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아빠와 더 가까워졌어요!
김재현 기자 kjh10511@chosun.com
기사입력 2010.11.02 09:51

"하하호호" 우린 다정한 부자·부녀

  •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아버님들은 모두 ‘1등 아빠’가 될 자격을 갖추신 분입니다.”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문정초등학교(교장 박계화).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이라 한산할 법도 한데 이곳의 열기는 평일 낮 못지않게 뜨거웠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아빠와 함께하는 독서학교’ (이하 ‘독서학교’) 덕분이다.

  •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 여행' 프로그램 도중 한 아버지가 학생을 꼭 끌어안은 채 책을 읽어주고 있다./ 문정초등학교 제공
    ▲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 여행' 프로그램 도중 한 아버지가 학생을 꼭 끌어안은 채 책을 읽어주고 있다./ 문정초등학교 제공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학교 건물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아버지와 어린이 한 쌍이 눈에 띄었다. 뒤를 이어 부자(父子)·부녀(父女)지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섰다. 행사장인 강당은 이내 인산인해(人山人海·사람이 산과 바다를 이뤘다는 뜻으로 수 많은 사람이 모인 상태를 이르는 말)가 됐다. 대부분의 학생이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참가팀 지난해 15가족서 올해 103가족으로

    올해 독서학교 참가 팀은 103가족. 아버지 참가자는 103명, 학생 참가자는 108명이었다. 문정초등 전교생은 1470명. 10%에 가까운 학생이 아버지와 함께 학교를 찾은 셈이다. 뜨거운 호응에 학교 측도 깜짝 놀랐다. 첫회 행사가 열린 지난해만 해도 신청자가 15가족에 불과해 하마터면 행사장이 강당이 아닌 교실이 될 뻔했기 때문이다.

    최영인 교감 선생님은 “지난해보다 (참가자가) 다소 늘겠거니 예상은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많은 학생이 참가 의사를 밝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독서학교 프로그램을 기획한 박은수 선생님은 “비록 수는 적었지만 지난해 참가자들의 평가가 꽤 괜찮았다”며 “아무래도 참가 학생과 학부모의 입소문 덕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는 예정 시각(저녁 7시)을 20분가량 넘겨 시작됐다. 이후에도 강당엔 자녀의 손을 잡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아버지가 적지 않았다. 대부분 양복 정장 차림이어서 퇴근하자마자 달려온 기색이 역력했다.

    “옛날에 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소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찾는 거였어요. 그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전 세계 곳곳을 누볐지만 결국 아름다운 그림을 찾는덴 실패하고 맙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서야 그는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자신의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이란 걸 그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 문정초 방과후교실 수업을 맡고 있는 정은선 독서지도사 선생님이 동화 구연 시범을 보이고 있다. / 문정초등학교 제공
    ▲ 문정초 방과후교실 수업을 맡고 있는 정은선 독서지도사 선생님이 동화 구연 시범을 보이고 있다. / 문정초등학교 제공
    박계화 교장 선생님은 ‘함께하는 가족의 모습’ 을 강조하며 독서학교의 시작을 알렸다. 올해 행사의 주제는 ‘아빠와 책은 나의 친구’. 일하느라 바빠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아버지와 자녀가 책을 매개로 소통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프로그램이었다. 행사장에서 만난 3학년 서희 양은 “평소엔 아빠가 무척 바쁘셔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며 “(아빠가) 오늘 여기 와준 것만으로도 신기할 따름” 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즉석 동화 구연'에 웃음꽃 만발

    1부와 2부로 나뉘어 세 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의 시작은 ‘교장 선생님과 함께하는 가족 사랑 모으기’코너였다. 박계화 교장 선생님은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참가 가족과 함께 동요를 불러 서먹한 행사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전문 극단을 초청해 선보인 전래인형극 ‘해와 달이 된 오누이’공연도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가장 인기를 끈 프로그램은 2부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 여행’이었다. 방과후교실 독서지도사 선생님이 보여준 동화 구연(口演·여러 사람 앞에서 재밌게 얘기함) 시범을 곁눈질로 익힌 아버지들은 자녀가 집에서 갖고 온 동화를 직접 구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툰 솜씨로나마 동화 속 바뀌는 대사에 따라 어린아이 목소리, 여성 목소리를 흉내 내는 아버지의 모습에 학생들은 무척 즐거워했다. 불과 20여 분이었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강당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3학년 장사랑 양은 “아빠가 여러 사람 흉내를 내며 책을 읽어주셔서 너무 재밌었” 며 “앞으로도 아빠가 책을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 양의 아버지 장현민 씨(38세)는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딸이 즐거워해줘서 기분이 좋다”며 “저녁 시간을 투자해야 해 좀 망설여진 게 사실이지만 자녀를 위한 독서 교육법 등 여러 이론을 배울 수 있어 뜻깊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박계화 교장 선생님은 “독서 교육의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해볼 수 있게 하는 게 독서학교의 취지”라며 “내년엔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올해보다 많은 가족이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