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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음~”
“쉬페르(Super)!”
“오라라(Oh là là)!"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미술 워크숍에서 프랑스의 그림책 작가 에르베 튈레(Hervé Tullet•60)가 감탄사를 외치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아이들은 까르륵 웃었다. 작가가 내뱉는 감탄사에 따라 아이들은 속삭이기도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그리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에르베 튈레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로 여는 개인전 ‘오! 에르베 튈레 색색깔깔展’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그림책 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볼로냐 아동도서전 라가치상(1999년)’을 수상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로, 최근에 펴낸 ‘책 놀이’는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판돼 20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색채놀이 그림책’으로 널리 알려졌다. -
튈레 작가에게 아이들은 예술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는 “아이들은 그 자체로 창의적”이라며 “현재를 그대로 느끼며 직관대로 행동하고 매 순간 무언가를 창조해낸다. 아이들은 생각하거나 계획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기에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식이나 경험에 얽매여 대상을 해석하는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오감을 활용해 자유롭게 대상을 인식하죠.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모든 게 가능해요. 지금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에서도 아이들은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어요.”
그의 작업방식은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닮아있다. 아이처럼 순수한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느낀 바를 자유롭게 풀어낸다. 튈레 작가는 인터뷰 내내 ‘계획해서 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그렸다고 하기 어려운, 휘갈긴 선이나 점과 같은 추상적인 요소가 많다. 명확하게 전달하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상상할 자유를 안겨준다. 그는 “기존의 그림책에서 아쉬웠던 것은 서술이 너무 구체적으로 현실적이라는 점”이라며 “답이 정해지지 않은 형태를 볼 때 아이들은 훨씬 많은 것을 상상하며 책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그림책을 하나의 장난감처럼 여긴다. 여러가지 색깔로 인쇄된 원이 물감인 것처럼 손으로 찍어 다른 곳에 바르거나, 갖가지 모양으로 뚫린 구멍에 빛을 비춰 그림자 놀이를 하는 식이다. 반사되는 재질로 된 책으로는 거울 놀이를 하며, 동그라미 구멍이 뚫린 책은 손가락 놀이나 가면 놀이에 활용한다. 그는 “책은 놀이터”라며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게 놀면 된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책을 접한 우리나라 부모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단순하다. 그냥 놀라는 것. 재미있게 놀라고 말한다. 그는 “어른이 할 일도 아이와 다르지 않다”며 “아이처럼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유롭게 놀면 된다”고 답했다. 이어진 미술 워크숍에서 그는 예순을 맞이한 나이가 무색하게 책으로 기타를 치거나, 책이 물고기인 양 헤엄치는 흉내를 내며 아이들에게 온몸으로 책을 읽어줬다.
“제 책은 다양한 개념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아이에게 무언가를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다만 책을 가지고 게임을 하듯 논다면,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노는 과정에서 많이 배울 겁니다. 부모도 책을 가지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수많은 새로운 방법을 발견할 수 있고요.”
어른의 놀이 태도에 있어 튈레 작가는 ‘척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는 “아이들은 누군가가 되기 위해 척하지 않는다”며 “어른에게도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어른이 무언가를 의도하며 놀아주는 것보다, 어른 스스로 즐기며 노는 걸 더 반깁니다. 놀이를 계획대로 진행하려 하기보다는, 순간에 집중해 오로지 자신이 돼 보세요. 더불어 아이들에게 온전한 신뢰를 줄 수 있으면 좋겠죠. 그들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며 함께 놀아 보세요.”
“추상적인 그림책으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라”
-프랑스 그림책 작가, ‘에르베 튈레’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