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예뻐지고 싶어요!" 화장하는 초등생들
김지혜 인턴기자 april0906@chosun.com
기사입력 2010.09.08 01:03

용돈 모아 부모님 몰래 화장품 구입
"눈매 또렷ㆍ걸그룹처럼 자신감 생겨"
전문가들 "외모 지상주의 영향" 우려도

  • “초등 5학년인데요. 기초화장법이랑 아이라이너 그리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친구들은 좀 어색하게 그리는 거 같고…. 사진 첨부해서 가르쳐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kun*****)

    “제가 요즘 예뻐지고 싶은데…. 초등생 화장법이랑 그 화장에 어울리는 옷 입는 법 좀 알려주세요.” (skrwl**)

  • 지난 1일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로드숍에서 초등학생들이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 김지혜 인턴기자
    ▲ 지난 1일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로드숍에서 초등학생들이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 김지혜 인턴기자
    최근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질문들이다. 요즘 인터넷상에선 이처럼 ‘어린이 화장법’ ‘초등생 화장법’과 관련된 글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른들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화장(化粧)의 대상 연령이 점차 낮아져 초등생까지 이른 것. 실제로 요즘 거리에서 화장으로 곱게 단장한 초등학생과 마주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취재 중 만난 지수현 양(인천 부곡초 4년)은 “주로 5·6학년 언니들이 비비크림이나 팩트, 아이라이너 등으로 화장을 한다”고 말했다. 한세민 양(서울 우신초 6년)은 “친구 중 화장하는 애들이 많다”며 “화장법을 배우는 곳은 주로 인터넷”이라고 귀띔했다.

    어린이들이 주로 화장품을 구입하는 곳은 어딜까? 정답은 에뛰드하우스·미샤·더페이스샵 등의 저가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road shop·도로변에 위치한 매장). 부모님 몰래 화장품을 구입해야 하는 데다 주머니가 가벼워 늘 선택은 ‘용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화장품’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화장품 로드숍 매장에서 만난 열세 살 전지수 양(가명·인천 부평구)은 “용돈을 모아 부모님 몰래 로드숍에 들러 비비크림이나 아이라이너 같은 화장품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이 매장 직원 구이슬 씨(23)는 “어린이 고객은 주로 예쁘게 포장된 상품들을 좋아한다”며 “아이라이너·립틴트(lip tint·입술에 바르면 물이 들듯 색이 스며드는 화장품)·립밤 같은 제품이 잘 팔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 취재 중 만난 한 어린이가 보여준 자신의 화장품 가방(파우치) 속 내용물들. 다양한 색상의 아이섀도와 비비크림, 파우더 팩트, 아이라이너, 하이라이터, 컨실러, 립스틱, 매니큐어 등이 눈에 띈다. / 김지혜 인턴기자
    ▲ 취재 중 만난 한 어린이가 보여준 자신의 화장품 가방(파우치) 속 내용물들. 다양한 색상의 아이섀도와 비비크림, 파우더 팩트, 아이라이너, 하이라이터, 컨실러, 립스틱, 매니큐어 등이 눈에 띈다. / 김지혜 인턴기자
    화장하는 어린이들이 꼽는 ‘내가 화장을 하는 이유’ 중 1순위는 ‘자신감’이다. 김민영 양(가명·13·서울 은평구)은 “아이라이너를 그리면 눈이 크고 또렷해 보여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허지연 양(가명·13·인천 부평구)은 “화장한 내 모습은 평소 때보다 강해 보여 좋다”며 “남자친구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도 화장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평소 좋아하는 연예인을 닮기 위해 화장한다는 어린이도 있었다. 임유미 양(가명·13·서울 영등포구)은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멤버 가인 언니처럼 눈매를 연출하고 싶어 그와 비슷하게 아이라이너를 그리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화순 국제뷰티산업학회 부회장(화장심리학 전공)은 “TV 등의 매스컴에 쉽게, 자주 노출되는 환경에 있는 요즘 어린이들이 예쁘게 꾸민 연예인을 동경(憧憬·간절히 그리워해 그것만 생각함)하게 됐고, 그 결과가 ‘화장하는 어린이’의 등장”이라고 지적했다. “어린이도 어른과 똑같은 이유로 화장을 합니다. 화장을 통해 연예인처럼 예뻐 보이고 싶은 욕구도 충족시키고 자신감도 얻죠. 하지만 이런 현상은 문제가 많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루키즘(lookism·외모지상주의)이 어린이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얘기니까요.”
     

    전문가 인터뷰/김희정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교수

    취재 중 만난 대부분의 어린이는 화장에만 신경 쓸 뿐, 클렌징(cleansing·화장을 깨끗이 닦아내는 일)엔 소홀했다. 일부는 “화장한 사실이 선생님께 들통나면 물로 대충 문질러 지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화장이 어린이 피부에 해가 되진 않을까? 어린이의 바람직한 화장품 사용에 대해 김희정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교수에게 물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을 하면 피부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궁금해요.
    “초등학교 때 많은 학생이 사춘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피부의 가장 큰 특징은 피지 분비가 늘어난다는 거예요. 모낭 과각화 현상(각질 세포가 심하게 벗겨지면서 모낭을 막는 것)으로 인해 여드름도 많이 생기죠. 특히 화장하는 학생 중 일부는 여드름을 가리려고 여드름이 난 부분에 파운데이션을 덧칠하곤 해요. 그러면 여드름이 더 심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화장하는 어린이 대부분이 클렌징엔 소홀한데요. 문제가 없을까요?
    “두꺼운 화장은 피부를 덮어 모공을 막기 때문에 외출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클렌징 제품을 사용해 충분히, 깨끗하게 지워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여드름이 악화되는 건 물론, 여러 피부 트러블에 시달릴 수 있답니다.”

    -어린이의 올바른 화장품 사용법을 알려주세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화장품 사용 부위가 가렵거나 각질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요. 심하면 진물이 흐르기도 하죠. 그럴 땐 자극성 피부염 발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어요. 당장 화장품 사용을 중단하고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 상담 후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소년조선일보 독자를 위해 초등생 피부 관리법을 귀띔해주세요.
    “초등생 땐 아침저녁으로 고체비누나 거품비누 등을 이용해 꼼꼼하게 얼굴을 씻는 게 중요해요. 그런 후엔 보습제를 발라 건강한 피부 장벽을 유지하는 게 좋고요. 외출 등 야외활동을 할 땐 선블록크림을 발라주는 것도 잊지 마세요. 단, 어른들이 사용하는 마사지팩이나 영양크림은 자칫 여드름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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