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는 인터뷰] 최연소 미용사 이인주 양
안성=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기사입력 2010.09.21 13:45

"온종일 머리, 머리 생각뿐이에요"

  • 너희들은 친구의 외모를 볼 때 어디에 가장 신경 쓰니? 얼굴? 아니면 옷차림? 인주(경기 안성초등 4년)는 머리를 가장 유심히 봐.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으면 ‘아, 저건 아닌데’ 하면서 자기 일처럼 속상해하고, 예쁜 머리를 하고 있으면 ‘어, 어디서 자른 걸까?’ 하며 꼼꼼히 살펴보곤 해. TV를 보다가도 근사한 헤어 스타일이 나오면 ‘어떻게 하면 저런 모양이 나오지?’ 생각에 잠기지. 인주의 관심은 온통 머리, 머리, 머리뿐이야.

    △엄마 뱃속에서부터 가위질… 만 9세에 '미용사' 합격

    인주는 자격증도 있는 어엿한 미용기능사야. 올 2월 자격시험에 합격했을 때의 나이는 만 아홉 살. 1983년 미용기능사가 국가기술자격으로 인정된 이래 가장 어린 나이의 합격생이지.

    미용기능사가 되는 과정은 멀고도 험해. 필기시험은 물론, 커트·와인딩·세팅·핑거웨이브·신부화장 등 실기시험도 다섯 종목이나 치러야 하거든. 하지만 인주는 어른도 힘들어하는 실기시험을 단 두 번 만에 통과했어. 온통 전문용어로 가득한 필기시험은 비록 여섯 번이나 떨어진 끝에 합격했지만 말야.

    사실 인주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가위질을 하고 파마용 컬러를 말았어. 무슨 소리냐고? 인주를 임신했을 때, 엄마는 한창 미용기능사 자격증 준비 중이셨거든. 워낙 미용 일을 좋아했던 엄마는 스트레스 한 점 없이 즐겁게 자격증 준비를 하셨대. 당연히 뱃속 아기도 미용 일을 좋아했겠지? 가위질과 파마가 자연스럽게 태교가 된 셈이야.


  • 이인주 양 / 남정탁 기자 jungtak@chosun.com
    ▲ 이인주 양 / 남정탁 기자 jungtak@chosun.com
    △학원서 매일 다섯 시간씩 실습… "그래도 재밌어요"

    인주에게 엄마의 일터인 미용실은 집이자 놀이터였어. 본격적으로 미용에 관심을 보인 건 일곱 살 때였대. 엄마가 하는 일을 보다보니 슬슬 욕심이 난 거지. 그때부터 인주는 엄마를 졸라대기 시작했어. 엄마는 못 이기는 척 인주에게 고무줄과 파마지, 롯드(모발을 감는 기구)를 주곤 기본 요령을 딱 한 번 가르쳐주셨어. 한 시간을 씨름한 끝에 인주는 그럴듯한 파마를 세 개나 말았어. 손에 익지 않으면 어른도 쩔쩔매는 일을 일곱 살짜리 꼬마가 근사하게 해낸 거야. 그때 엄마는 결심했대. ‘좀 더 자라면 미용 공부를 시키자!’

    자격증을 준비한 건 지난해 1월부터야. 매일 미용학원에 출근해 다섯 시간을 꼬박 서서 실습해야 했지. 게다가 학원엔 또래 친구 하나 없이 적게는 여덟 살, 많게는 수십 살 위인 어른들만 가득했대. 하지만 인주는 매일매일이 즐거웠어. 커트 하는 법, 파마 하는 법을 정식으로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거든. 신나게 실습하고 집에 와선 그제야 다리 아픈 걸 느낄 정도였으니 알 만하지?

    그런데 딱 하나, 인주도 극복하기 어려운 게 있었어. 아직 작은 키! 20㎝가 넘는 받침대를 들고 다니며 실습했지만 첫 번째 실기시험에서 떨어진 것도 키 때문이었대. 어른용 가위를 쓰느라 손가락은 또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

    △2개월 만에 미용상만 네 개… 주특기는 '파마웨이브'

    인주는 지난 6월과 7월 전국 규모의 미용기능대회에 출전해 상을 무려 네 개나 받았어. 파마웨이브 부문에선 두 대회 모두 대상을 차지했지. 물론 참가자 대부분은 고교생 또는 대학생 언니·오빠들이었어.

