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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한 아마추어 여행가가 사단법인 한국기록원으로부터 ‘국내 최초로 세계 모든 독립국가를 여행했다’는 내용의 공식 인증서를 받았다. 이해욱(72세) 전 KT 사장이 그 주인공. 이 전 사장은 전 세계 195개 독립국 가운데 정부가 여행을 금지한 3개국(이라크·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발자국을 남겼다. 어떻게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까? 지난 22일 오후, 궁금증을 안고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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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부터 가이아나까지 40년간 192개국 ‘대장정’
이 전 사장이 처음 외국 땅을 밟은 건 1971년 일본 출장 때였다. 당시 기억은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여유 시간이 딱 하루 있었어요. 무작정 도쿄 타워를 향해 걸었습니다. 일본 말을 못해 간판 이름을 적어가며 길을 외웠죠.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이 참 매력적이었어요. 첫 해외 여행의 느낌을 수첩에 기록했는데 귀국 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수첩을 펴보곤 했어요.”
1993년 KT 사장에서 은퇴한 후 그는 본격적인 해외 나들이에 나섰다. 은퇴 두 달 만에 아내와 떠난 유럽 배낭여행이 그 시작이었다. “은퇴 후 함께 세계여행 다니자는 건 아내와 예전부터 해온 약속이었어요. 둘이서 각자 배낭 하나씩 둘러매고 30일 안팎 일정으로 여행길에 올랐죠. 한국에선 체면 때문에 못했던 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좋았어요. 거리에서 핫도그나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어도 즐겁더군요.”
처음부터 전 세계 독립국가를 여행하겠다고 계획 세웠던 건 아니다. 자신감을 얻은 건 아내와 떠난 중남미 여행에서였다. 홀로 서아프리카 여행길에 오르면서부턴 목표가 분명해졌다. “당시 서아프리카 지역은 말라리아 등 전염병이 유행하는 데다 연이은 내전 등으로 치안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아내는 여행을 포기하더군요. 게다가 국내엔 그 곳까지 가는 여행사도 없었습니다. 미국과 유럽 여행사까지 뒤지며 수소문한 끝에 한 일본 여행사를 통해 서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었어요. 동행했던 일본 여행자들이 절 무척 신기하게 바라봤어요.”
이 전 사장의 192번째 여행국은 남아메리카 대륙 북부에 위치한 가이아나. 올 3월 이곳까지 무사히 다녀오며 그는 40년에 걸친 세계일주의 대장정(大長程·멀고 먼 길)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행은 자기주도적 공부 습관 기르는 최고의 방법” -
그가 꼽는 여행의 장점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낯선 풍경을 접할 때 느끼는 설렘은 여행만의 매력이지요. 여러 나라의 자연·문화·역사와 마주치며 알게 되는 지식도 많고요. 위험한 순간을 극복해나가는 짜릿함도 소중한 재산이 된답니다. 다녀온 지 불과 두 달 만에 엄청난 지진이 발생한 아이티 여행 때가 그런 경우예요. 또 여행은 홀로서기의 과정입니다. 여행지에서만큼은 오롯이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그가 이번 인증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꼼꼼한 기록 습관 덕분이었다. 일본 여행 때 갖게 된 메모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그의 서랍에 보관된 여행 수첩은 대충 세어도 수십 개를 훌쩍 넘긴다. “인증 심사를 하러 나온 한국기록원 조사원이 깜짝 놀라더군요. 수첩도 수첩이지만 서재에 빽빽이 꽂혀 있는 책과 여행 관련 자료들을 보고 질려버린 거죠.”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 꼭 그 나라에 대해 공부한다. 아프리카 지역으로 떠날 땐 관련 자료가 국내에 없어 일본까지 가서 구해오기도 했다.
이 전 사장은 어린이들에게도 여행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우는 데 여행 만한 게 없으니까요. 한번은 네덜란드의 한 미술관에 갔는데 사람들이 한쪽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운 그림 한 편을 누워서 감상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그 작품이 바로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화가 렘브란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야경’이었어요. 여행은 호기심을 낳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궁금해 찾아보며 진취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주죠. 공부 습관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이에요.”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행 금지 국가로 묶인 나머지 세 나라도 가봐야지요. 직접 찍은 세계 곳곳의 사진을 정리해 전시회도 열고 싶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이 전 사장의 눈이 밝게 빛났다.
[The 인터뷰] 세계 모든 나라 땅 밟은 첫 한국인 이해욱 KT 전 사장 "여행하며 메모하는 습관 길러보세요"
김지혜 인턴기자
april0906@chosun.com
여행은 호기심을 낳고, 그 호기심이 지식을 낳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