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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배기 아들을 둔 학부모 이호연(가명)씨는 지난주 생일을 맞은 아이의 어린이집 답례품으로 미세먼지 마스크를 일일이 포장해 보냈다. 연일 이어지는 미세먼지 공포에 아이를 둔 가정에 일회용 방진마스크가 외출 필수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 같은 선물이 매우 실용적일 거라는 생각에서다. 이씨는 “최근 계절을 가리지 않는 미세먼지 탓에 일회용 마스크를 매일 쓰다 보니, 매달 마스크 값으로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며 “같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실용적인 선물을 해주고픈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주위 엄마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아이 돌잔치를 앞둔 주부 강혜란(가명)씨는 하객들에게 나눠줄 선물로 미세먼지 마스크와 손세정제 세트를 준비했다. 대개 떡이나 수건 같은 기념품을 돌리곤 하지만, 찾아와 준 이들에게 좀 더 실용적인 선물을 하고자 이 같은 제품을 준비한 것이다. 강씨는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극심할 때 마스크와 손세정제는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에겐 필수품”이라며 “찾아와 준 지인 대부분이 자녀를 키우는 부모다 보니, 생활에 쓸모 있는 선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올봄 들어 더욱 극성을 부리는 미세먼지에 아이 관련 행사 답례품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특히 엄마들 사이에서 돌잔치나 유치원·어린이집 생일파티, 학예회, 각종 기념일 등 아이들 행사 답례품으로 일회용 마스크, 세정제, 손소독제, 비강세척기 같은 미세먼지 관련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워킹맘 조예은(가명)씨는 “요즘 같은 봄철엔 미세먼지뿐 아니라 꽃가루나 황사 문제도 심각해져,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이 같은 제품이 더는 기호품이 아닌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다섯 살 난 아들을 둔 한소라(가명)씨는 “최근 아이가 유치원에서 생일 답례품으로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종종 받아오곤 한다”며 “기존 색연필 등 학용품 선물은 너무 흔해 한꺼번에 들어오면 처치곤란인데 반해, 이는 두고두고 쓸 수 있어 실용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대해 한편으론 씁쓸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매일 아침마다 아이에게 마스크 씌워 등원시킨다는 주부 최미영(가명)씨는 이런 선물을 받을 때마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 지속될 것만 같아서 마냥 달갑진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보편화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연일 계속되는 잿빛 하늘에 아이와 산책조차 마음 편히 못 하고, 외출 시 오직 마스크를 씌워주는 방법밖에 할 수 없어 엄마들이 이런 제품에 더욱 매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세먼지 관련 제품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 주말 온라인쇼핑사이트와 마트 등 주요 유통채널의 마스크 매출은 전 주 같은 기간 대비 많게는 7배가량 증가했다. 소셜커머스 티몬에 따르면, 최근 1주일간(3월19~25일) 마스크 매출은 지난 2월 같은 기간 대비 185% 증가했다. 그중 KF80 등 식품의약품안전처 검정을 거친 마스크 매출은 무려 304% 늘었다. 마스크 외에 공기청정기 매출도 101% 증가했고, 공기정화 식물 매출도 110% 늘었다. 아울러 클렌징크림·로션 443%, 클렌징티슈는 135%, 클렌징비누 81% 등 피부건강을 위한 상품 매출도 각각 증가했다. 티몬 관계자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찾는 소비자로는 30대 여성이 42%로 가장 많았으며, 40대 이상 여성 24%, 20대 여성 1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미세먼지에 대한 부모들의 공포심이 나날이 확대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이미옥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 대표는 “미세먼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부모 가운데 심하게는 출산을 포기하거나 아이를 위해 이사·이민까지 강행하고 있다”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조치로는 국민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으며 미세먼지 대책에 대한 우선순위를 분석해 저감대책을 효율적으로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엄마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정부가 권고한 미세먼지 대응 방안과 관련 제품만으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세먼지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어제(29일) 앞으로 수도권 민간사업장과 전국의 공공기관을 비상저감조치 대상에 포함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봄철 미세먼지 보완대책'을 내놓았지만, 당장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엄마들이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최근 미세먼지의 심각함을 토로하는 글과 함께 ‘미세먼지를 줄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적극적으로 동참해달라’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4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란에 올라온 ‘미세먼지의 위험 그리고 오염 및 중국에 대한 항의’ 청원은 게시 5일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청원 제기자는 "미세먼지가 10년 전보다 상당히 자주 몰려오고 있다"며 "중국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외교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도남희 육아정책연구소 아동패널 연구팀장은 “정부가 미세먼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배제한 채 지금처럼 임시방편에만 의존할 경우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엄마들의 우려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예기치 못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가 바꾼 풍경]유치원·돌잔치 선물로 ‘마스크’ ‘손세정제’ 인기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