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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맹호도’는 합작품이야. 호랑이는 김홍도가, 소나무는 누가 그렸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 실망하지는 마. 여기서 중요한 건 호랑이니까. 숲 속을 주름잡던 조선 호랑이의 늠름한 모습이 그대로 들어 있잖아. 정말 멋지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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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수록 감탄스러운 나노의 예술
등은 구부리고 꼬리는 바짝 세웠어. 매서운 눈으로 앞을 노려보고 있지. 누구도 꼼짝 못할 눈빛이야. 이런 자세는 고양잇과 동물의 특징이지.
‘송하맹호도’는 ‘소나무 아래 사나운 호랑이를 그린 그림’이란 뜻이야.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뭘까? 물론 살아 있는 듯한 호랑이의 모습이지.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어. 김홍도는 바늘처럼 꼿꼿하면서도 실처럼 부드러운 수만 개의 털을 생생하게 그려 냈어. 그냥 두꺼운 붓으로 칠한 게 아니야. 가는 붓으로 터럭 한 올 한 올을 죄다 그렸지. 정말 사람 솜씨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야.
너희 ‘나노(nano)’란 말 들어 봤니? 10억분의 1을 뜻하는 아주 작은 단위야. 요즘 기계·정보통신·화학·생물 분야에서 다루는 아주 미세한 기술을 말하지.
이 그림도 나노의 예술이야. 왜냐고? 마치 호랑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섬세하게 그렸잖아. 정말 컴퓨터처럼 정교하고 꼼꼼한 손놀림이야.
●정말 호랑이를 보았을까?
‘송하맹호도’와 비슷한 그림을 보여 줄게. 옆에 있는 ‘죽하맹호도’야. ‘대나무 아래 호랑이를 그린 그림’이란 뜻이지. 여긴 소나무 대신 대나무가 있네. 호랑이 모습도 좀 더 작아. 자세도 반대 방향이고, 얼굴도 약간 옆으로 틀었어. 역시 호랑이의 사나운 모습을 잘 나타냈지.
두 그림을 볼 때마다 이런 궁금증이 들어. ‘과연 김홍도는 살아 있는 호랑이를 실제로 보았을까?’
너희 생각은 어떠니? 실제로 보았다고? 호랑이를 만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무서운 호랑이의 발톱을 어떻게 벗어나니. 설사 운이 좋아 살았다고 쳐. 보는 순간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히잖아. 아무리 관찰력이 뛰어난 김홍도라지만 호랑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나 했을까?
실제 호랑이를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저런 생생한 호랑이를 그려 냈을까? 거참, 이도 저도 아니네. 정말 미스터리야. 다만 이런 생각은 해볼 수 있겠지. 김홍도는 궁궐에 자주 드나들었잖아. 정조 임금이 무척 아꼈으니까. 궁궐에는 진귀한 물건이 많았거든. 그러니 분명 살아있는 호랑이도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우리는 행복한 거야. 지금은 멸종된 조선 호랑이의 늠름한 모습을 이렇게라도 볼 수 있으니까. 사진기도 없었던 시대에 김홍도의 솜씨 덕분에 우리 눈이 호강하는 거지, 뭐.
[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김홍도 '송하맹호도'
털 한올한올… 늠름한 호랑이의 모습 그대로
'조선시대의 나노 예술' 놀랍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