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뉴스] 수그러들지 않는 구제역
김지혜 인턴기자 april0906@chosun.com
기사입력 2010.12.28 01:19

경기 남부까지 확산···정부, 예방 백신 접종 나서

  • 정부는 지난 23일 구제역 예방 백신을 접종하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최근 경기 북부지역과 남부지역, 강원도까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접종 지역은 23일 현재 안동·예천(이상 경북)·파주·고양·연천(이상 경기) 등 5개다. 안동은 전 지역, 나머지 지역은 구제역 발생 농가를 중심으로 10㎞ 이내에서 이뤄질 계획. 강원도는 농가가 서로 많이 떨어져 있고 소규모 사육이 많아 접종 지역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접종지역 밖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살(殺·죽여 없앰)처분한다는 입장이다.

    구제역은 소나 돼지 등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동물에게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세계동물보건기구(OIE) 지정 A급 질병(전파력이 빠르고 국제교역상 경제피해가 매우 큰 질병)에 올라있다. 주로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

    ◆역대 최대 규모, 보상금도 사상 최고

    국내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건 지난 1911년이다. 이후 1934년을 끝으로 발생하지 않았다가 지난 2000년 다시 발생했다. 이후 2002년, 올 1월과 4~5월, 지난달 29일부터 현재까지 등 최근 들어 발생 빈도가 더욱 잦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구제역의 감염 규모는 사상 최대다. 이전까지의 구제역이 인접 지역으로 번지는 데 그쳤다면 이번엔 경북·경기·강원·인천 등 확산 범위가 넓다는 게 특징. 더욱이 이제까지 ‘구제역 안전지대’로 꼽혀오던 강원도까지 피해를 입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보상금 수준도 천문학적이다. 정부는 구제역으로 판정된 농가의 소나 돼지 등을 살처분한 후, 해당 동물이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가격을 기준으로 해당 농가에 보상금을 주고 있다. 22일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정부가 살처분한 동물은 22만5477마리. 정부가 지급해야 할 보상금은 이날까지 27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 2000년(2216마리·71억원)과 2002년(16만155마리·531억원), 올 1월(5956마리·93억원)과 4~5월(4만9874마리·681원)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백신 접종은 구제역 예방 ‘최후 수단’

    예방 백신 접종은 구제역 발생 확대를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손꼽힌다. 구제역 예방 백신은 2000년에도 사용됐지만 정부는 2002년 이후 백신 접종 대신 살처분 방법을 써왔다. 백신을 접종할 경우 중국 등 구제역 백신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에 쇠고기·돼지고기 수입 금지를 통보할 근거가 사라져 축산농가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OIE 규정상 구제역에 걸린 동물을 살처분할 경우 3개월만 지나면 청정국 지위 회복 신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백신 접종법을 쓰면 이 기간이 6개월로 늘어난다. 이 점 역시 정부가 백신 접종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주이석 수의과학검역원 질병방역부장은 “2000년 백신 접종 당시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돼지고기 수출이 끊겨 농가의 원성이 자자했다”며 “하지만 이번 경우엔 초기 대응만으론 확산을 멈출 수 없어 백신 접종을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25일 경기 고양시 성사동의 한 젖소 농가에서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수의사들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5일 경기 고양시 성사동의 한 젖소 농가에서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수의사들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문가 “정부 늑장 대응이 피해 키워”

    전문가들은 정부의 초기 대응이 이번 사태를 확산시켰다고 입을 모은다. 박봉균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23일 경북 안동에서 돼지들이 죽을 때 신고가 이뤄졌지만 엿새 후에야 구제역 진단이 내려졌다”며 “정부의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운 셈”이라고 말했다. 김순재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이미 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에서 정부가 가축의 유통, 사료나 분뇨차의 왕래를 막지 않아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구제역에 대한 소비자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 24일 성명(聲明·어떤 일에 대한 입장이나 견해를 공식적으로 발표함)을 통해 “구제역은 사람에게 옮는 병이 아니며 예방 백신을 맞은 소의 고기나 우유는 안전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