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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열린 ‘하이서울 페스티벌 2010’의 최대 화제 중 하나는 동춘서커스단 특별 공연이었다. 동춘서커스단은 85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의 전통 서커스단. 1000석 남짓한 서울 파랑극장(여의도한강공원 빅탑빌리지)에서 열린 사흘간의 공연은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지난해 해체 위기까지 겪었던 동춘서커스단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스러져가던 서커스를 다시 되살려낸 동춘서커스단의 경쟁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비밀을 엿보기 위해 지난 5일과 6일 동춘서커스단을 밀착 취재했다.
5일 낮 1시 서울 경마공원 내 주차장. 파란색 대형 천막이 세워진 곳에 ‘동춘서커스’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매표소 옆 입구를 거쳐 안으로 들어가자 연습에 한창인 단원들이 보였다. 무대 중앙의 두 소년은 링 위 널빤지에서 아슬아슬한 묘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다음 차례는 저글링 묘기 연습. 공과 대형 링, 불붙은 봉. 손에 잡힌 모든 게 저글링 대상이 됐다. 박광환 단원(34세)은 일곱 살 때부터 서커스를 시작한 국내 저글링의 일인자. 박 단원은 “오랜 연습을 통해 한국적 저글링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표정 없이 동작에만 열중하는 일반 저글링과 달리 한국적 저글링은 저글링에 다양한 표정과 춤을 곁들인 게 특징이다.
동춘서커스의 자랑인 ‘공중 아리랑 비천’ 연습도 이어졌다. 배경 음악은 우리나라 전통민요 ‘아리랑’. 짝을 이룬 남녀 단원은 천장에서 내려온 실크 천을 이용해 공중에서 아찔한 묘기를 펼쳤다. -
이날 연습 현장에서 무대에 오른 묘기는 열여섯 가지. 단원들은 공연 시각이 다가오자 막바지 연습에 구슬땀을 흘렸다. 단원 대부분이 중국인이지만 이들의 ‘한국 서커스 사랑’은 대단했다. 현장 지도를 맡고 있는 중국인 단원 황강도 씨(22세)는 “중국 서커스는 옛날 방식이지만 한국 서커스는 더 아슬아슬하고 새로운 현대식 묘기를 개발하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2시 공연은 관람객 부족으로 취소됐다. 단원들의 얼굴에 허탈한 기색이 역력했다. 황씨는 “열심히 준비했는데 안타깝다”며 “공연이 취소돼도 우리는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항상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만 해도 관람객이 500명에 이르렀어요. 지난달 하이서울 페스티벌 초청 공연에서도 전회 매진을 기록했고요. 꾸준한 관람객 수요가 없다는 점은 늘 아쉽죠.”
다행히 이튿날 오후 4시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주말을 맞아 가족단위 관람객이 주를 이뤘다. 가족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어린이들은 난생처음 보는 서커스가 신기한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조병찬 군(경기 안양 범계초 1년)은 “TV 속 만화영화보다 훨씬 재밌다”며 즐거워했다. 유도연 군(서울 관악초 6년)은 “가족과 서울랜드에 가다가 동춘서커스 현수막을 보고 부모님을 졸랐다”며 “서커스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인데 신기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학부모 김복심 씨(44세)는 “가족이 다 같이 즐기기에 좋은 공연”이라며 “특히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
박세환 동춘서커스 제3대 단장
"국내 유일 서커스단… 꾸준한 관심 보내주세요" -
-동춘서커스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나요?
“일본 강점기였던 1925년 일본 서커스단에서 일하던 박동수 제1대 단장이 조선인으로만 구성된 동춘서커스단을 만들었어요. 1927년 목포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1960~197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죠. 서영춘·배삼룡·남철·남성남 등 당시 유명 스타도 모두 동춘서커스단 출신이에요. 동춘서커스가 대중문화의 흐름을 주도했다고나 할까요? 당시엔 서커스의 인기가 꽤 높아 동춘서커스 말고도 서커스단이 16개나 있었어요.”
-지난해 서커스단이 해체될 뻔했다고 하던데요.
“TV 등 영상매체가 발달하고 공연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서커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더군요. 매월 들어가는 고정비만 7000만원이 넘고 빚도 4억원 이상 쌓여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사정이 알려진 후 ‘국내 유일의 서커스인 동춘서커스를 살려야 한다’며 네티즌 서명운동이 시작됐어요. 덕분에 한국마사회가 서울 경마공원 내 주차장 부지를 무료로 빌려줘 지금의 상설공연장을 마련했습니다. 예전엔 단원들이 1년에 평균 15회 이상 공연장을 옮겨야 했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서커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공연이에요. 실제 전 세계 무대예술 수익금의 절반 이상을 서커스가 차지하고 있죠. 캐나다 공연 ‘태양의 서커스’의 경우 연간 수익이 적게는 8500억원, 많게는 1조원이나 돼요. 동춘서커스도 실력만큼은 세계 어느 서커스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커스가 좀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서커스 전용극장과 서커스 아카데미, 서커스 박물관을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세계 최고 곡예사가 될래요" -
동춘서커스단에서 귀염둥이 막내 역할을 도맡아 하는 세 명의 소년이 있다. 려귀풩 군(13세), 떵비홍 군(15세), 벙오떠 군(15세)가 그 주인공. 모두 중국 예술학교 출신으로 박 단장이 아끼는 ‘곡예 신동’들이다. 동춘서커스에 합류한 지는 3~4년쯤 됐다.
“어렸을 때 본 서커스가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 서커스를 시작하게 됐어요.” 가장 나이가 어린 려귀풩 군은 “묘기 연습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형들과 어울리며 공연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떵비홍 군은 “무사히 공연이 끝날 때 가장 뿌듯하다”며 “관객이 박수쳐주고 호응해주는 게 가장 큰 힘”이라고 덧붙였다. 오랜 외국 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건 아쉬운 점이다. 벙오떠 군은 “단원들과 같이 있을 땐 잘 못 느끼지만 숙소에서 잠을 청할 때면 늘 부모님 생각이 나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꿈은 모두 ‘세계 최고의 곡예사’가 되는 것. “무대 위에서 묘기를 부리고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 순간만큼은 저희도 세계 최고란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해주세요!”
동춘서커스 보러 오세요!
장소: 과천 서울경마공원 내 상설공연장(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
관람시간: 오후 2·4·6시(연중무휴, 월·화 공연 없음)
관람료: 어른 1만원, 어린이 7000원(초등학생 이하)
문의: 02-452-3112
만화영화보다 재밌고 스릴 넘치게!
과천=김지혜 인턴기자
april0906@chosun.com
85년 전통 동춘서커스단, 해체 위기 넘어 '부활의 날갯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