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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배기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의 등하굣길은 고단하다. 오를 땐 가파른 경사 때문에 힘들고 내려올 땐 미끄러질까 봐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청덕초등학교(성북구 정릉3동) 어린이들에겐 ‘해당사항 없음’이다. 학교로 향하는 언덕길을 수놓은 ‘아주 특별한 타일 벽화’ 덕분이다.
지난달 30일 찾아간 청덕초 교문 앞 벽면은 850장이나 되는 타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벽화 제목은 ‘우리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시간 3분 45초’. 850은 청덕초 전교생 수를, 3분 45초는 청덕초 어린이들이 200m 언덕길을 올라 교문에 이르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을 각각 의미한다. -
타일 하나하나엔 멋진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20년 후 내 모습’을 주제로 이 학교 학생들이 완성한 그림들이다. 5학년 박지용 군은 “장래 희망이 검사여서 법복을 차려입은 내 모습을 그렸다”며 “졸업 후 학교를 찾았을 때 이 그림을 보며 지금의 내 꿈을 다시 되새길 것”이라고 말했다.
청덕초 앞 타일 벽화 아이디어를 처음 낸 건 서울문화재단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은 올 3월부터 지역 예술가들과 손잡고 ‘예술마을 가꾸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예술가와 지역 주민이 머리를 맞대고 동네 곳곳을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대상 지역은 용산구 청파동, 성북구 정릉동, 서대문구 홍제동 등 다섯 곳.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이 고루 참여해 지역의 역사와 추억을 작품에 녹여냈다. -
청덕초 어린이들은 이번 벽화를 완성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전문 강사로부터 그림 그리기 교육을 받았다. 지난달부턴 본격적인 벽화 설치 작업에 들어갔다. 학생 지도를 맡은 김새벽 프로그램 매니저(예술단체 ‘ABC’)는 “길거리 벽화와 같은 공공미술은 예뻐 보이기보다 다양한 얘길 품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그래서 이번 교육 역시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 진행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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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3동 ‘예술마을 가꾸기’ 프로젝트 중엔 타일 벽화 말고도 청덕초 어린이들의 작품이 또 있다. 물감을 뿌려 완성한 추상 벽화가 그것. 추상 벽화 제작에 참여한 5학년 윤유정 양은 “내 마음대로 그린 그림이어서 그런지 어떤 사람은 ‘예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뭘 그렸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현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이 벽화들은 오는 8일 제막식(除幕式·동상이나 기념비 등의 완성을 알리는 행사)을 갖고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학교 가는 언덕길에 '내 꿈'이 걸려 있어요"
성서호 인턴기자
bebigger@chosun.com
서울 청덕초교 담장 벽면에 아이들 타일벽화 85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