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담벼락 따라 동네 풍경이 '좌~악'
고양=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
기사입력 2010.09.18 23:30

고양 원당초 담장 39m에 놀이터ㆍ방앗간 등 조형물
재개발로 사라질 '추억'들 아이들도 작품으로 남겨

  • 경기 고양 원당초등학교(교장 송두영) 담벼락이 최근 새 옷을 갈아입었다.

    학교를 둘러싼 긴 담장을 따라 높이 32㎝, 길이 38.6m의 조형물이 설치된 것. ‘초록 물고기: 원당 메모리즈’란 이름의 이 코르텐강(내후성 강판) 조형물 안엔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이 고장의 옛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담겨 있다.

  • 16일 원당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작품이 들어 있는 학교 담장 조형물을 가리키며 활짝 웃고 있다. / 고양=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 16일 원당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작품이 들어 있는 학교 담장 조형물을 가리키며 활짝 웃고 있다. / 고양=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24년 역사의 재래시장인 원당 시장, 주교동과 성산동을 가로지르는 교외선, 넓게 펼쳐진 텃밭, 동네 어귀의 익숙한 방앗간 등은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원릉역 표지판, 밥그릇, 요강 등 주민들이 대대로 사용하던 손때 묻은 물건도 있다. 전시된 작품은 총 40점.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원당초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10여 점의 미술작품이다. 이 학교 2학년과 5학년 어린이 65명은 지난 6월 말부터 한 달간 일주일에 두 시간씩 문화예술 강사 선생님의 특별 지도를 받으며 조형물에 들어갈 작품을 제작했다. 5학년 수업을 진행한 윤희숙 강사는 “등하굣길 친구들과 있었던 일, 자주 갔던 가게와 학원 등 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진 추억들을 작품에 담을 수 있도록 지도했다”고 말했다.

  • 이렇게 완성된 작품 속엔 어린이들의 순수한 눈에 비친 원당지역의 풍경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도화지를 접어 입체적으로 만든 ‘우리 마을 지도’에선 마상공원, 배다리공원, 목욕탕과 놀이터, 과일가게와 문구점 등 지역 명소와 친숙한 건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어린이들이 그린 ‘원당 마인드맵’ 속엔 선생님, 시험, 학원, 소중한 친구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마을 자랑을 담은 그림과 글 여러 점도 전시작에 포함됐다.

    조형물을 설치한 사단법인 ‘내일의 도시’ 측은 “고양시의 재개발 소식을 듣고 고양문화재단에 이 프로젝트를 건의했다”며 “재개발을 막을 순 없지만 다음 세대에게 ‘예전의 원당은 이런 모습이었다’는 걸 알리고 싶어 지역 주민, 어린이들과 함께 동네의 역사를 기리는 조형물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형물 제작에 참여한 김민지 양(2년)은 “마을 지도를 그리고 소개 글을 쓰면서 우리 고장 곳곳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며 “내가 만든 작품을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