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위인전]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등정 산악인 '엄홍길'
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기사입력 2010.12.21 09:46

"숱한 실패·어려움에도 자고나면 '도전 정신' 생겨"
16좌 등정 성공까지 22년 걸려… 목표가 있기에 끝까지 포기 못해
"여러분도 자연서 도전 배우길"

  • 엄홍길 대장의 도전은 계속된다. 그는
    ▲ 엄홍길 대장의 도전은 계속된다. 그는 "히말라야 오지에 초등학교 16개를 짓는 게 꿈"이라며 "히말라야 16좌를 오를 때처럼 이번 꿈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엄홍길 대장(50세)은 ‘도전’이란 말을 가장 좋아한다. 38전 20승 18패. 화려하지만은 않은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그를 22년 동안 히말라야로 내몬 건 그 도전정신이었다. 꿈이 있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던 엄 대장은 이제 산에서의 꿈을 이룬 후 평지에 내려와 ‘또 다른 꿈’에 도전 중이다. 엄홍길휴먼재단 이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뛰고 있는 그를 지난 10일 만났다.

    △도봉산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아이

    내 고향은 경남 고성이에요. 하지만 진짜 고향으로 생각하는 건 도봉산이죠. 세 살 때 경기도 의정부 쪽에 있는 원도봉산으로 이사해 근 40년을 살았거든요. 부모님이 산 중턱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음식 장사를 하셨어요.

    평지 사람에게 산은 ‘올라가는 곳’, ‘즐기는 곳’이에요. 하지만 내게 산은 삶의 터전이자 놀이 공간이었어요. 생활 그 자체였죠. 1년 365일 온 산을 헤집고 다녔어요. 봄이면 진달래꽃과 버찌(벚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어요. 요즘도 자주 도봉산엘 가는데 어릴 때 오르던 나무를 보면 ‘참 겁도 없었구나’ 싶어요. 아래는 몽땅 바위에다 가지는 엄청 가늘고. 거기에 그냥 매달려 ‘타잔 놀이’를 했으니까요.

    내 무릎은 지금도 만질만질해요. 하도 다쳐서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거든요. 다래 따 먹겠다고 넝쿨에 매달렸다가 넝쿨이 끊어져 다치기도 하고, 나무 꼭대기에 열리는 잣을 따 먹겠다고 올라갔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진짜 위험천만했죠. 하지만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논 그 시절 덕분에 평생 살아갈 체력을 얻었어요.

    한번은 겨울에 동네 친구들과 토끼를 잡으러 갔다가 길을 잃었어요. 그때 눈이 참 많이 왔거든요. 소나무 가지가 눈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질 정도였죠. 갑자기 산 전체에 시커먼 눈구름이 밀려왔어요.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계곡을 찾자’고 생각했어요. 물은 아래로 흐르니까 물소리를 따라 내려가면 평지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형들도 많았는데 앞장선 건 나였어요. 능선 두 개를 넘어 한참을 내려가니 멀리서 차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어요. 살았다 싶었죠. 그게 아마 초등 5~6학년 때였을 거예요.

    △고교 졸업 후 1년간 설악산서 살아

    산과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중2 때였어요. 집에서 10여 분 올라가면 굉장히 큰 암벽지대가 있어요. 두꺼비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것처럼 생겨 ‘두꺼비 바위’라고 불리는 곳이죠. 주말마다 그곳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묵었어요. 나도 그 어른들을 따라 두꺼비 바위에 오르곤 했죠. 가서 보니 참 재밌는 거예요.

    무섭단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어려서부터 산 타는 게 몸에 배어 있으니까요. 무섭게 빠져들었어요. 빙벽 등반, 암벽 등반에도 도전하기 시작했죠.

    그때만 해도 부모님은 내가 산에 올라가 뭘 하는지 전혀 모르셨어요. 그냥 놀다 오는 줄로만 아셨죠. 나중에 모든 걸 다 팽개치고 산에 가서 살겠다니까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아예 설악산으로 들어갔어요. 1년여를 산 구석구석 손금 보듯 훑고 다녔는데 그렇게 좋았어요. 산이 나한테 잘 맞더라고요. 이후 한라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모든 산을 다 돌아다녔어요. 막히는 게 전혀 없었고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죠.

    △다섯 번 만에 안나푸르나 등반 성공

    1985년 겨울, 군대 제대 후 곧바로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했어요. 해군 특수부대(UDT)에서 혹독한 시간을 보내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쳤어요. ‘에베레스트 높이가 8848 기껏해야 설악산 네 개 합친 정도네’ 생각했어요. 개념이 없었죠. 당연히 실패로 끝났어요. 이듬해 두 번째 도전은 더 참담하게 실패했어요. 같이 등반하던 동료 셰르파(히말라야 등산대의 짐을 나르고 길을 안내하는 티베트계 인부)가 죽었는데 시신도 못 찾았어요. 정말 많이 울었죠. ‘산은 이제 끝이다’ 했어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座·공인된 8000급 14개 산과 비공인 2개 봉우리)를 모두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22년이었어요. 38회 도전해 그중 18회는 실패했죠. 실패했을 당시엔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어요. 목표가 있으니까요. 중간에 포기하면 꿈을 이룰 수가 없잖아요.

    안나푸르나는 내 인생의 산이에요. 히말라야 등반에서 가장 많은 실패와 희생을 치른 곳이니까요. 동료를 세 명이나 잃었고 나 역시 죽을 뻔했어요. 함께 로프를 매고 있던 셰르파가 추락하면서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거든요. 함께한 동료들도 아무 도움이 안 됐어요. 절벽이나 다름없는 산을 내려와야 했으니까요. 한 발로 내려오면서 기도했어요. “안나푸르나 신이시여, 전 꿈을 이뤄야 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살아서 내려가야 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산에서 내려오자 다들 “엄홍길 인생은 끝났다”고 했어요. 뛰어다니는 것도 힘들 거라고 했죠. 하지만 10개월 뒤 다시 안나푸르나 도전에 나섰고 끝내 성공했어요. 다섯 번 만에 거둔 성공이었죠. 그때 다친 후유증은 아직 남아 있어요. 발목도 잘 안 펴지고 동상 때문에 오른쪽 엄지·검지발가락 일부도 잘라냈죠.

    △청소년들, 자연에서 도전정신 배웠으면

    요즘 난 ‘인생의 17좌’에 도전 중이에요. 히말라야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16개를 짓기 위해 재단을 만들었거든요. 지금 두 번째 학교를 짓고 있어요. 16개 산과 봉우리를 정복했듯 이 꿈 역시 계속 도전해 갈 겁니다.

    종종 어린 친구들과 산에 오를 기회가 있어요. 그런데 요즘 어린이와 청소년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참 나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죠. 하지만 스스로도 좀 더 노력해줬으면 좋겠어요. 자연에서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세요. 인간의 고향은 자연이거든요. 그곳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거침없이 넓고 큰 기운)와 도전정신을 길러보세요!

    △엄홍길 대장은..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세 살 때부터 도봉산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중학교 2학년 때 암벽 등반을 시작해 1985년 히말라야 8000급 등정(登頂·산 꼭대기에 오름)에 나선다. 처음 도전한 에베레스트는 세 번 만에(1988년), 안나푸르나는 무려 다섯 번 만에 올랐다. 2007년 로체샤르 등정에 성공하기까지 총 도전 횟수는 38회. 실패가 절반 이상(18회)이었다. 하지만 첫 도전 후 22년 만에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등정’에 성공한 모험가가 됐다. 2008년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해 히말라야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 사업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