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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김유리 양(가명·경기 성남)은 또래보다 몸집이 크다. 키 135㎝에 몸무게 36㎏. 부모님은 발육이 남다른 딸을 보며 “키도 크겠다”고 흐뭇해했다. 하지만 얼마 전 유리네 집은 발칵 뒤집혔다. 아이 가슴에 멍울이 생긴 것. 부랴부랴 찾아간 병원에서 유리는 ‘성조숙증(性早熟症)’이란 진단을 받았다.
평소 활발한 성격이었던 초등학교 3학년 이수빈 양(가명·서울)은 요즘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다. 얼마 전 시작된 생리 때문이다. 아직 뒤처리가 서툴러 생리혈을 옷에 묻히는 실수를 했고 그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심한 놀림을 받은 것. 수빈이 말곤 아직 생리를 시작한 반 친구가 없다는 점도 수빈이를 우울하게 한다.
◆비만·유전·환경호르몬이 '3대 원인'
성조숙증 환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04년 3200명 수준이던 성조숙증 환자는 2007년 1만3000명으로 4배나 늘었다. 2008년엔 상반기에만 1만여 명이 성조숙증 관련 진료를 받았다.
성조숙증이란 말 그대로 사춘기가 일찍 시작되는 것. 여자 어린이는 8세 이전에 유방이 발달하고 남자 어린이는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는 등 사춘기 현상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여자 어린이는 초등 4학년 정도부터 가슴이 생기고 5~6학년에 초경을 시작한다. 남자 어린이는 이보다 2년쯤 늦은 만 12세를 전후해 사춘기에 따른 신체적 변화가 나타난다.
성조숙증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박기원 서울 서정한의원장(한의학 박사)는 “비만으로 인한 경우가 65%로 가장 많고 유전적 요인이 25%, 환경호르몬이나 스트레스 등 기타 원인이 나머지 1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만은 성조숙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개 여자 어린이는 체중 30㎏, 남자 어린이는 40㎏가 넘어서면 성호르몬 분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조숙증이 키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점이다. 이기형 서울 고려대안암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는 “성호르몬이 정상보다 너무 빨리 분비되면 성장판(成長板·뼈가 자라는 장소)이 일찍 닫혀 초등 4~5학년 때 이미 성장이 멈추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부모의 큰 키는 성조숙증 어린이의 성장 장애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와 관련해 박기원 원장은 한 어린이의 사례를 들었다. “얼마 전 키 141㎝의 초등 1학년 여학생이 병원을 찾아왔어요. 본인 키도 또래 친구들보다 10여㎝가 컸고 아빠(174㎝)·엄마(163㎝) 키도 큰 편이었죠. 하지만 성조숙증 증세로 이미 초경을 해버려 최종 예상 키는 147㎝에 불과했습니다.”
◆ 남자 어린이, 치료 시기 놓치는 경우 많아
성조숙증은 어린이의 정서 발달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래와 다른 신체적 변화나 증상 때문에 종종 놀림의 대상이 되기 때문. 몸은 이미 어른인데 정신연령은 아이에 머물러 있는 데서 오는 혼란도 피할 수 없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한 결과. 여자 어린이라면 어른이 됐을 때 생리통과 생리불순에 시달리거나 조기폐경이 올 확률이 커진다.
성조숙증은 치료가 가능할까? 이기형 교수는 “성호르몬의 이른 분비를 억제해 사춘기 발달과 성장 속도를 조절하면 성장판이 일찍 닫히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성조숙증의 원인이 비만이라면 비만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치료 시기. 이 교수는 “현재까지 알려진 성조숙증 환자의 90% 이상이 여자 어린이인데, 유방이 발달하는 등 신체 변화가 뚜렷해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거꾸로 말하면 남자 어린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가 명확하지 않아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
“나도 혹시 성조숙증”
□ 외모가 또래에 비해 조숙해 보인다.
□ 가족이나 친척 중 키가 일찍 크고 성장이 일찍 멈춘 사례가 있다.
□ 성장 발육이 빠르다.
□ 키에 비해 체중이 많이 나가고 몸에 지방이 많다.
□ 다른 아이보다 성적 호기심이 많다.
이렇게 예방하세요!
-규칙적인 운동으로 체중을 조절한다.
-동물성 지방,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섭취를 줄인다.
-환경호르몬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잠은 하루 8시간 이상 충분히 잔다.
-자극적인 TV 프로그램과 컴퓨터 게임 등은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므로 되도록 멀리한다.
도움말 : 서정한의원
아…벌써? 성장 멈추게 하는 '성조숙증' 4년 새 약 7배 증가
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비만·호르몬 조절하면 빠른 사춘기 막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