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는 인터뷰] 바둑 영재 신진서 군 <부산 개림초등 4년>
부산=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기사입력 2010.11.02 09:51

냉철한 승부사 "꼭 프로기사 될래요"
인터넷으로 독학해 세계 국수전 우승
타고난 머리에 성실성이 최고의 무기

  • 세상엔 세칭(世稱·세상에서 흔히 이름) 영재가 참 많아. 언어감각이 뛰어난 영재가 있는가 하면 수학이나 물리 같은 어려운 학문에서 빼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영재도 있지. 음악이나 미술 분야도 영재가 많기로 유명해. 진서(부산 개림초등 4년) 역시 영재야. 누구나 인정하는 ‘바둑 천재’거든. 하지만 본인은 “타고난 재능보다 즐겁게, 또 열심히 바둑 공부를 한 것뿐”이라고 말해. 겸손한 천재라니, 참 기특하지 않니?

    ◆인터넷으로 혼자 공부해 세계 제패

    진서는 지난 8월 열린 ‘제10회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일본 등에서 그야말로 ‘날고 긴다’는 꼬마 고수(高手·바둑에서 수가 높은 사람)들이 총출동한 대회였지. 이날 진서가 결승에서 맞붙은 상대는 한국기원의 여자연구생 1조에서 공부하는 6학년 누나였어.

    진서의 우승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어. 4학년이 6학년을 이겨서? 물론 그런 부분도 있지. 하지만 진서가 ‘독학생’에 가깝기 때문이야. 바둑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의 큰 도장에서 유명 사범에게 배우거든. 지방 출신이어도 어릴 때 일찌감치 서울로 바둑 유학 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 하지만 진서는 이제껏 부산에서 바둑을 공부해왔어. 그것도 이렇다 할 스승 없이 거의 혼자서, 인터넷으로 공부한 게 전부거든. ‘영재’ 많기로 소문난 바둑계에서 진서가 천재로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그거야.

  • 부산·류현아 기자
    ▲ 부산·류현아 기자
    ◆바둑 도장 운영 부모님도 손든 실력

    물론 처음엔 진서에게도 바둑 스승이 있었어. 다만 좀 특별했지. 바로 엄마·아빠였거든. 진서는 다섯 살 때부터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어.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도장에서 말이야. 맨 처음 진서에게 바둑을 가르친 건 엄마였어. 그런데 딱 한 달 후 엄마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대. “여보, 진서는 좀 달라요!”

    다음엔 아빠가 나섰어. 20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친 아빠도 진서를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대. ‘바둑이 이렇게 빨리 늘 수도 있는 거구나…!’ 1년 정도 아빠에게 바둑을 배운 진서는 이듬해 부산시장배 대회에 출전했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유치원부에 나가야 하는 게 정상이었지만 아빠는 주최측에 사정 얘길 해 저학년부 출전권을 얻었어. 결과는? 당연히 1등이었지. 같은 해 열린 이붕배 대회에서도 진서는 유단자부 우승을 차지했어. 전국 규모 대회로 6학년 형들도 많이 참가한 대회였는데 최고의 성적을 거둔 거야.

    ◆방학 땐 하루 10시간씩 바둑과 씨름

    사람들은 진서를 보고 ‘바둑 머리를 타고났다’고 말해. 물론 타고난 머리도 무시할 수 없지. 바둑은 워낙 어려운 경기여서 평범한 머리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긴 어렵거든. 하지만 진서에겐 타고난 머리 외에 또 하나의 무기가 있어. 다름 아닌 ‘성실성’이야.

    진서는 이미 여섯 살 때부터 하루에 5시간씩 바둑 공부를 했어. 여섯 살이면 사실 한 가지 일에 10분도 집중하기 어려운 나이잖아? 하지만 진서는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바둑에만 매달렸대. 요즘도 오전 수업이 끝나면 바로 도장으로 향해 오후 6시까지 바둑을 붙잡고 씨름해. 집에 와서도 기보(棋譜·바둑 두는 법을 적은 책) 공부를 빼먹는 법이 없지. 방학 때면 하루 10시간 이상씩 바둑 공부에 매달린다니 대단하지?

    진서는 학교에 있는 시간 외엔 바둑판과 떨어져 지낸 적이 거의 없어. TV를 볼 때도 꼭 바둑판을 앞에 놓아야 맘이 놓인대. 눈은 TV를 향해도 머릿속은 온통 바둑 생각뿐인 거지.

    ◆“2년 후 프로기사 되겠다” 목표 세워

    사실 올 초부터 진서와 부모님은 진서의 서울 유학 문제를 놓고 고민 중이야. 진서의 실력은 이미 오래전 아빠의 수준을 뛰어넘었거든. 진서를 가르칠 스승도, 맞대결을 펼칠 적수도 없는 상황은 한창 실력을 키워야 할 진서에게 아주 불리해. 하지만 아직 진서가 어리다 보니 부모님은 걱정이 되시나 봐. 진서도 벌써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는 게 달갑진 않고. 무엇보다 진서에게 아빠는 둘도 없는 바둑 스승이잖아.

    하지만 진서는 유학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란 걸 잘 알고 있어. 벌써 ‘6학년 땐 프로기사가 되겠다’는 꿈도 세웠는걸. 꿈을 위해서라면 외로움 따윈 씩씩하게 이겨내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진서는 이미 멋진 승부사인지도 몰라.

    양재호 9단이 바둑영재 진서에게

    "바둑은 배짱 싸움… 승부를 즐겨봐요"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흔히들 ‘바둑은 타고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봐야겠죠. 물론 어느 정도는 본인 노력에 의해 보완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어렵죠. 프로기사는 워낙 되기 어려워요. 1년에 단 7명만 선발하니까요.”

    ―서울로 유학을 가야 할지 고민이에요.

    “진서 얘긴 저도 많이 들었어요. 천재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더 성장하려면 서울에 와야 합니다. 서울엔 좋은 선생님과 뛰어난 라이벌이 많으니까요. 바둑 실력은 ‘치고받으면서’ 빠르게 늡니다. 더 나은 천재를 보면서 자극을 받아야 해요. 부산엔 더이상 진서의 맞수가 없잖아요.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건 무척 위험한 일이죠.”

    ―오전 수업만 받고 있는데 걱정하는 분들도 있어요.

    “저 역시 학교 공부가 바둑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바둑을 잘하려면 미술감각과 음악감각도 필요하거든요. 따로 취미 활동은 못해도 학교 수업을 통해 보충할 수 있잖아요. 또 바둑은 전략 게임이기 때문에 역사 공부도 도움이 됩니다. 매일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도 하세요. 머리가 맑아지고 건강도 좋아지니까요. 하나에만 몰두하면 오히려 균형이 깨질 수 있어요.”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바둑은 결국 배짱 싸움입니다. 머리는 천재인데 배짱이 부족해 정상에 못 서는 사람이 많아요. 배짱이 약해지는 건 승부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에요. 저 역시 승부를 앞두고 매번 떨었지만 어느 순간 바둑을 즐기게 됐어요. 그 후엔 경기 내용도 좋아졌고요. 프로기사가 되려면 평생 바둑을 둬야 하는데 즐거워야 하지 않겠어요?”

    >>양재호 9단은

    일곱 살 때 아버지의 권유로 바둑에 입문해 고교 1년 때 프로가 됐다. 1989년 제1회 동양증권배를 제패했고, 1994년 9단까지 올랐다(현재 국내 기사 중 9단은 40~50명에 불과하다). 2007년 말 기준 통산 1000국 이상 승률 순위에서 5위에 올라 있다. 현재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대표팀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