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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헤라·비너스 같은 그리스·로마 신들이 서양 그림에 수없이 등장하듯 우리 옛 그림에도 신선이 자주 등장해. 그래, 오늘은 하늘에 산다는 신선들 이야기야. 우리와 생김새는 어떻게 다를까? 무슨 일을 하며 살까? 참 궁금하지 않니?
● 옛 그림은 오른쪽부터
‘군선도’! 바로 신선들의 이야기야. 그 유명한 김홍도(1745~?)의 작품이지. 이 작품은 크기부터 남달라. 길이가 무려 575cm가 넘는 그림에 19명의 신선들이 등장하지. 이들은 지금 신선의 여왕 서왕모의 잔치에 초대받아 가는 길이야. 그림을 어느 쪽부터 보면 되냐고? 옛 그림은 보통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봐야 해. -
● 신선들이 한자리에!
첫 번째 신선은 호리병을 쳐다보고 있는 ‘이철괴’야. 그 앞에는 빡빡머리 ‘여동빈’이 있어. 여동빈은 늘 칼을 차고 다니면서 요괴들을 물리쳤대. 여동빈 옆을 보면 붓을 들고 두루마리에 뭔가 쓰려는 신선이 있어. ‘문창’이야. 과거 시험을 돌보는 신선이었어. 선비들이 매우 좋아한 신선이지.
문창 뒤쪽에 두건을 쓴 신선은 ‘종리권’이야. 신선이 되기 전엔 용맹한 장군이었대. 전쟁에 나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어떤 노인을 만나 신선이 됐지. 종리권 바로 앞에 복숭아를 든 신선은 ‘동방삭’이야. 하나를 먹으면 무려 6만 년을 산다는 천도복숭아를 3개나 훔쳐 먹은 걸로 유명하지. 지금도 죽지 않고 아마 어디서 살고 있을 거야.
그 앞에 외뿔소를 탄 할아버지 보이지? 바로 신선들의 왕 ‘노자’란다. 노자는 공자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중국의 사상가였어. 이번엔 엿장수 가위처럼 생긴 물건을 든 신선을 보자. 저 물건은 ‘박’이란 악기고, 물건을 든 신선은 ‘조국구’야. 저 박을 치면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났다고 하니, 정말 신통한 박이지.
바로 뒤에 얼굴이 반쯤 가려진 신선은 ‘한상자’야. 한상자는 제 맘대로 꽃을 피우기도, 술을 만들기도 했대. 신기하게도 그 술을 마신 사람은 병이 다 나았다고 하지.
나귀를 탄 신선은 좀 특이하지? 이 신선은 ‘장과로’야. 흰 나귀를 타고 돌아다니다 쉴 때는 나귀를 종이처럼 접어서 보관했대. 입에 물을 머금었다가 확 뿌리면 다시 나귀로 돌아오고. 이젠 맨 앞쪽을 보자. 복숭아를 든 여인이 보일 거야. 이름은 ‘하선고’야. 여동빈을 만나 복숭아를 얻어먹은 뒤 신선이 됐대. 그래서 복숭아를 들고 있지. 그 뒤에 바구니를 멘 신선은 선생님도 잘 모르겠어. 어떤 사람은 ‘남채화’, 또 어떤 사람은 ‘마고’라고 하거든. 나머지 여덟 명은 어른들을 모시는 동자 신선들이야. -
● 스스로 움직이는 화면
이 그림을 보면 혹시 움직이는 느낌이 안 드니? 신선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어가는 듯 말이야. 잔치에 가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장면을 잘 나타냈지. 김홍도의 다른 작품인 ‘말 탄 사람들’도 군선도와 비슷한 구도란다.
다시 군선도를 보자. 그림의 선도 막힘이 없어. 시작과 끝이 분명한 선이야. 힘을 실은 자신만만한 붓질이지. 신선들의 삶을 엿본 느낌은 어떠니? 사는 모습이나 생김새가 우리와 별다를 게 없지? 앞으로 이런 신선들을 만나면 반갑게 맞아줘야 돼. 그래야 섭섭하지 않지. 자, 약속!
[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김홍도의 '군선도'
복숭아 든 여인·나귀 탄 노인·잔칫길 오른 신선들
"생김새도 차림도 우리랑 다를 게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