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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연·폐수·쓰레기·소음…. 이 단어들은 모두 공해(公害)와 어울려 쓰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한 단어가 추가됐다. 다름아닌 ‘빛’ 이 그것.
지난 10월 환경부가 서울과 6대 광역시 시민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4.1%가 “과도한 인공조명 사용도 환경오염이 될 수 있다” 는 데 동의했다.
연말연시가 되면 도시는 번쩍이는 야간조명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가로수 장식용 꼬마전구에서부터 루미나리에(luminarie·전구를 이용한 조명건축물 축제) 같은 큰 행사용 조명까지 거리 곳곳이 온통 빛으로 물드는 요즘, 생각을 한번 바꿔보자.‘ 혹시 저 화려한 빛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진않을까?…’ / 편집자 주 -
도시는 밤이 되면 온갖 불빛들로 환하게 빛나지. 전광판·신호등·자동차 불빛·가로등·상점 간판…. 어떨 땐 밤인지 낮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야. 그래서일까? 요즘 부쩍 ‘빛공해’ 란 말이 자주 들려와. 빛공해가 뭐냐고? 불필요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밝은 조명이 사람이나 자연 환경에 피해를 주는 현상을 말해.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빛이 공해를 일으킨다고 하니 이상하지?
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엔 지나친 빛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단다.
◆매미는 밤낮없이 울어대고 서울 하늘선 은하수 사라져
여름에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매미울음 소리일 거야. 밤마다 어찌나 크게 울어대는지 잠 못 이룬 친구들도 적지 않을걸. 그런데 밤낮없이 울어대는 매미도 빛공해의 피해자란 사실, 몰랐지? 조명이 하도 밝아 밤과 낮을 착각한 거야.
지나친 빛으로 고통받는 건 매미뿐만이 아냐. 철새들은 달빛과 별빛을 보며 이동하거든. 그런데 밤을 낮처럼 밝히는 네온사인과 가로등 때문에 방향감각을 잃곤 해. 실제로 1000여 마리의 철새가 방향을 잘못잡아 철탑에 부딪혀 죽은 사고도 있었대.
예전엔 흔했지만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반딧불이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이런 걸 좀 어려운 말로 생태계 교란(攪갺·상황을 뒤흔들어 어지럽고 혼란하게함)이라고 해. 서민아 환경부 생활환경과 사무관은 “빛이 있는 곳으로 해충이 모여들어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고 얘기해. “ 필요 이상의 빛 때문에 보리나 들깨 등의 농작물 수확량이 줄고 꽃 피는 시기가 달라지기도 한답니다.”
혹시 밤하늘의 별을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니? 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맑은 날에도 맨눈으로 별을 관찰하기가‘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울 거야. 이 역시 빛공해의 부작용이야.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박사의 얘길 한번 들어볼까? “제가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만 해도 서울 하늘에서 은하수를 관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인공조명 때문에 은하수 관찰은커녕 제대로 된 연구를 위한 의미 있는 정보를 얻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무슨 얘기냐고? 보통 은하수를 관찰하려면 하늘의 밝기가 19 내지 20등급은 돼야 하거든. 그런데 요즘 서울 하늘은 16등급밖에 안 된다고 해. 등급이 낮을수록 밝다는 뜻이거든. 결국 너무 밝은 하늘 때문에 은하수가 눈앞에서 사라진 셈이야. -
◆어린이에게 특히 유해… 국내서도 ‘법적 규제’ 움직임
빛공해는 우리 인간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대. 조명이 너무 밝으면 매미처럼 잠 못 이루고 뒤척이기도 하지. 이럴 경우 멜라토닌(melatonin)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해. 멜라토닌은 밤낮의 길이, 계절에 따른 일조(日照·햇볕이 내리쬠) 시간 변화등을 감지해 생체 리듬에 관여하는 호르몬이거든. 멜라토닌 생성이 방해를 받으면 암발생 확률이 높아지고 불면증·피로·스트레스·불안 등을 일으키기도 해.
지나친 조명은 어린이에게도 위험해. 사람은 대부분 7~10세 때 시력이 발달하고 빛에 민감해지거든. 이은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안과전문의는 이렇게 당부하고 있어.
“좋은 시력을 유지하려면 7~10세 때 눈에 건강한 자극이 들어와야 합니다. 당연히 이시기에 각별히 ‘눈 조심’ 을 해야죠. 특히 자외선 등 밝은 빛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빛공해에 따른 피해가 늘면서 세계 각국은 이미 빛공해 방지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어. 전 세계 70여 개국에 1만 명이 넘는 회원을 갖고 있는 국제어두운밤하늘협회(IDA·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의 활동이 대표적이야. 지난 1988년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비정부기구는 매년 ‘불을 끄고 별을 켜자’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단다. 자세한 활동 내역은 홈페이지(www.darksky.org)에 잘 나와 있어.
미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은 국가 차원에서 빛공해를 줄이기 위한 기준을 마련해오고 있어. 우리나라도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행동을 시작했지. 지난해 9월 박영아 한나라당 국회의원 등이 발의(發議·회의에서 의논할 안건을 내놓음)한‘빛공해방지법’ 이 대표적 예야. 이와 별도로 서울시는 지난 7월 빛공해 방지와 도시 조명 관리에 관한 조례(條例·지방자치단체가 법령의 범위 안에서 만드는 법규의 하나)를 제정하기도 했어.
◆‘불필요한 불 끄기’부터… 내년 3월 국제적 행사 열려
빛공해를 막기 위해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일엔 뭐가 있을까? 가장 먼저 할 일은 ‘불필요한 조명 사용 줄이기’야. 필요 없는 불 끄기, 생각보다 간단하지? 혼자 나서기가 쉽잖다면‘ 지구촌 불 끄기 (EarthHour)’같은 행사에 동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지난 2007년 호주 시드니에서 처음 열린 이 행사에선 당시 시드니 내 모든 가정과 기업이 한 시간 동안 주변의 모든 조명을 끄며 큰 반향(反響·어떤 사건이나 발표가 세상에 영향을 미쳐 일어나는 반응)을 불러일으켰어. 불과 몇 년 만에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 각국이 참여하고 있단다.
내년에도 토요일인 3월 26일 저녁 8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지구촌 불 끄기’ 행사가 열린다고 해. 너희가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전등 스위치를 내려보는 건 어떨까? 작은 행동 하나로 ‘빛공해 방지 전도사’ 가 되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지?
"안 쓰는 불은 꺼주세요! " 매미·철새·불면증 어린이 일동
성서호 인턴기자
bebigger@chosun.com
찬란한 '불빛도 공해'
빛공해, 암 유발하고 성장 방해…농작물 수확 감소 등 생태계 교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