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첫날인 지난 13일. 시상대의 가장 낮은 곳에 선 장윤정(23세·경북체육회) 선수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2년간 숱하게 올랐던 산, 페달을 밟으며 한없이 달렸던 도로, 수없이 갈랐던 물살의 기억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트라이애슬론<키워드 참조>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경기다. 이 종목에서 장 선수는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트라이애슬론 역사상 최초의 ‘엘리트 국제대회 메달’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무릎 부상을 딛고 이뤄낸 결과여서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
지난 19일 오후, 일찌감치 경기를 끝내고 귀국한 장윤정 선수를 그의 모교인 경북체고(경북 경산)에서 만났다. 검게 그을린 피부, 채 아물지 않은 무릎 부상 탓에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는 그간의 노력을 한눈에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장 선수는 “메달을 따서 괜찮다”며 환하게 웃었다.
-우선 동메달 따신 것 축하드립니다. 아직 실감이 안 나시죠?
“감사합니다. 좀 얼떨떨해요. 귀국 직후 경산 길거리를 지나는데 절 알아보고 축하 인사를 건네는 분이 계셨어요. 그럴 때면 실감 나죠. 물론 메달을 보면 더 실감나고요.” (웃음)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는 수영 선수였어요.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했는데 고3 때 그만뒀죠. 부상도 잦고 운동도 힘들고. 대학에 진학한 지 얼마 안됐을 때 김규봉 경북체육회 감독님께서 ‘트라이애슬론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계속 거절했는데 ‘그냥 취미 삼아 한번 해보자’며 설득하셨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네요.”
-그럼 스무 살 때 처음 시작했다는 말인데요.
“네. 취미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운동하는 게 재밌었어요. 사이클을 탈 때도 속도에 욕심 내기보다 하이킹 하며 여행 다닌다는 생각으로 연습했거든요. 수영과 달리기 훈련을 할 때도 기록에 연연하지 않았고요. 재미를 느끼며 하다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첫 입상은 언제, 어느 대회에서였나요?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하고 6개월 후에 열린 전국체전에서 2위를 했어요. 다음 해 우승으로 올라선 후 올해까지 3연패했죠. 작년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비치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어요. 그때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내년엔 광저우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보자’고요.”
-무릎은 어떻게 다치게 된 건가요.
“올 7월에 유럽 전지훈련을 갔을 때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아시안게임은커녕 전국체전 출전도 불투명한 상황이었어요. 의사도 운동을 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한 달 정도 쉬니까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래서 9월 훈련에 복귀해 10월 전국체전에 나갔어요.”
-광저우에 도착했을 때 기분은 어땠어요?
“음. 식당에 햄버거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원래 시합 전엔 햄버거처럼 칼로리 높은 음식은 멀리해야 하거든요. 대신 시합 뛰기 전엔 식사 때 고기를 계속 보충해줘야 하죠. ‘햄버거 안에도 고기 있다’며 감독님을 설득해 햄버거를 먹었어요.”(웃음)
-결승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수영과 사이클에서 무조건 1등으로 나가자는 게 작전이었어요. 무릎이 좋지 않아 마라톤에서 뒤처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평지라면 무릎에 무리가 덜 갈 텐데 이번 대회 마라톤 코스엔 오르막과 내리막이 너무 많았어요. 내리막길을 뛸 땐 무릎이 부서질 정도로 아팠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제 앞에 두 명이 있었어요. 뒤에서도 몇 명이 쫓아오고. 그때부터 메달을 따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달렸어요. 결승선이 보이는 순간, ‘해냈다!’ 싶더군요. 그러곤 도착하자마자 쓰러졌어요.”
-
-아시아 무대에서 메달을 땄으니, 앞으로의 목표는 더 크겠어요.
“대회가 끝난 지 얼마 안돼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무릎 치료가 먼저죠. 몸도 안 좋았지만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운동선수들은 그럴 때 슬럼프를 겪어요. 요즘은 정신력이 약한 선수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실력은 있는데 정신적인 부분 때문에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가 많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운동심리학을 공부해보려고요. 기회가 된다면 2012년 런던 올림픽에도 나가보고 싶고요. 이번 대회 이후 하고 싶은 게 많아졌어요.”
-소년조선일보 독자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전 트라이애슬론을 하면서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깨달았어요. 뭔가에 도전하고 그걸 이뤘을 때 얻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죠. 어린이 여러분도 무슨 일이든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내보세요. 그 과정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트라이애슬론
수영 1.5㎞, 사이클 40㎞, 마라톤 10㎞을 연이어 실시하는 스포츠. 강력한 체력과 인내심을 요구한다고 해서 ‘철인(鐵人·몸이나 힘이 무쇠처럼 강한 사람) 3종 경기’라고도 한다.
[The 인터뷰] 한국 첫 '트라이애슬론' 메달 거머쥔 장윤정 선수 "도전 후의 '성취감'을 아시나요"
경산=김재현 기자
kjh10511@chosun.com
부상당한 무릎이 부서질정도로 아팠지만, 이 악물고 달려…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이런 과정 통해 성항하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