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꽃피는 수업, 매일 기다려져요"
수원=김명교 기자 kmg8585@chosun.com
기사입력 2010.11.23 09:36

수원 권선초, 저소득층 어린이 대상 학습·체험·문화 등 '교육복지' 지원
재능 계발하고 성적 올려 '인기 만점'

  • “조청과 물엿은 풀이라고 생각하세요. 집을 튼튼하게 지으려면 기초 공사가 탄탄해야겠죠?” (김지영 어린이 요리 강사)

    “네~ 선생님.” (아이들)

    “식빵을 단단하게 고정해야 해. 내가 도와줄게. 연주야.” (4학년 장예원 양)

    “우와, 신기하다. 식빵에 과자를 붙이기만 했는데 집이 됐어!” (4학년 최연주 양)

    지난 17일 오후 1시 20분 경기 수원 권선초등학교(교장 박종탁). 수업이 끝난 시간이지만 교실은 아이들로 북적였다. 복도를 따라 걷다가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냄새의 근원지(根源地·어떤 것의 근원이 되는 곳)는 바로 교육복지실. 20여 명의 어린이는 누가 곁에 다가오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과자 집 만들기’에 빠져 있었다.

    네모난 패널 위로 과자 벽돌을 올리는 분주한 손놀림이 쉴새없이 계속됐다. 조청을 묻힌 식빵은 집의 기틀이 되고 샌드 과자는 창문이 됐다. 마시멜로는 굴뚝으로 변신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신나는 수요일’ 수업 현장이다. 6학년 이원경 양은 “매주 수요일엔 평소 접하기 어려운 요리·춤·체험학습 등 특별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며 “만들기 수업을 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권선초등학교는 2년 전부터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을 운영 중이다. 도심과 지방 간 교육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는 요즘,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하고 꿈과 목표를 갖도록 응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약 120명의 어린이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박종탁 교장 선생님은 “어린이들은 누구나 마음껏 배우고 느끼고 경험할 권리가 있다”며 “어린이들의 숨겨진 끼와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데 초점을 맞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기 초가 되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이것저것 듣고 싶은 수업은 많은데 시간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공부를 도와주는 ‘아이 캔 두 잇(I can do it)’, 한자 자격시험을 대비하는 ‘한자급수반’, 남학생에게 인기 만점인 ‘축구교실’, 음악을 통해 감성을 기르는 ‘기타반’ 등 10개가 넘는 수업이 개설돼 있다. 조계순 지역사회교육 전문가는 “한 학기에 한 번씩 설문조사를 실시해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며 “학습, 문화·체험 등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수업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업의 질도 여느 학원 못지않다. 실력 있는 외부 강사가 초빙(招聘·예를 갖춰 불러 맞아들임)돼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 최양희 권선초등학교 선생님은 “삼성 블루윙스 축구단과 굿네이버스, 아름다운재단, 인근 대학교 등 여러 단체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며 “그 덕분에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된다”고 귀띔했다.


  • 2년 전부터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을 운영 중인 경기 수원 권선초등학교. 120여 명의 어린이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꿈과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있다. 제
몸집만 한 기타 배우기에 열심인 기타반 어린이들(위쪽)과 과자집을 만들며 즐거워하고 있는 어린이들. / 수원=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 2년 전부터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을 운영 중인 경기 수원 권선초등학교. 120여 명의 어린이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꿈과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있다. 제 몸집만 한 기타 배우기에 열심인 기타반 어린이들(위쪽)과 과자집을 만들며 즐거워하고 있는 어린이들. / 수원=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어린이들의 꿈을 지켜주려는 학교와 지역 사회의 노력은 아이들의 변화로 이어졌다. ‘아이 캔 두 잇’ 수업을 들은 5학년 어린이들의 수학 점수는 평균 20~30점이나 올랐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4학년 어린이가 축구교실 수업을 통해 웃음을 되찾기도 했다. 송경순 수원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 에듀업지원센터 프로젝트 조정자는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지내던 한 아이가 축구교실 수업이 있는 날 아침엔 유니폼을 입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더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는 꽤 높다. 최근 학교 측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98.6%가 “만족한다”고 답했을 정도. 신동훈 군(6학년)은 얼마 전 있었던 ‘가족사랑여행’ 프로그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평소엔 부모님이 바쁘셔서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가족사랑여행을 통해 그동안 못다 한 얘기도 나누고 부모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조희찬 군(6학년)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까진 학교에서 돌아오면 게임을 하기 일쑤였다”며 “이젠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놀면서 공부도 하고 기타도 배울 수 있어서 학교 오는 시간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