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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야, 소원이 뭐야? 원하는 걸 말해봐.”
“….”
“그럼,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자동차요!”
“가을에 국제자동차경주대회 보러 가는 건 어때? 괜찮으니까 말해봐.”
“…. 전 그냥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마음껏 놀아보고 싶어요.” -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차승주 군(경기 평택 덕동초 1년)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승주의 부모님은 지난 3월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이뤄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아들의 소원을 들어달라며 신청서를 접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단 측이 승주네 집에 자원봉사자들을 보냈다. 승주의 ‘진정한 소원’을 함께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자원봉사자들은 5개월간 수시로 승주를 찾아 함께 게임을 하고 대화도 나누며 친해졌다. 이 과정에서 승주가 자동차 라이트만 봐도 차 종류를 줄줄이 맞힐 정도로 ‘자동차 박사’란 사실을 알게 됐다. 슈퍼카를 태워주거나 경주용 자동차를 체험시키는 게 어떨까 고민하던 상황. 그런데 승주가 의외의 소원을 말하며 진짜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이란 진단을 받기 전까지 승주는 누구보다 건강한 아이였다. 유치원에서도 또래 중 가장 키가 컸고, 유난히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개구쟁이였다. “2008년 4월, 승주가 고열 증세를 보이며 한 달간 동네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증세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수원 큰 병원에 옮겨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백혈병이라더군요.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때를 떠올리는 승주 어머니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승주는 그 길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1년간의 집중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입원 다음날부터 투여된 독한 항암제 때문에 한 달 만에 승주의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다. 무엇보다 승주를 괴롭힌 건 백혈병으로 인한 합병증. 곰팡이균이 간과 비장에 감염되면서 열이 40도 이상 오르는 날이 7~8개월간 계속됐다. 고열 때문에 백혈병 환자에게 가장 위험하다는 폐렴까지 왔다. 하지만 힘겨운 순간도 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치료를 잘 받은 덕분인지 증세가 점점 좋아졌다. 정확히 1년 뒤인 이듬해 4월엔 집중치료를 끝내고 퇴원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승주는 2주에 한 번씩 통원치료를 받으며 경과를 지켜보는 ‘유지치료’ 중이다. 완치 판정을 받은 건 아니지만, 항암제를 줄이자 머리카락도 다시 예쁘게 났고 올해는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
하지만 승주의 마음 한구석엔 늘 아쉬움이 있었다.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 학교 수업이 끝나면 승주의 친구들은 모두 학원으로 가지만, 승주는 곧장 집으로 와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무리하면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승주는 “친구들과 노는 시간은 수업 시간 틈틈이 있는 쉬는 시간 10분씩이 전부”라며 “자동차도 좋지만 친구들과 종일 실컷 놀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침내 승주의 소원이 결정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승주 가족과 친구 세 명이 함께하는 당일 여행을 준비했다. 그리고 ‘위시 데이’(Wish Day·소원이 이뤄지는 날)인 7월 17일 오전 10시, 승주네 아파트 앞에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멋진 캠핑카 한 대가 도착했다. 캠핑카엔 ‘승주네 패밀리가 떴다’라는 문구와 함께 가족사진이 인쇄된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봉사자들이 차를 좋아하는 승주를 위해 특별히 ‘캠핑카’를 빌려온 것이다.
이들의 목적지는 충남 태안.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태안에서 어린이들은 오후 내내 염전·갯벌체험을 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저녁엔 근처 해변으로 이동해 승주가 좋아하는 립(rib·갈비에 소스를 발라 구워 먹는 음식)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이날 눈 깜짝할 새 밥 두 그릇을 뚝딱 비우는 승주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고 했다. “아이가 매일 한 알씩 항암제를 먹고 있는데, 이 약이 식욕을 떨어뜨려서 평소엔 밥을 반 그릇도 못 먹어요. 밥 먹이는 게 전쟁인데 아이가 오랜만에 맛있게 밥을 먹어줘서 정말 행복했어요.”
소원을 이룬 지 한 달이 지난 1일 오후 만난 승주는 겉보기엔 아프다는 걸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밝고 건강했다. 승주는 “위시 데이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소문을 들은 반 친구들이 다음에 놀러 갈 땐 자기들도 불러달라고 부탁해 조금 곤란했다”며 “친구들과 진흙 속에서 조개와 꽃게를 잡으며 놀았던 갯벌체험, 캠핑카, 자원봉사자 형·누나들과 함께한 시간들 모두가 너무 즐거웠다”며 환하게 웃었다.
승주 어머니는 “아이가 아프면서 힘든 적도 많았지만 난치병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는 자원봉사자를 만나며 세상에 훌륭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그분들 덕분에 승주도 웃음을 잃지 않고 힘을 내서 건강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재단은 난치병 어린이들을 위한 국제적인 전문 소원 성취 기관이다. 소아암·백혈병 등으로 장기간 투병하는 만 3~18세까지의 아동 및 청소년들에게 소원 성취의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2002년 11월 설립됐으며, 매년 어린이 300여 명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
※소년조선일보는 앞으로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지면을 통해 어린이의 ‘작지만 소중한 소원 이루기’ 현장을 찾아갑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공동기획)
[소원을 말해봐] "친구들과 맘껏 놀고싶은 꿈 이뤘어요"
평택=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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