    인주가 처음부터 입상을 예상한 건 아니었어. ‘그저 경험 삼아’ 나간 거였으니까. 그래서 상을 받고도 시상식에 못 간 대회도 있어. 대회가 오전에 끝났는데 발표는 오후 6시였거든. 별 기대 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나중에 수상 소식을 듣곤 무척 속상해했대.

    요즘 엄마 미용실엔 인주를 찾아오는 손님이 꽤 있어. 학교 친구들도 인주에게 머리 손질이나 헤어 스타일 상담을 부탁해. 인주가 제일 기쁠 땐 생각했던 대로 머리가 나오는 순간이야. ‘미용사 선배’인 엄마가 일하시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 헤어 스타일에 대해 엄마와 토론을 벌이는 것도 인주가 좋아하는 일이야.

    인주는 요즘도 매일 두 시간씩 학원에서 실습을 해. 세계적인 헤어 디자이너가 되려면 한시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거든. 8~9년쯤 실무 경력을 쌓은 후엔 미용기능사보다 한 단계 높은 미용장 자격시험에도 도전해볼 생각이야.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줄 인주의 꿈을 다 함께 응원하지 않을래?


    '라메종 0809' 이종문 대표가 인주에게
    "헤어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건 스타일 찾아내는 감각이지…"

  • -왜 헤어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선택하셨나요?

    “틀에 박히지 않은,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평생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일을 해야겠단 생각도 있었고요. 어릴 때부터 패션·미용 쪽에 관심이 많았거든. 시골 출신인데 고등학교 때 이미 파마를 하고 다닐 정도로 멋을 좀 냈죠.” (웃음)

    -주위에서 반대는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남자가 무슨 미용 일을 하느냐’는 인식이 강했어요. 집안 분위기도 워낙 보수적이어서 한동안 미용 일 하는 걸 부모님께 숨겨야 했고요.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지만 처음 몇 년간은 대학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주눅 들기도 했지요. 하지만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제가 미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됐어요. 역겹기만 했던 파마약 냄새가 그리웠거든요. 그다음부턴 정말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만으로 열심히 달려왔죠.”

    -언제 보람을 느끼세요?

    “손님들이 기뻐할 때죠. 머리가 마음에 든다는 진심 어린 인사를 받으면 ‘아, 내가 누군가를 기쁘게 해줬구나’ 싶어 뿌듯합니다. 잠깐 일을 쉰 적이 있는데, 많은 손님들이 ‘언제 일을 시작하느냐’며 전화를 주셨어요. 전 스스로를 공인(公人)이라고 생각해요. 절 필요로 하는 분이 이렇게 많잖아요.”

    -기능대회에 참가하려고 요즘도 학원엘 다녀요. 대회 참가가 훌륭한 미용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될까요?

    “기술을 익히는 덴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미용은 수학이 아니에요. 헤어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감각’입니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내고,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어내야 하죠. 대회 준비에 치중하기보다 패션 잡지 등을 보며 최신 스타일을 연구하거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미용 일은 한 공간에서 수시로 많은 사람과 부딪쳐야 하니까요.” 

    △이종문 대표는…
    23년 경력의 헤어 디자이너. 현재 라메종0809 대표다. 영화 ‘미스터 주부 퀴즈왕’ ‘4인용 식탁’, 광고 ‘KT 국제전화’ ‘애니콜’ ‘피자헛’ 등의 헤어 연출을 담당했다. 배두나·신민아·이영애·조인성 등 인기 연예인들의 헤어 스타일을 맡고 있다.

    소질을 꿈으로 키운 인주의 비법

    1단계: 관심 가는 일은 부모님께 말씀드려 바로 시도해보기
    2단계: 작은 일이라도 해낼 때까지 끝까지 집중하기
    3단계: 시험에 떨어져도 꿈쩍 안 할 만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4단계: 매일 잠깐이라도 꿈과 관련된 행동 하기
    5단계: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확실한 목표 세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