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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상의 모터스포츠 F1 그랑프리 경주차는 ‘첨단기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성능을 내기 위해 첨단기술과 소재가 아낌없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F1을 누비는 경주용 차는 그냥 차(car)가 아닌 머신(machine·기계)으로 불린다.
▶머신 한 대, 말 750마리가 내는 힘과 맞먹어
F1용 머신은 엔진 출력에서부터 상식을 뛰어넘는다. 머신의 엔진 배기량은 2400cc로 국산 중형차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도로에서 흔히 만나는 동급 배기량의 국산 승용차 출력이 170~180마력인 데 비해 F1용 머신의 출력은 750마력에 이른다. 마력(馬力)이 말 한 마리의 힘을 기준으로 한 단위란 점을 감안하면 F1 머신 한 대가 말 750마리에 해당하는 괴력을 내는 셈이다. 24대의 머신이 동시에 출격하는 F1 출발 장면과 비슷한 힘을 연출하려면 말 1만8000마리가 동원돼야 하는 셈이다. -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굉음의 원천은 엔진의 회전속도(rpm)다. 현재 운용되는 F1용 머신은 1만8000rpm까지 사용한다. 1분에 피스톤이 1만8000번이나 움직인다는 뜻이니 엄청난 굉음을 동반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일반 승용차의 엔진은 아무리 높아도 5000~6000rpm에 불과하다.
F1용 머신은 출력이 높은 만큼 속도 또한 빠르다. 경기장에서 내는 최고 시속은 350㎞. F1용 머신의 뛰어난 성능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브레이크다. 머신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60㎞까지 속도를 낸 다음, 다시 정지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6초 이내다. 또한 시속 340㎞에서 시속 80㎞로 감속할 때 필요한 거리는 고작 100m 정도다. 시간도 3초 남짓이면 충분하다. -
▶공기 저항 최소화하는 ‘공기역학’ 기술이 관건
F1용 머신의 차체는 벌집 모양의 알루미늄 구조물 위에 탄소섬유 껍데기를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제조 방식은 차 무게를 고려한다 해도 지구 상에서 가장 단단한 구조다. 시속 200㎞ 이상으로 달리다가 충돌해도 운전자가 크게 다치지 않는 건 그 덕분이다.
F1용 머신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공기역학이다. 이 때문에 F1용 머신 디자이너들은 “공기역학이 경주용 차 성능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도 섀시(차체를 받치며 바퀴에 연결된 철제 테두리) 디자이너들은 대회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 공기역학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공기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초창기 모터스포츠계는 차체의 공기역학적 효율을 높여 직선도로에서 최고 속도를 올리는 데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엔 속도를 줄일 때나 코너를 돌 때도 공기역학적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F1에서 공기역학이 최우선적 고려 대상이 된 건 40여 년 전이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머신 앞부분에 있던 라디에이터(내연기관의 냉각장치)가 양옆으로 옮겨지고 경주용 차의 형태가 쐐기꼴에 가까워진 것도 공기역학을 고려한 결과다.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윙(wing·날개)은 항공기 날개를 그대로 본뜬 것으로 경주용 차가 땅과 최대한 밀착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
▶첨단 기술의 집합체… 대당 가치 100억 원 넘어
F1용 머신에선 자동변속기 설치가 금지돼 있다. 모든 머신에 전자식 반자동 변속기가 쓰이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F1용 머신은 수동변속기를 단 일반 승용차와 달리 클러치 페달이 없다. 페달로 클러치 조작을 하지 않고 핸들에 달린 레버를 당겨 기어 단수를 조절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F1에 출전하는 운전자는 기어를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이 200분의 1초에 불과하다. 다만 머신이 방향을 잃고 회전하는 상황에서 운전자가 핸들을 놓칠 경우 동력을 끊지 못해 엔진이 꺼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F1용 머신의 성능은 알면 알수록 놀랍다. 하지만 대가도 따른다. 돈이다. F1용 머신은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레이싱 전용 머신을 조립하려면 나사 하나까지 따로 만들어야 한다.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F1용 머신은 판매용 차가 아니어서 딱히 정해진 가격이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개발 비용과 부품 값 등을 종합해볼 때 한 대당 약 100억 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높은 가격 부담에도 불구하고 BMW·메르세데스 벤츠·르노·도요타 등 세계 유명 자동차 업체들이 F1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유연하고 창의적인 개발능력을 겨루며 진정한 기술의 한계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자동차 기술자가 10년을 쌓아야 얻을 수 있는 경험을 F1에선 단 1~2년 만에 깨칠 수 있다. 결국 이들 업체가 F1에서 갈고닦은 경쟁력이 신차 개발의 질과 속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꿈의 레이스 F1 그랑프리] "첨단 기술의 F1은 차가 아니라 '머신'이라 부른대"
벌집 구조 덕분에 차체는 가볍고 단단
항공기 날개 본뜬 '윙'… 공기 저항 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