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ㅣ약탈문화재 모셔오자] 문화재 반환 둘러싸고 '총성 없는 전쟁'
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기사입력 2010.08.11 09:42

"우리 것 돌려달라" vs "옮기면 훼손되니 못 준다"
②세계는 지금 문화재 반환 전쟁 중

  •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 바로 앞엔 4층짜리 현대식 건물이 있다. 지난해 6월 개관한 뉴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다. 이곳엔 파르테논 신전 외벽에 있던 부조(浮彫·돋을새김), 일명 ‘엘진 마블’이 전시돼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베이지색, 나머지는 흰색이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베이지색 부조는 신전에서 떼어다 놓은 진짜이고 흰색 부조는 복제품이다. 진짜 중 나머지는 현재 런던 영국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19세기 초 오스만제국에 파견된 영국 대사 엘진 백작은 파르테논 신전의 벽화를 떼어내 본국으로 보냈다. 이때 신전 4개 면에 걸쳐 약 160m 길이로 장식돼 있던 부조 중 절반가량이 영국으로 넘어왔다. 1816년 귀국한 엘진 백작은 이를 영국박물관에 팔아넘겼다. 그리스는 터키에서 독립한 1829년부터 이 조각들을 반환해달라고 영국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 세계는 지금 약탈 문화재 반환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약탈국들은 대부분 원래 소유국의 요청을 무시하고 있다. /①‘네프리티티 왕비 흉상’. ②,에티오피아의 ‘오벨리스크’는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③영국박물관에 보관 중인 ‘엘긴 마블스’ 중의 하나. ④‘황소머리 조각상’.중국은 청조 원명원에서 도난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사들였다. ⑤‘로제타석’. / 조선일보 자료사진
    ▲ 세계는 지금 약탈 문화재 반환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약탈국들은 대부분 원래 소유국의 요청을 무시하고 있다. /①‘네프리티티 왕비 흉상’. ②,에티오피아의 ‘오벨리스크’는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③영국박물관에 보관 중인 ‘엘긴 마블스’ 중의 하나. ④‘황소머리 조각상’.중국은 청조 원명원에서 도난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사들였다. ⑤‘로제타석’. / 조선일보 자료사진
    세계 곳곳에서 약탈 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과거 식민지 지배를 받거나 전쟁을 치르면서 다른 나라에 문화재를 빼앗긴 이집트·그리스·중국 등이 영국·미국·프랑스·이탈리아 등을 상대로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엔 우리나라를 포함한 16개국이 이집트 카이로에 모여 ‘문화재 보호·반환 국제회의’를 갖고 공동으로 ‘문화재 되찾기’에 나서기도 했다.

    약탈 문화재를 되찾는 데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이집트다. 이집트는 3400년 전 제작된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胸像·사람을 가슴까지만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을 놓고 독일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흉상은 1912년 이집트에서 발견돼 이듬해 독일로 반출됐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시작된 이집트의 반환 요구에 독일 정부는 “합법적으로 건네 받은 것이며, 함부로 옮기다간 자칫 흉상(凶狀·모양이 흉한 상태)이 될 수 있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집트는 고대 상형문자 해석에 결정적 열쇠를 제공한 로제타석을 보관 중인 영국에도 반환을 요청해놓은 상태다.

    중국은 지난해 아예 전담팀을 만들어 미국·영국·프랑스 등을 돌며 자국의 약탈 문화재 실태를 파악했다. 페루와 미국 예일대학교는 마추픽추 유물을 둘러싸고 실랑이 중이며, 캄보디아 정부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 등에 떠도는 앙코르와트 사원 유적을 되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우리나라 시민단체 문화연대도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달라’며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유물 전쟁’은 약탈해간 나라가 버티면 해법이 없다. 유네스코의 약탈 문화재 반환 규정은 1970년 이후 거래된 약탈 문화재에만 적용돼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이는 강제성을 띤 국제법도 아니다. 이 때문에 빼앗겼던 유물이 제 나라에 돌아간 경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다. 

    물론 치밀한 계획과 집요한 협상으로 문화재를 돌려받은 성공 사례도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집트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약 3만1000점의 문화재를 돌려받았다. 2008년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으로부터 파라오 시대 고분벽화 5점을 돌려받기도 했다. 유물이 반환될 때까지 모든 협력관계를 중단하겠다고 나오자, 때마침 카이로 남부에서 파라오 무덤을 발굴하고 있던 루브르박물관이 한발 물러선 것. 에티오피아는 61년간의 끈질긴 반환 요청 끝에 무려 70년간 로마 한복판에 서 있던 오벨리스크(기념비)를 2005년 본국으로 되가져갔다. 에티오피아의 고대 도시 악숨에 1700년 동안 서 있던 높이 27m의 이 오벨리스크는 1935년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에 의해 로마로 옮겨졌다. 리비아는 1912년 이탈리아 군대에 빼앗겼던 2세기 비너스상을 2008년 돌려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