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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경기에서 대만 선수가 실격당한 사건을 두고 불똥이 엉뚱하게 한국으로 튀어 대만에서 반한(反韓)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17일 대만의 금메달 후보였던 양수쥔(楊淑君·25세) 선수는 아시안게임 여자 태권도 49㎏급 1차 예선에서 베트남 선수에게 9대0으로 이기고 있던 중 종료 12초를 남기고 실격패 당했다. 경기 도중 심판진이 양수쥔의 발뒤꿈치에서 착용이 금지된 센서 패치 두 개를 발견했기 때문. 양수쥔은 실격패를 당한 뒤 “1·2차 장비 검사를 모두 통과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한 시간가량 경기장에서 항의했다.
이 과정에 한국인 심판이 개입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대만에 퍼지면서 일부 대만인들이 과격한 반한운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날 한국인 심판은 양수쥔의 1차 장비검사만 맡았고, 2차 장비검사를 담당한 사람은 주심인 필리핀 사람이었다. 판정을 내린 심판진에도 한국 사람은 없었다. -
◆태극기 불태우고 청와대 홈피 다운
경기 이튿날인 18일 일부 대만인은 대만 총통부 앞으로 몰려가 태극기를 찢고 불태우며 “한국인 심판위원이 이번 판정에 개입했다”며 항의했다. 대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산(産) 라면을 짓밟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 음식점과 수퍼마켓엔 ‘한국인 출입 금지’, ‘한국 상품 쓰지 말자’ 등의 팻말이 붙었다.
21일 대만 일간지 차이나타임스에 따르면 이날 대만 네티즌들은 청와대 페이스북에 중국말로 욕설을 남기고 청와대 홈페이지를 다운시켰다.
이와 관련, 대만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21일 “무고한 사람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전 국민이 이성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양수쥔도 22일 귀국 직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실격당한 건 한국 때문이 아니다”라며 “분노를 가라앉히고 다른 선수들을 응원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만인의 반한 감정엔 깊은 뿌리가
비단 이번 사건이 아니어도 대만인의 반한 감정은 뿌리가 깊다. 지난 1992년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과 수교(修交·외교관계를 맺음)하는 동시에 대만과 단교(斷交·나라 사이에 외교를 끊음)했다. 당시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란 정책을 내걸고 또 다른 중국임을 내세우는 대만과의 단교를 원했기 때문. 이로 인해 우리나라와 대만 정부 간 협정은 모두 무효화됐다. 양국을 오가는 항공기와 선박 운항도 중단됐다. 당시 한국을 동맹국으로 여겼던 대만인들의 분노는 상당히 컸다.
대만과 우리의 핵심 산업이 상당 부분 겹치는 점 역시 대만인의 반한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대만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와 LCD 분야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같은 분야의 한국 상품은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민호 코트라(KOTRA) 대만무역관장은 “대만인은 그렇잖아도 한국이 자기 나라와 단교하며 보인 태도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는데, 대만이 한국과의 산업 경쟁에서까지 밀리자 한국(인)을 더욱 경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제뉴스] '대만의 反韓감정' 뿌리가 깊다
김지혜 인턴기자
april0906@chosun.com
‘태권도 실격 사건’후 반한 운동 왜 일어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