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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후략)”
-윤동주 시 ‘별 헤는 밤’(1941년) 중에서 -
1987년의 어느 날, 유난히 하얀 얼굴의 17세 여고생이 시 낭송을 시작했다.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한마디 한마디가 듣는 이의 마음까지 촉촉하게 적셨다. 그로부터 23년 후, 소녀는 엄마가 돼 다시 무대에 섰다. 소은우(서울 정덕초 5년)·소정우(서울 정덕초 3년) 형제를 둔 학부모 기혜선 씨(40세) 얘기다. 지난달 29일 서울시교육연수원(서초구 방배3동) ‘학부모 문학의 밤’에서 만난 기씨는 “잊고 지냈던 ‘문학소녀’의 꿈을 펼칠 기회가 생겨 기쁘다”며 연방 쑥스럽게 웃었다.
이날 행사엔 서울시교육청이 관내 학부모를 대상으로 마련한 제1기 문학교실 수강생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한 학기에 걸쳐 시반·소설반·영문학반으로 나뉘어 월 2회씩 수업을 들었다. 문학 기초 이론은 물론, 전문가의 첨삭(添削·내용의 일부를 보태거나 삭제해 고침) 지도까지 갖춰진 완성도 높은 과정이었다. 강의는 소설가 오대석 씨와 시인 김재천 씨가 각각 맡았다. 지난해 9월엔 강원도 춘천으로 문학기행도 다녀왔다.
김향란 씨(48세)는 오랫동안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어머니가 단골 소재였지만 최근 작품엔 초등생 딸을 둔 엄마로서의 감정이 부쩍 많이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명희의 벤또’, ‘아이 방’, ‘도연이’ 등 김씨의 시는 유난히 아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내용이 많다.
문학 활동의 최대 장점은 자기 정화(淨化·마음이 맑아짐) 기능이다. 김씨는 “시를 쓰면서 보고 들은 걸 곱씹는 연습을 많이 했다”며 “아이를 대할 때도 많이 부드러워졌고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기혜선 씨의 생각도 같다. “남자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저도 모르게 거칠어지더라고요. 육아 스트레스로 예민해지기도 했고요. 시를 쓰고 바른 언어 표현에 대해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됐어요.”
‘시 쓰는 엄마’는 아이들도 바꿔놓았다. 김향란 씨의 딸 브랜튼 도연 양(서울 인원초 5년)은 요즘 부쩍 자주 엄마의 작업실을 힐끔거리며 들여다본다. 엄마가 시를 쓴다고 한 날부터 덩달아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요즘은 가끔 자작시를 읊을 정도다.
김씨는 “아이의 한마디가 시상(詩想·시를 짓기 위한 구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엄마의 시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며 “서로가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기씨 역시 “아이들이 ‘시인 엄마’를 뿌듯해한다”며 “책을 보며 아이들과 대화 나누는 시간도 늘었다”고 말했다. 두 학부모는 “문학을 시작한 후 아이들이 더 예뻐 보인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 쓴 다음부터 아이와 더 친해졌어요"
이윤정 인턴기자
yjlee@chosun.com
학부모 문학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