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형문화유산 '매사냥 전승자' 박용순 응사 "매도 표정으로 마음 드러낸답니다"
대전=김지혜 인턴기자 april0906@chosun.com
기사입력 2010.12.15 09:47

사납던 매가 마음을 열 때 가장 '뿌듯'
어린이도 작은 매로 사냥 나설 수 있어

  • 지난 10일 오후 대전시 동구 이사동 148-1번지. 주변을 한참 헤매다 좁다란 골목길 사이에서 ‘고려 응방(鷹坊·사냥용 매를 관리하고 기르는 곳)’이라고 적힌 낡은 팻말을 발견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닭을 손질하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마당 깊숙한 곳에 놓인 높은 횟대 위엔 갈색 깃털과 매서운 눈, 뾰족하게 굽은 부리를 가진 매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대전시 무형문화재 8호 ‘매사냥’ 전승자 박용순(53세) 응사(鷹師·매 부리는 사람)가 매를 기르고 있는 곳. 제대로 찾았다.

    ◆10년째 매사냥에 몰두… 직업도 버리고 매일 훈련 나서

    한국 무형문화재 중 하나인 매사냥은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지정돼 화제를 모았다. 매사냥이란 야생 매를 훈련시켜 꿩이나 토끼 등을 잡는 전통적 사냥 방식. 당시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랍에미리트·벨기에·프랑스·스페인·몽골 등 11개국이 공동으로 신청해 등재(登載·일정한 사항이 장부에 올려짐)됐다. 박 응사는 우리나라에 단 두 명뿐인 매사냥 기능 보유자 중 한 명이다.

  • 박용순 응사가 참매 ‘응순이’ 를 어루만지며 눈을 마주치고 있다. 박 응사는 “매에겐 다른 새와 다른 카리스마가 있다”며 “심장을 꿰뚫는 듯한 눈빛도 매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 대전=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 박용순 응사가 참매 ‘응순이’ 를 어루만지며 눈을 마주치고 있다. 박 응사는 “매에겐 다른 새와 다른 카리스마가 있다”며 “심장을 꿰뚫는 듯한 눈빛도 매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 대전=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매사냥이 세계무형문화재로 등재됐단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답니다. 선배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매사냥을 전수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그 덕택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후 달라진 게 없어요. 매사냥이 활성화되기 위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산에 놀러 갔다가 작은 매인 ‘새매’ 를 잡아 기르면서 매에 대한 흥미를 키웠다. 본격적으로 매사냥에만 몰두한 건 지난 2000년. 대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부터다. 그전까지 그는 전기·소방 분야 1급 자격증을 가진 기술자였다. “회사에 매를 데리고 출근할 만큼 평소에도 매와 가까이 지냈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후 더 책임감을 느꼈어요. 매와 더 잘 교감하려면 다른 직업을 갖는 게 불가능하기도 했고요. 현재 고정 수입이 없어 생활이 어렵지만 자부심을 갖고 산답니다.”

    박 응사는 매일같이 이곳으로 출근해 매사냥에 관한 옛날 자료를 공부하고 오후가 되면 매를 훈련시킨다. 그가 기르는 매는 총 네 마리. 송골매 ‘초롱이’(3세)와 참매 ‘비호’(3세)· ‘장군이’(2세)· ‘응순이’(1세)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송골매는 흑진주색 눈 등 귀공자처럼 우아한 기품을 뽐내고 참매는 장군처럼 늠름한 모양새를 가졌다”며 자랑했다.

    ◆매사냥은 자연 섭리 배우는 스포츠…“직접 도전해보세요”

    이날도 오후가 되자 어김없이 응방 마당에서 매사냥 훈련이 시작됐다. 첫 순서는 막내 응순이였다. 박 응사가 “호~”하고 소리를 지르자 매가 횟대를 박차 올라 하늘로 솟구쳤다. 힘차게 퍼덕이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시치미〈키워드 참조〉에 달린 방울이 딸랑거렸다. 잠시 후 매가 그의 왼손 위에 올라 먹이를 뜯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먹이를 줄 때마다 특정한 소리를 인식시켜 그 소리로 매를 길들인다”고 말했다. “야생 매를 잡아 길들일 땐 밤낮 가리지 않고 손으로 만져주는 게 중요합니다. 환경이 바뀌는 건 매에게도 무척 두려운 일이거든요. 하지만 정성껏 보살피다 보면 사납던 매도 어느샌가 마음을 열죠. 그럴 때 가장 뿌듯해요.”

    하지만 매는 본래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애써 길들여놔도 어느 순간 야생으로 돌아가곤 한다. 박 응사도 몇 번이나 매를 놓쳤다. “한날은 밤에 매를 훈련시키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들려오는 트랙터 소리에 놀란 매가 산을 넘어가 버렸죠. 눈앞이 깜깜했답니다. 매는 그렇게 날아가 버리면 잘 돌아오지 않거든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자 싶어 매가 도망간 산에 올라 달빛 아래서 매를 불렀죠. 그런데 정말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매가 방울 소리를 내며 날아오더라고요. 감동이었죠.”

  • 송골매 ‘초롱이’ 가 높은 횟대 위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송골매는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수직 방향으로 빠르게 내려오는 게 특징이다. / 남정탁 기자
    ▲ 송골매 ‘초롱이’ 가 높은 횟대 위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송골매는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수직 방향으로 빠르게 내려오는 게 특징이다. / 남정탁 기자
    응방에서의 훈련이 끝나자 박 응사는 ‘장군이’ 를 데리고 야외 훈련에 나섰다. 장군이는 참매답게 커다란 몸집과 날개가 특징. 사냥감을 향해 매섭게 돌진하는 순발력도 탁월했다. “매는 기분이 나쁘면 잘 안 움직여요. 이젠 매가 놀랐는지, 기분이 나쁜지 좋은지를 직감적으로 알죠. 매도 표정을 통해 마음을 드러내거든요.”

    그는 어린이도 충분히 매사냥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매사냥은 예로부터 우리 조상에게 사랑받던 스포츠 중 하나였어요. 어린이도 작은 매를 사용하면 매사냥에 참여할 수 있어요. 매사냥은 담대한 마음을 키우고 자연의 섭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죠. 민속체험과 생태체험도 함께 경험할 수 있고요. 매사냥에 관심이 생기면 언제든 놀러 오세요!” ☞ 동영상 kid.chosun.com

    ☞ 시치미

    매에 붙이는 이름표. 주인의 이름이 새겨진 표와 함께 매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방울과 하얀 깃털을 함께 달아 만든다. ‘시치미를 떼다’ 란 속담도 여기서 나왔다. 매사냥이 유행할 당시 자신의 집으로 날아든 매에 달린 시치미를 뗀 채 자신의 매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많았던 데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