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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땅 위로 나갈 거야. 눈이 부실지도 모르니까 조심해!”
19일 낮 1시 30분 지하철 2호선 대림역. 남자 어린이 두 명과 어머니가 전동차 운전석에 올라탔다. 복잡한 운전장비 사이로 시끄러운 기계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졌다. 엄성환 기관사의 능숙한 조종으로 어둠 속에 가려졌던 선로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엄 기관사 옆에 서 있던 곽규빈 군(서울 성수초 1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이날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여름방학을 맞아 ‘나는야 시민의 발을 책임지는 일일기관사’ 체험 행사를 마련했다. 초대된 이들은 초등생을 포함, 서울·경기도 시민 50명이었다. 10개 조로 나뉜 ‘일일기관사’들은 차례로 △운전석 탑승(대림역~성수역) △군자지하철기지 방문 △서울메트로 인재개발원 견학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단순한 승객 입장에선 쉽사리 접하기 어려운 체험 위주로 구성돼 특히 어린이들의 호응이 높았다.
군자지하철기지에서 만난 이준혁 군(경기 양주 연곡초 3년)은 ‘지하철의 휴식처’인 이곳의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하철 수십 대가 시간표대로 들고나는 광경이 멋있었어요. 지하철 기관사 아저씨들이 교대로 운전한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았고요.” 같은 학교 친구 윤자빈 군도 무척 들떠 있었다. “승객 입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땐 ‘왜 이렇게 느리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운전석에서 보니 전동차 속도가 훨씬 빠르게 느껴졌어요.”
서울메트로 인재개발원(성동구 용답동)에 도착한 어린이들을 기다린 건 지하철 전동차 모의 운전연습기였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원리를 활용해 마치 게임을 하듯 지하철을 실제처럼 운전해볼 수 있는 시설이었다. 원래는 서울메트로 소속 기관사의 운전 연습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일일기관사’들의 차지였다. “운전 도중 장애물이 나타나기도 하고 짙은 안개로 앞이 뿌옇게 되기도 했어요. 마치 제가 진짜 기관사가 된 것 같아 기분 최고였어요!” 운전연습기 체험을 마친 이지원 군(경기 과천 경계초 5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오후 5시 30분, 모든 일정을 소화한 참가자들에겐 명예기관사증이 주어졌다. 높은 신청률 때문에 매번 탈락의 쓴맛을 보다가 3년 만에 일일기관사 체험에 성공했다는 주부 안명희 씨(서울 관악구)는 “늘 승객이었다가 기관사가 되고 보니 마치 객석에 있다가 무대에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신은수 군(서울 미성초 4년)은 “조종석에 선 순간이 제일 감동적이었다”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참가자들에게 명예기관사증을 나눠준 조성근 서울메트로 운전팀장은 “일반 시민은 잘 모르지만 서울 지하철은 런던·파리·도쿄와 함께 세계 4대 지하철에 꼽힐 만큼 앞선 시설을 자랑한다”며 “공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란 점에서도 자랑할 만하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2004년부터 연 1~2회 일일기관사 체험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20일엔 서울 상록보육원 어린이 30명이 일일기관사로 나섰다.
"실제 기관사 된 것처럼 신났어요"
손정호 인턴기자
wilde18@chosun.com
서울메트로 '일일기관사' 체험… 참가자들 명예기관사증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