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배 작가의 맛 이야기] 효녀를 깨운 씀바귀(하)
신현배 작가
기사입력 2010.08.22 00:02

일주일 밤낮으로 약 달이던 효녀, 결국 잠들고 말았는데…"얘야, 졸릴 땐 이 씀바귀 나물을 씹거라"

  • 의원은 효녀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딸을 약방으로 데려가 어머니가 드실 약을 지어 주었는데, 헤어질 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약은 보통 약이 아니야. 하루에 서른여섯 번 달여 꼭 정해진 시각에 드시게 해야 하거든. 그러니까 하루에 드실 약이 서른여섯 봉지이고, 열흘 동안 총 삼백육십 봉지의 약을 드시게 해야 해. 단 한 봉지라도 거르게 되면 약효는 전혀 없어. 그러니까 약을 달일 때 졸아서 약을 태우지 말란 말이야.”

  • 삽화=양동석
    ▲ 삽화=양동석
    “명심하겠어요.”

    딸은 의원에게 약 보따리를 받아들고 약방 문을 나섰습니다.

    하루에 서른여섯 번씩, 열흘 동안 계속 약을 달이려면 단 하루도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열흘 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것입니다.

    딸은 집으로 돌아와 약을 달이며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어머니를 살리는 일이야. 도중에 잠이 들어서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할 수 없어.’

    딸은 졸음이 쏟아지면 허벅지를 꼬집으며 견뎠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잠들지 않고 꼬박꼬박 약을 달여 어머니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을 넘기면서 딸은 더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허벅지를 꼬집어도 눈이 저절로 감기고, 잠이 홍수처럼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8일째 되는 날, 딸은 약을 달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벼락 치는 고함이 들렸습니다.

    “얘야, 잠들면 안 돼! 졸리면 이 나물을 씹어라!”

    딸은 고함에 놀라 잠이 깼습니다. 자기 손을 보니 씀바귀가 쥐여 있었습니다.

    딸은 씀바귀를 입에 넣고 씹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잠이 싹 달아나고 정신이 들었습니다. 씀바귀의 쓴맛이 졸음을 앗아간 것입니다.

    이때부터 딸은 잠이 몰려오면 씀바귀를 질겅질겅 씹었습니다. 그렇게 잠을 쫓아 남은 이틀 동안 약을 달여 어머니께 먹였습니다.

    딸의 정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요. 아니면 열흘 동안 꼬박꼬박 약을 달여 드려 약효가 나타난 것일까요. 어머니는 열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게다가 허리병까지 나아 건강한 몸이 됐습니다.

    “애썼다. 네가 나를 살렸구나.”

    “어머니!”

    어머니와 딸은 서로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씀바귀는 ‘효녀를 깨운 나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답니다.

    봄나물 대표주자 '씀바귀'…첫맛 쓰지만 뒷맛은 달아

  • 씀바귀는 우리나라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는다고 ‘월동엽(越冬葉)’이라 불리며, 쓴맛이 있다고 ‘씀바귀’라는 이름을 얻었다.

    씀바귀는 그 쓴맛 때문에 과거 공부하는 선비나 간병하는 효자들에게 크게 애용됐다. 잠을 쫓는다고 씀바귀즙을 내어 마셨다고 한다.

    또 처음에 쓰지만 뒷맛은 달아, ‘시경’에는 “씀바귀를 쓰다고 하지 마라. 알고 보면 냉이처럼 다니”라고 기록돼 있다.

    대표적인 봄나물로, 이른 봄에 뿌리와 어린잎을 캐어 나물로 해 먹는다. 살짝 데쳐 물에 여러 번 담가 쓴맛을 빼내어 무쳐 먹거나 볶아 먹는데, 맛이 좋아 봄에 입맛을 돋우는 나물로 널리 알려졌다. 봄에 많이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며, 씀바귀로 담근 김치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