원들에 대한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감염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달 초 창원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 6명이 파라인플루엔자에 감염됐고, 지난 5월엔 서울 구로구 한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 11명이 RS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났다. 1월에는 같은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신생아 3명이 RS바이러스에 감염된 사건이 제주에서 발생했다.

    산후조리원 종사자의 결핵 보균 비율이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3월 공개한 집단시설 잠복결핵감염 검진 사업 결과 분석에 따르면, 산후조리원 종사자 2735명 가운데 결핵 보균자는 917명으로, 비율은 33.5%에 달했다.

    이처럼 신생아 감염관리의 허술함을 드러냈지만, 산후조리원 이용률은 여전히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2018년 산후조리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출산한 산모 2911명 가운데 산후조리원 이용 비율은 75.1%다. 평균 비용은 220만7000원이다. 산후조리원을 찾는 이유로는 ‘육아에 시달리지 않고 편하게 산후조리를 할 수 있어서’(36.5%) ‘산후조리원에서 육아전문가에게 육아 방법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18.7%) ‘집에서 산후조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서’(18.5%) 등이다.

    ◇ 정부, 감염관리 강화 위해 2022년 평가 예정

    정부는 감염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2022년부터 산후조리원 평가에 나설 계획이다. 인력의 적정성·전문성, 시설의 적정성·전문성, 운영·질 관리, 감염예방관리, 산모 돌봄서비스·부모교육, 신생아 돌봄서비스 등 6개 영역을 평가해 S·A·B·C·D 5단계로 등급을 매긴다. 민간업체에 대한 평가다 보니 의무평가가 아닌 산후조리원의 평가 신청을 받아 평가를 진행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5년 모자보건법을 개정해 산후조리원 평가조항을 신설했다. 2016년 연구용역을 발주해 평가지표와 타당성 등을 점검했고, 2017년과 2018년 각각 1차례 시범평가도 진행했다. 다만 일선 산후조리원의 반발이 거세 당초 올해로 예정했던 평가를 3년 연기해 2022년 시행한다. 대신 올해부터 3년간 산후조리원 평가를 위한 컨설팅 사업을 시작해 산후조리원의 평가대비를 미리 도울 계획이다.

    ◇ 모자동실 사용시간 등 평가기준 두고 민·관 갈등

    문제는 현장의 반발이다. 민간업체다 보니 평가에 참여할 의무가 없는데다 최근 출생률 감소로 신생아 수가 줄면서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산후조리원이 늘었다. 실제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산모 수는 2017년(12월 31일 기준) 1만1512명에서 지난해(12월 31일 기준) 1만685명으로 감소했다. 산후조리원 수도 같은 기간 598곳에서 548곳으로 50곳 줄었다.

    특히 마찰을 빚는 것은 모자동실 사용시간이다. 모자동실은 신생아와 산모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모유를 수유하고 신생아와 산모의 유대감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다른 신생아들과 격리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신생아실에서 호흡과 직원 접촉 등으로 인한 감염이 발생하는 것을 감안하면 모자동실 사용시간을 늘릴수록 감염 가능성도 낮출 수 있다는 게 복지부의 입장이다. 이 때문에 평가에서 모자동실 사용시간을 8시간 이상으로 권장하고, 이를 충족할 경우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마련했다.

    그러나 산후조리원으로써는 모자동실을 늘릴수록 시설투자비용이 더 발생하기 때문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모자동실 이용 평균 시간은 하루 평균 4.2시간으로, 복지부의 권장시간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한 산후조리원 관계자는 “모자동실을 늘리라는 것은 사회로 복귀하기 위해 산후조리원을 찾아 휴식을 취하는 산모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