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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이네 집 현관에 들어서면 누구나 놀라게 돼. 널찍한 거실에 소파 말곤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 그 흔한 TV도, 책장도 없어. 이유가 뭘까? 호성이의 대답은 간단했어.
“로봇 경기장이 필요하거든요.” 씨름장도 아니고 로봇 경기장이라고? 로봇이 왜 호성이네 집에서 경기를 해야 할까? 호성이는 그다음 대답도 쉽게 했어. “제가 만든 로봇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그리고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종종 거실에서 경기를 해요.” 열두 살짜리 꼬마가 로봇을 만든다고?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니?
△아주 특별한 ‘로봇 노트’ 세 권
호성이에겐 특별한 노트가 세 권 있어. 일곱 살 때부터 차근차근 써온 노트들이지. 여기엔 온갖 표정과 동작의 로봇들이 있어.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복잡한 설계도도, 장차 만들고 싶은 로봇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들어 있어.
호성이는 로봇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노트에 꼼꼼히 적곤 해. 로봇이 생각대로 잘 안 움직일 때면 몇 번이고 설계도를 고치고 다시 조립하길 반복하지. 그러곤 도대체 어디가 문제였는지, 또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노트에 적어둬.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래.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자, 아빠
호성이가 로봇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건 일곱 살 때였어. 로봇 경기를 중계해주는 TV 프로그램을 유난히 좋아하고, 또 틈날 때마다 조립 장난감 ‘레고’로 로봇을 만들곤 했대.
하지만 무엇보다 호성이의 꿈을 키워준 건 아빠의 사랑이야.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면 머리가 좋아진다’며 호성이의 취미 생활을 적극 도우셨대. 덕분에 불과 1년 만에 호성이는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 만큼 실력이 늘었지. 아빠가 로봇 전문가냐고? 전혀!
호성이가 3학년이 되자, 아빠는 전문 교육기관을 찾아 나섰대. 호성이가 모터를 두 개 이상 사용해 단순 작업이 가능한 구동형 로봇을 만드는 수준이 되자, 한계를 느끼신 거지. 그렇게 해서 만난 게 ‘부천 로보파크’야. 호성이는 고학년들만 활동하던 엘리트반에 막내로 들어갔어. 그런데 주 1회 열리는 수업의 맨 뒷자리는 아빠 차지였대. 어느 날 호성이가 아빠에게 물었어. “아빠, 애들만 듣는 수업에 왜 들어오시는 거예요?” 아빠의 대답은 호성이를 감동시켰어. “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아빠가 설명해줘야 하잖아.”
△“제 사전엔 실망도, 자만도 없답니다”
로보파크 소속이 된 첫해 여름, 호성이는 광주에서 열린 국제로봇올림피아드에 출전했어. 그런데 그만 사고가 발생했어. 대회 전날 밤 ‘한 번 더 연습한다’는 게 그만 모터 드라이버가 타버린 거야. 너무 졸린 나머지 선 하나를 잘못 연결한 거지. 물론 참가에 의의를 둔 대회였지만, 광주까지 가서 아무것도 못하고 올라올 순 없잖아? 다행히 다른 선수에게서 여분의 드라이버를 구해 무사히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어. 결과는 별로였어. 참가상이나 다름없는 장려상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호성이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 좋게 돌아왔어. 처음 출전하는 대회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거든.
이듬해부터 호성이는 성민이 형(홍성민 군·경기 부천서초등 6년)과 팀을 이루며 승승장구했어. 공룡로봇올림피아드와 국제로봇올림피아드 1등을 모조리 휩쓸었거든.
하지만 절대 스스로를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아. “운이 좋아서 1등을 했을 뿐”이라고 편하게 생각해. 긍정적인 사고야말로 호성이의 최고 장점 중 하나야.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로봇’ 제작이 꿈
호성이의 꿈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로봇을 만드는 게 꿈이야. 소방관 아저씨 대신 위험한 화재 현장에 들어가서 불을 끄는 로봇 같은 것 말이야. 최근 새로 시작한 컴퓨터프로그래밍 공부가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지. 수학 공부, 영어 공부에 열심인 까닭도 마찬가지야. 어때, 근사하지? 호성이 같은 친구가 많을수록 우리 미래는 풍요롭고 편리해지지 않을까?
호성이의 '꿈 키우는 비법'
1단계 : 꿈을 향해 같이 노력해줄 가족을 만든다.
2단계 : ‘꿈노트’를 만들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기록한다.
3단계 : 궁금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해결한다.
4단계 : 대회에 적극 참가하되, 결과에 울고 웃지 않는다.
5단계 :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
▨ 로봇 과학자 오준호가 "꼬마 로봇박사' 이호성에게
- 교수님도 어릴 적부터 로봇 과학자가 되고 싶었나요?
“어느 한 분야로 한정 지은 건 아니고 그냥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호성 군도 로봇 과학자가 되겠다며 그 분야 공부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맘땐 과학의 여러 분야에 대해서 폭넓게 공부하고 흥미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한 시기거든요.”
- 과학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뭘까요?
“호기심이죠. 뭐든 알고 싶어 하고, 꼭 원하는 수준의 답을 얻고자 하는 마음요. 내 손으로 만져봐야, 만들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이 없으면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없어요.”
- 지난해 ‘달리는 휴머노이드’(휴보2)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셨는데요. 요즘은 어떤 연구를 하고 계세요?
“사실 휴보2는 아직 걷고 달리는 게 초보 수준이에요. 울퉁불퉁한 길에서도 잘 뛰고, 누가 밀어도 쓰러지지 않는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 요즘도 연구 중이랍니다.”
-미래의 로봇은 어떤 모습일까요? 제 생각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상상하기 어려워요. 많은 기계가 로봇화(化)될 거니까요. 이를테면 ‘청소하는 로봇’은 대부분의 사람이 로봇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엄연한 로봇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니까’요. 사람의 모습을 닮은 로봇은 로봇의 한 형태일 뿐이에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오준호 교수(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장)는
기계공학 전공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휴머노이드로봇 연구에 뛰어들어 3년 만인 2004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휴보(HUBO)’를 개발해 국내외 로봇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09년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달리는 휴머노이드로봇’ 휴보2를 선보이며 우리나라를 로봇강국으로 이끌고 있다.
[꿈을 좇는 인터뷰] '꼬마 로봇박사' 이호성 (경인교대부설초등 5년)
인천=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사람 대신 일하는 로봇 만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