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감동의 울림은 계속된다
부산=최민지 인턴기자 merryclave@chosun.com
기사입력 2010.12.31 09:43

희망을 연주하는 소년 오케스트라 '알로이시오'
단원들 불우한 환경 딛고 밝게 성장 정명훈 지휘자와 카네기홀 공연 등
내년 1월엔 예술의전당서 음악회도

  • 유난히 추웠던 올해 성탄절, 부산 서구 암남동의 한 산복도로(山腹道路·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 깜깜한 밤하늘 사이로 소금기 머금은 바람을 타고 오색 빛의 캐럴이 울려퍼졌다. 아름다운 멜로디의 주인공은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 단원 45명.

    연습 현장에서 마주친 그들의 표정은 여느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들 못지않게 진지했다. 서정적 선율의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땐 지그시 눈을 감았고, 빠르고 경쾌한 림스키코르사코프 ‘왕벌의 비행’을 연주할 땐 엉덩이를 들썩이며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마흔다섯 개의 얼굴이 하나로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정명훈 씨가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 제공
    ▲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정명훈 씨가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 제공
    ◆1979년 창단···가진 것 없던 아이들, ‘음악’을 선물받다

    부산 알로이시오초등학교, 알로이시오중학교, 그리고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는 지난 1973년 세워졌다. ‘알로이시오’란 명칭은 학교를 처음 세운 알로이시오 슈왈츠 신부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에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공부한다. 재학생 대부분은 초·중·고교 12년 과정을 이곳에서 마친다. 워낙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내다보니 학생과 수녀님들은 친부모나 형제지간처럼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다.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진 건 1979년 3월이었다. 오케스트라 창단 역시 슈왈츠 신부님의 뜻이었다. 창단 당시부터 오케스트라 운영을 맡아오고 있는 김 소피아 수녀님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아이들에게 음악이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물론 환경은 열악했다. 악기 살 돈이 부족해 가장 싼 악기를 끌어모아 겨우 오케스트라 편성을 갖출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작은 시도가 가져온 기적은 놀라웠다. 창단되던 해 10월,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는 제33회 전국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수없이 많은 대회의 상을 휩쓸었다. 실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1991년, 김 소피아 소녀님은 오케스트라 운영을 위한 자선기금 연주회를 열었다. 뚜껑을 열어본 학교 측은 깜짝 놀랐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것. 덕분에 단원들은 연주용 관·현악기는 물론, 방음 시설이 갖춰진 연습실까지 얻을 수 있게 됐다.

    ◆지휘자 정명훈과의 만남···올 2월엔 카네기홀서 공연도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 2005년이었다. 그해 오케스트라는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 씨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정 씨와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를 연결해준 건 정명훈 씨의 형 정명근 씨였다.

    계기는 1999년 부산에서 열린 뮤지컬 ‘레 미제라블’ 오디션 현장이었다. 당시 공연 기획사 대표를 맡고 있던 정명근 씨는 알로이시오에 다니던 한 응시자 덕분에 오케스트라의 존재를 알게 됐다. 알로이시오 수녀님들은 정명근 씨를 통해 정명훈 씨의 오케스트라 연습실 방문을 거듭 부탁했다.

    바쁜 일정으로 짬을 내지 못하던 정명훈 씨는 2005년, 때마침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던 일본 도쿄 오케스트라의 부산 공연 직후 드디어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의 연습실을 찾았다. 그리곤 단원들의 열정과 실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후 자신의 아들 정민 씨를 지휘자로 보내 오케스트라 연습을 맡겼다.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는 올 2월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미국 뉴욕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공연장 카네기홀은 일류 연주자에게만 무대를 내주기로 유명한 곳. 이 공연 역시 정명훈 씨의 배려 덕분에 이뤄질 수 있었다.

    2008년 정명훈 씨는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이뤄진 ‘희망음악회’ 공연을 끝낸 후 김 소피아 수녀님에게 미국 공연을 제안했다. “수업이 없는 방학이면 괜찮겠다”는 수녀님의 대답을 기억해둔 정 씨는 1년 후 정말 약속을 지켰다. 우연찮게 그해 8월 서울시교향악단 관계자가 한 자선음악회에서 알로이시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은 후 미국 공연을 제의했고, 정 씨가 카네기홀 공연을 추진한 것.

    오보에를 맡고 있는 조민식 군(고1)은 카네기홀 연주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무대가 텅 비면 어쩌나’, ‘연주를 틀리면 어쩌지?’ 온갖 걱정이 머릿속에 떠올랐죠.” 하지만 11일(현지 시각) 열린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5개 층을 꽉 채운 객석에선 연방 “브라보(bravo, ‘잘한다’·‘신난다’ 따위의 뜻으로 외치는 소리)!” 소리가 울려퍼졌다. 부산의 한 작은 학교에서 꿈을 키워온 단원들이 기적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 정명훈 씨는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가 더 큰 세상과 만날 수 있게 도와준 궨은인궩이자 궨스승궩이다. 알로이시오중학교·전자기계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 단원들. 요즘은 내년 1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있을 서울 바로크합주단과의 합동 공연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정명훈 씨는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가 더 큰 세상과 만날 수 있게 도와준 궨은인궩이자 궨스승궩이다. 알로이시오중학교·전자기계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 단원들. 요즘은 내년 1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있을 서울 바로크합주단과의 합동 공연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선·후배로 이어지는 ‘재능 기부’···내년 1월에도 무대 서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 단원은 학교의 지원 외에 개인적으로 받는 후원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들의 진학 성적은 꽤 우수하다. 이제까지 오케스트라를 거쳐간 수백 명의 단원 중 20여 명이 한양대·부산대·가톨릭대 등 국내 주요 대학의 음대에 입학했다. 엄청나게 비싼 레슨비를 내가며 음대 진학을 준비하는 수험생에 비해 상황이 열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이들 중 일부는 현재 부산·울산·포항 같은 각 도시의 시립교향악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단원들이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열정과 노력을 믿고 기꺼이 무료 레슨에 나선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재능 기부’는 선배에서 후배로, 다시 그 후배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도 졸업생의 상당수는 틈날 때마다 모교를 찾아 후배들을 무료로 지도하고 있다.

    현재 단장을 맡고 있는 이정욱 군(고2·더블베이스) 역시 음대 진학이 목표다. 이 군은 신묘년 새해를 맞아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어려운 상황의 어린이들에게 당부했다. “세상이 여러분을 가로막아도 결코 좌절하지 마세요. 언젠간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가 찾아오니까요. 바로 저처럼요.”(웃음) 곁에 있던 조민창 군(고1·바이올린)도 한마디 거들었다. “가난하다고 꿈까지 가난할 순 없어요. 어린이 여러분, 항상 꿈을 꾸며 높은 곳을 바라보세요!”

    이들을 지켜보며 빙그레 웃던 김 소피아 수녀님도 소년조선일보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자신의 처지가 어려울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사세요. 늘 남부터 배려하세요. 매사에 감사하세요. 그 모든 행동은 언젠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답니다.”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사랑의 화음은 2011년에도 계속된다. 가장 가까운 일정은 1월 27일 저녁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바로크합주단과 함께하는 2011 신년음악회’다. 보다 자세한 공연 정보는 서울바로크합주단 홈페이지(www.kco.or.kr)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