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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IFA) 주최 대회에서 사상 첫 우승을 거머쥔 U-17(17세 이하) 여자월드컵 대표팀이 2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인천 중구 운서동)을 통해 귀국했다.
이날 대표팀은 대회가 열린 트리니나드토바고를 출발, 미국 시애틀을 거쳐 대한항공편으로 입국했다. 대표팀이 도착할 것으로 알려진 공항청사 1층 A출구는 선수 가족,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취재진 등 500여 명이 몰렸다. 귀국 예정 시각은 4시 50분이었지만 3시를 넘어서자 이미 출구 앞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이번 대회에서 득점상(골든부트)과 최우수선수상(골든볼) 등 3관왕을 차지한 공격수 여민지(17세·경남 함안대산고) 선수의 어머니 임수영(42세) 씨는 “대단한 내 딸 민지를 보자마자 안아주겠다”고 말했다. 골키퍼 김민아(17세·경북 포항여전자고) 선수의 남동생과 함께 인천공항을 찾은 김 선수의 할머니 유복순(68세) 씨는 “엄마가 힘들게 키웠는데 이렇게 잘해줘서 뿌듯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수비수 김빛나(17세·전북 완주 한별고) 선수의 어머니 이은자(46세) 씨는 “자만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귀국 한 시간 전부터 환영인파 500명 몰려
대표팀이 우승컵을 들고 A출구에 모습을 드러낸 건 당초 예상보다 30분쯤 늦은 오후 5시 29분경이었다. 지난달 20일 대회 출전을 위해 출국한 지 39일 만의 ‘영광스러운 귀환(歸還·다른 곳으로 떠났던 사람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옴)’이었다. 선수들은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곧바로 출구 오른편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표팀을 격려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온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대표팀을 향해 “대한민국의 저력(底力·속에 간직하고 있는 든든한 힘)을 보여줘 고맙다”며 “여자 축구는 대학팀·실업팀이 부족한 등 여건이 좋지 않지만 앞으로 우리 선수들이 더 열심히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은 “큰일을 해낸 대표팀이 자랑스럽다. 세계가 놀랐다. 우리 여자축구는 잠재력과 희망이 있다. 코칭 스태프들에게도 고맙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최덕주 감독은 “열심히 하고 돌아왔다. 이제야 우승한 게 실감난다.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우승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이번 대회 공식구인 자블라니의 반발력이 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선수들에겐 ‘상황이 힘들지만 끝까지 열심히 하라’는 격려밖에 할 수 없었지요.” -
◆“큰절 세리머니는 한국팬 위한 추석선물”
주장인 김아름(17세·경북 포항여전자고) 선수는 “열일곱 살이란 나이 때문에 밝은 척하고 있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도 너무 떨린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인 여민지 선수는 “한국에 오니 우승에 실감난다. 엄마·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골을 8개나 성공시킨 비결을 묻자 “나도 그렇게 잘 들어갈 줄 몰랐는데 놀라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골키퍼 김민아 선수는 “결승전 땐 8강전을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 안 날 정도로 경기에 집중했다”며 “모두 열심히 해줘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스페인과 펼쳤던 4강전 당시 대표팀이 카메라를 향해 단체로 ‘큰절 세리머니’를 한 것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김아름 선수는 “세리머니 내용은 모든 선수가 30분간의 의논 끝에 결정한 것”이라며 “처음엔 벤치를 보고 절을 하려다 추석이라 카메라를 보고 하는 게 더 낫겠다 싶어 계획을 바꿨다”고 말했다.
◆“1등 못해도 꾸준히 관심 가져주세요”
대표팀의 이번 우승 직후 국내에선 ‘20년의 짧은 역사, 65개에 불과한 팀, 1450명밖에 안 되는 선수 인력’으로 요약되는 우리나라 여자축구의 열악한 현실이 새삼 불거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여자축구의 저변(底邊·한 분야의 밑바탕을 이루는 부분)이 하루빨리 넓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1등을 해서가 아니라 성적에 관계없이 꾸준한 관심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자회견을 마친 여민지 선수의 따끔한 지적이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대표팀은 서울 월드컵공원(마포구 성산동) 내 평화의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KBS가 마련한 ‘자랑스러운 21인의 태극소녀들’ 환영 생방송에 출연했다. 파주NFC(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하룻밤을 보낸 선수들은 29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점심식사를 한 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중구 소공동)에서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하는 환영연과 해단식에 참석하는 것을 끝으로 이번 대회 공식 일정을 마무리지었다.
'월드 챔피언' 그녀들이 돌아왔다
인천=손정호 인턴기자
wilde18@chosun.com
U-17 한국대표팀 금의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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