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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순서>
① 국내 딱 두 곳, WHO 국제안전학교에 가다
② 광명·안양 두 도시의 노력
③ ‘안전지킴이벨 설치 의무화’ 법안 만든 어린이들
최근 몇 개월간 잇단 어린이 성폭력 사건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했다. ‘어린이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란 반성의 목소리도 많았다. 일련의 사건 뒤엔 어린이 안전과 교육에 무신경했던 어른들의 책임이 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린이와 관련된 사건사고는 상처와 후유증이 유독 크고 오래간다. ‘어린이가 행복하지 못한 나라엔 미래가 없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열번, 백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소년조선일보는 2학기 시작과 함께 올 상반기 이후 계속 지적되고 있는 어린이 안전문제 관련 기획을 준비했다. 그 첫 회는 ‘어린이 안전에 관한 한 세계적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평가를 받는 WHO(세계보건기구) 국제안전학교(International Safe School) 얘기다. -
국내에 WHO 국제안전학교는 딱 두 곳, 경기 수원 정자초등학교(교장 임종생)와 서울 성산초등학교(교장 김진향)뿐이다. WHO 국제안전학교로 인정을 받으려면 까다로운 국내외 심사를 거쳐야 한다. 국내에선 아주대학교의료원(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내 지역사회안전증진연구소가, 해외에선 스웨덴 스톡홀름 카로린스카 연구소 내 WHO 지역사회안전증진협력센터가 각각 심사와 공인 작업을 맡는다.
WHO 국제안전학교는 WHO가 펼치고 있는 국제안전도시사업의 일환(一環·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여러 부분 중 하나)이다. WHO 국제안전학교가 되려면 무려 일곱 가지의 깐깐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아래 참조> 전문가의 의견을 참조해 안전 정책을 세우고, 사고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결과는 학교 안팎의 모든 구성원이 볼 수 있도록 게시판에 공개하고. 언뜻 봐도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WHO 국제안전학교의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이다. -
◆국내 1호 ‘WHO 공인’ 수원 정자초
정자초등학교는 지난 2008년 10월 28일 WHO 국제안전학교로 지정됐다. 전 세계에서 18번째, 우리나라에선 최초다. 임종생 교장 선생님은 그 비결을 “학교 인근 소방서·보건소·경찰서·대학 등과 함께 학생의 안전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안전을 비단 어린이 개개인과 가정에만 맡겨두지 않고 선생님·학부모·전문가로 구성된 네트워크의 책임으로 돌린 덕분이란 얘기다.
임 교장 선생님이 틈만 나면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내 몸의 안전을 지키는 게 바로 효도의 기본’이란 것이다. “내 몸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재산이잖아요. 게다가 어렸을 때 얻은 상처는 평생 가니 어린 시절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고 잘 지키는 것만한 효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학교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어린이 성폭력 사고만큼이나 심각한 어린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운동장 한쪽엔 ‘안전공원’을 만들었다. 여러 종류의 교통안전 표지판을 설치해 어린이들이 등·하굣길에 늘 관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교통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조잔디 구장 둘레엔 모의 도로도 만들었다.
유향우 정자초등 안전교육부장 선생님은 이 밖에도 자랑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동요나 가요 가사를 안전 관련 내용으로 바꿔 부르는 안전송(song) 대회도 열었어요. 외부인이 학교를 방문할 땐 무조건 이름표를 달도록 한 제도도 저희가 처음 시작했죠.” 학교 측의 이런 노력은 해외에서도 입소문을 탔다. 작년엔 일본 오사카교육대학 이케다부속초등학교 교사들이 정자초등의 어린이 안전 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찾기도 했다. -
◆'에스가이즈' 운영하는 서울 성산초
서울 성산초등학교는 올 6월 22일 국내에선 정자초등에 이어 두 번째로 WHO 국제안전학교로 지정됐다. 이 학교의 자랑은 ‘에스가이즈(S-Guys)’ 제도와 ‘에스캐슬(S-Castle)’ 프로그램. 앞의 것은 성산초등 4~6년 재학생 중 희망자를 가려 뽑은 교내 안전대원을, 뒤의 것은 이들이 수행하는 ‘안전성(城) 쌓기’ 과정을 각각 의미한다.
“에스가이즈 대원이 선정되면 관내 마포구 보건소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전원 안전예방교육을 시킵니다. 교육을 끝낸 대원에겐 한 명당 한 대씩의 카메라를 지급하죠.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는 위험 상황을 촬영하고 1개월에 한 번씩 안전점검회의를 열어 각 대원이 촬영해온 내용을 공유한 후 해결책을 찾습니다.”(김용옥 교감 선생님)
‘에스캐슬’은 에스가이즈 대원들의 문제 해결 과정을 게시판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김용옥 교감 선생님에 따르면 에스캐슬은 △위험 요소 △해결 과정 △해결 완성 등 3단계로 구성된다. 단계별 상황에 따라 사진과 설명을 붙이는 건 에스가이즈 대원들의 몫이다. 에스캐슬의 게시물은 학생이 많이 오가는 복도 게시판에 설치해 구성원 모두가 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학교 곳곳엔 총 14대의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도 설치돼 있다. 하루 24시간 가동되는 화면은 교무실과 당직실에서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김진향 교장 선생님은 “최근 초등학교 주변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들 때문에 학부모의 걱정이 크다”며 “자기 손자는 물론, 손자 친구들의 안전까지 염려돼 매일 어머님들과 팀을 짜 등·하교 시간에 맞춰 교문을 지키는 할머님까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성산초등은 WHO 국제안전학교가 된 이후 한동안 없었던 학교 담(120㎝ 높이)도 새로 만들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시킨 후, 정해진 코스에 따라 학생들을 안전하게 등·하교하도록 돕는 ‘워킹스쿨 버스’ 제도 역시 이 학교의 특징 중 하나다.
WHO 국제안전학교로 지정되기 위한 일곱 가지 조건
①학생·교사·교직원·학부모가 협력해 ‘안전학교 운영위원회’를 운영한다.
②운영위원회 구성원과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안전한 학교 정책을 마련한다.
③이미 있던 프로그램은 과감히 정리하고 학교 구성원의 나이·성별·환경·상황 등을 감안해 오랫동안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④교내에서 사고 위험이 가장 높은 대상과 환경에 초점을 맞춰 사고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⑤학교 구성원의 사고 발생 횟수와 원인을 파악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⑥안전학교 정책과 프로그램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한다.
⑦WHO 국제안전학교 네트워크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한다.
[기획취재] 학교ㆍ학생ㆍ학부모 힘합쳐 이중삼중 '안전 자물쇠' 꽁꽁
손정호 인턴기자
wilde18@chosun.com
[기획취재ㅣ'학교 안전' 어디까지 왔나?]
정자초ㆍ성산초 '국제 안전학교' 공인
CCTVㆍ안전공원 등 물 샐틈없는 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