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심리의 숨은 힘은 '자신감'에 있다"
김재현 기자 kjh10511@chosun.com
기사입력 2010.12.10 09:48

'광저우AG 숨은 공신' 스포츠 심리학자 김병현 연구원

  • 스포츠 경기의 승패는 정신력이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지난달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그랬다. 1~2점으로 승부가 갈리는 양궁이나 사격 종목은 그야말로 정신력 싸움이었다.

    우리나라는 바로 그 종목에서 특히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양궁은 전 종목을 석권했고 사격에선 13개의 금메달이 나왔다. ‘원정 경기 사상 최다 금메달 획득’ 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심리전에서 결코 밀리지 않은 선수들의 정신력이었다. 그리고 그 뒤엔 지난 28년간 선수들의 심리 훈련을 맡아온 김병현(57세)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수석연구원이 있었다.

  •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 양궁이나 역도는 경기에 앞선 ‘마인드 컨트롤’ 이 필수인 종목이다. 김병현 연구원(사진 왼쪽)은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양궁 대표팀과 역도 장미란 선수 등이 심리적 압박을 딛고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한 ‘숨은 공신’ 으로 평가받고 있다. / 김병현 연구원 제공·조선일보 자료사진
    ▲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 양궁이나 역도는 경기에 앞선 ‘마인드 컨트롤’ 이 필수인 종목이다. 김병현 연구원(사진 왼쪽)은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양궁 대표팀과 역도 장미란 선수 등이 심리적 압박을 딛고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한 ‘숨은 공신’ 으로 평가받고 있다. / 김병현 연구원 제공·조선일보 자료사진
    때론 경기 자체보다 훨씬 중요할 수 있는 스포츠 심리학. 아직은 생소하지만 점차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 새로운 학문의 세계를 김 연구원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6일 한국체육과학연구원(서울 노원구 공릉2동) 내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양궁과 사격이 좋은 성적을 거둔 이후 스포츠 심리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스포츠 심리학은 신체적으로 동등한 상황의 선수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심어주기위해 필요한 학문이에요. 본인이 지닌 가능성을 높여주는 거지요. 부상을 당한 선수에겐 심리 치료보다 부상 자체의 치료가 우선입니다. 운동 선수의 밑바탕은 무엇보다 기술과 체력이거든요. 기본기가 확실한 선수는 심리 싸움에서도 거뜬히 이길 수 있어요.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심리학이 가장 필요한 상황은 언제인가요?

    “대부분의 종목에 적용되지만 특히 개인전에서 많이 필요합니다. 동료 없이 경기를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불안 요소가 많이 작용하거든요. 자칫 방심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감정 조절이 힘들어지지요. 그럴때 스포츠 심리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나요?

    “한 사격 선수는 오랫동안 자신을 ‘국내용 선수’ 라고 생각해왔어요. 국내에선 잘하는데 국제 경기에만 나가면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냈지요. 실력이 엇비슷한 선수들은 결승전에 가까이 갈수록 비슷한 기량의 선수와 마주치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누구나 싫어하는 선수가 있게 마련이고, 그런 선수와 경쟁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승부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비합리적생각이지요.”

    —그런 선수들에겐 어떻게 도움을 주시나요?

    “간단해요. 합리적인 생각을 하도록 자꾸 인지시켜주는 거지요. 그때 왜 하필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본인 스스로는 잘 모르거든요. 그런 경우엔 비합리적 생각의 원인부터 차근차근 조사한 뒤 그 이유가 타당한지 여부를 설명해줍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만 고개를 끄덕거릴 뿐 마음 깊이 인정하진 않아요. 때문에 심리 훈련이 효과를 거두려면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해요. 보통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요. 경우에 따라선 해당 종목의 감독이나 코치와 상의해 자신감을 심어주는 훈련 방식을 만들기도 합니다.”

    —'스포츠 꿈나무'에게도 심리 훈련이 필요할까요?

    “수많은 선수들이 정상에 오르기까지 여러 차례 심리적 한계에 부딪힙니다. 어린 선수라면 똑같은 위기를 먼저 극복한 선배들의 사례를 거울 삼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게 무척 중요하지요. 한 예로 김연아 선수는 올 2월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연기를 펼칠 때 경기장 곳곳에 있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 마크도 보지 않았다고 해요.‘ 이건 올림픽이 아냐. 그냥 평소대로 연습하는 것일 뿐이야’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일종의 자기 최면이지요.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감을 떨쳐내는 의지와 정신력은 스포츠 꿈나무들이 배울 만합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반복적인 심리 훈련이 김 선수를 강심장으로 만들었고, ‘올림픽금메달’ 이란 성과까지 이뤄냈으니까요.”

    —스포츠 선수를 꿈꾸는 어린이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스포츠는 종류에 관계없이 기본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응용은 기본기를 다진 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공부도 마찬가지예요. 기본기가 붙으면 ‘뭐든 잘해낼 수 있다’ 는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심리 훈련을 통해 마음을 다잡는 건 잠자고 있던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것일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