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곡물 수출 금지··· 빵·과자값 오르고, 식탁 경제 '먹구름'
손정호 인턴기자 wilde18@chosun.com
기사입력 2010.08.27 09:40

출렁대는 세계 '곡물 시장'

  • “안녕, 어린이 친구들! 난 밀이야. 너희가 좋아하는 빵과 과자의 재료지. 난 저 멀리 러시아에서 왔어. 하지만 요즘 내 꼴은 말이 아니란다. 가뭄이 너무 심해 비 구경을 언제 했는지도 가물가물해. 우리 가족도,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가공·유통과정을 거쳐 세계 어린이 친구들의 입을 즐겁게 해줬지만 올핸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아. 푸틴 할아버지(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러시아 시장 안정을 위해 곡물 수출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거든. 얘들아, 정말 미안해···.”


  •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한 트레이더가 양손을 머리에 올린 채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러시아가 밀 수출 금지령을 발표하면서 5일(현지 시각)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지난해 9월 인도분 밀 가격은
부셸(약 27.2㎏)당 7.85달러로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AP
    ▲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한 트레이더가 양손을 머리에 올린 채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러시아가 밀 수출 금지령을 발표하면서 5일(현지 시각)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지난해 9월 인도분 밀 가격은 부셸(약 27.2㎏)당 7.85달러로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AP
    러시아 수출금지령 발표에 세계 곡물가 ‘출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 15일(이하 현지 시각) 러시아 곡물가격 급등(急騰·갑자기 올라감)을 막기 위해 곡물 수출금지령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올해 러시아의 곡물 예상 생산량은 많아야 6500만t(톤)이다. 지난해(9700만t)보다 35%나 줄어든 수치다. 러시아는 세계 3대 곡물 수출국이다. 이번 수출금지 조치가 세계 곡물시장에 미칠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곡물 생산량을 줄이기로 한 나라는 러시아뿐만이 아니다. 밀과 보리를 많이 수출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올해 작황(作況·농작물이 잘되고 못된 상황)이 나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홍수로 농사를 망쳐 농산물 가격이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연히 세계 곡물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국제 밀 가격은 올 8월 현재 한 달 전보다 43%나 올랐다.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선 8월 5일 현재 인도산(産) 밀이 1부셸(bushel·밀의 무게 단위)당 6센트 오른 7.85달러에 거래됐다. 2008년 이후 가장 큰 가격 상승폭이다. 러시아 등지에 비 소식이 전해지며 26일 6.86달러로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가격이다. 옥수수 가격도 6.2% 오르며 1부셸당 4.25달러에 거래됐다. 보리와 쌀 가격 역시 급등했다.

    곡식 값이 오르면 다른 상품 값도 오른다고?

    2008년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우리나라 국민이 소비하는 곡물 중 우리나라 농부가 키운 곡물의 비중)은 26.2%였다. 필요한 곡물의 4분의 3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농림수산품 수입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11.1% 올랐다. 올 4월(2.4%)·5월(7.3%)·6월(9%)보다도 높은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폭 역시 커지고 있다. 품목별로 보면 커피는 한 달 전보다 9.8%, 밀은 8.5%, 옥수수는 1.1% 값이 올랐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밀·옥수수·보리·쌀 등 곡물을 재료로 하는 빵과 과자 가격도 덩달아 오른다. 밀과 옥수수는 소·돼지 등 가축의 사료로도 쓰인다. 자연히 곡물 가격은 쇠고기나 돼지고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입 비중이 높은 품목은 더 큰 타격을 받는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밀 수요량은 약 365만t인데 국내 밀 생산량은 3만5000t(약 1%)에 불과하다. 국제 거래가격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파리바게뜨·던킨도너츠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SPC그룹의 한 관계자는 “국제 곡물가가 상승하면 빵과 도넛 가격도 오른다”며 “국내 제과업계는 국제 곡물가격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밀 사업 부문을 점차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곡물값이 물가 좌우 애그플레이션 공포

    ‘곡물 가격 상승’과 ‘(곡물 가공품인) 빵·과자 가격 상승’, 그다음은 뭘까? 일부에선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현상으로 2007~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식량 위기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이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돈의 가치는 떨어지는데 물가는 올라 시민의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의 합성어. 곡물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이 올라 다른 물가까지 동반 상승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곡물과 식품 등 ‘먹을거리’의 가격 상승은 시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애그플레이션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세계 식량 위기가 왔을 때, 아프리카 카메룬에선 끝없이 오르는 곡물 가격을 견디지 못한 시민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 움직임도 심상찮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10일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농작물과 식품 가격 급등에 따른 서민경제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농협중앙회·농수산물유통공사·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회의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밀 수출 금지령을 발표했다고 해서 당장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국제 곡물가격 추이에 주목하며 가격 상승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편, 김재수 농촌진흥청장은 지난 13일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각국이 수출금지 조치 등을 악용해 식량을 무기화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며 “이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독자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이런 것도 궁금해요!

    애그플레이션에 대한 소년조선일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국 고등학교 경제동아리 모임에 ‘SOS’를 외쳤다. 전국 고등학교 경제동아리는 교내에 자체적으로 경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 전국 24개 고교의 ‘예비 경제학자’ 30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Q. 우리나라는 특히 식량 자급률이 낮은데요. 대책은 없나요?

    A.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7%도 안 되죠. 그래서 수요는 많고 공급은 달리는 밀·옥수수·감자 등의 가격이 오를 때마다 국내 식료품 가격이 함께 올랐어요. 이런 곡물가격 상승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답니다. 여기에 투기 세력, 즉 곡물 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미리 사재기하는 이들까지 끼어들면 국제 곡물가격은 2005년 석유파동 때처럼 치솟을 수도 있어요. 이 때문에 중국은 자기 나라 국민이 소비할 곡물을 확보하기 위해 베트남과 브라질의 농장을 통째로 사들였죠. 우리나라도 국제 곡물가격의 영향을 덜 받으려면 해외 농산물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박지훈 군(서울 대원외고 2년)

    Q. 애그플레이션이 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죠?

    A. 애그플레이션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말이지만 앞으로 점점 많이 쓰일 거 같아요. 가뭄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농산물 생산의 감소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나 엘니뇨 현상 등 이상 기후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애그플레이션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단 얘기죠. 결국 이 모든 건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요. 애그플레이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환경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답니다.

    장경진 양(서울 상명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고 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