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부부 애태우는 '보육 현실'] [3] 격무·저임금 시달리는 보육교사 체험해보니…
특별취재팀
김시현 기자 shyun@chosun.com
송원형 기자 swhyung@chosun.com
박진영 기자 jyp@chosun.com
기사입력 2010.06.16 03:01

아이들 밥먹이랴 청소하랴… 교사들, 막노동 같은 하루 9시간
종일 쉴 시간 없고 아파도 휴가 엄두못내… 보수는 시간당 5000원 아르바이트 수준…

  • 지난 9일 오후 1시 서울 구로구 개봉2동 현대아파트 단지 내 '현대열린어린이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어린이 10여명이 양치를 하려고 세면대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몇몇 장난꾸러기들이 수도꼭지를 손으로 막고 물장난을 쳐 바닥이 물바다가 됐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눈을 떼지 못했다. 푸른하늘반 일부 아이들은 반찬으로 나온 브로콜리를 먹기 싫다며 뱉고 쏟아서 보육교사 한현아(37)씨는 음식물을 치우고 닦느라 식사를 하지 못했다.

    한씨는 "점심시간이 가장 힘들다"며 "아직 식사습관이 갖춰지지 않은 아이들이 밥을 먹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음식을 씹지 않고 입에 물고 삼키지 않으며 애를 먹인다"고 했다.

    점심 배식을 돕기 위해 기자가 오렌지와 당근·브로콜리가 든 그릇을 들고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줬다. 아이들은 "누구예요?", "괴물 아저씨다"라며 옷을 잡아당기고 발로 차기도 했다. 다른 보육교사 유지혜(29)씨가 능숙한 솜씨로 밥·국 배식을 끝내고 반찬 배식을 도와줬다.

  • 9일 서울 구로구 현대열린어린이집에서 본지 송원형 기자(왼쪽)가 한 어린이에게 거북이 모양의 모자를 씌워 주고 있다.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12시간 동안 보육교사 일일 체험을 한 송 기자는“보육교사의 열악한 업무 환경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 9일 서울 구로구 현대열린어린이집에서 본지 송원형 기자(왼쪽)가 한 어린이에게 거북이 모양의 모자를 씌워 주고 있다.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12시간 동안 보육교사 일일 체험을 한 송 기자는“보육교사의 열악한 업무 환경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반마다 점심시간에 한바탕 전쟁을 치른 뒤 보육교사들은 식사 뒷정리를 하느라 바빴다. 의자를 탁자 위에 올리고 청소기와 걸레를 들고 방을 치웠다. 순식간에 청소가 끝났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기 전에 재빨리 청소를 끝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들이 청소를 하고 있는 사이 아이 세 명이 서로 밀쳤다며 싸웠다.

    낮잠을 재우기 위해 아이들을 눕혔지만 아이들은 바로 잠들지 않았다. 서보민(3)군은 다리를 들고 흔들며 장난쳤다. 보육교사 김상희(33)씨가 보민이를 다독이며 잠들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이 잠들자 보육교사들은 어두운 방에서 보육일지를 정리하고 부모에게 전달하는 알림장을 썼다. 틈틈이 수업준비도 했다. 한씨는 아이들이 잠들자 그제야 두 살배기 아들을 돌보고 있는 어린이집에 전화해 아이 안부를 물었다. 한씨는 "아이한테 폐렴 증세가 보여 집에서 봐주고 싶었지만, 선생님이 모자라 마음대로 휴가를 쓸 수도 없다"고 했다. 한씨는 "평일에 선생님들과 함께 밖에 나가 우아하게 점심 한 번 먹는 게 어린이집 선생님들 소망"이라고 했다.

    오후 7시쯤이 되자 대부분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꼬박 12시간가까이 일한 보육교사들은 녹초가 된 몸으로 장난감을 소독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보건복지부 전국보육실태조사(2009)에 따르면, 보육교사의 월 평균 급여는 126만원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평균 155만원을 받고 민간 어린이집 평균 월급여는 102만원 수준이다. 하루 평균 9시간30분 일한다. 한 달에 25일 근무한다고 치면 1시간에 5000원쯤 받는 셈이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4110원이고 웬만한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시급(時給)이 5000원을 넘는 점을 감안하면 보육교사는 격무(激務)에 박봉(薄俸)이다.

    보육교사 이지나(26)씨는 최저임금(월 92만8860원)보다 못한 92만원을 월급으로 받고 있다. 이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근무한다"며 "매일 아이들 위생을 위해 식기와 이불을 삶는 등 육체적으로 고된 일도 많은데, 그에 비하면 박봉"이라고 했다.

    연차가 쌓여도 월급은 오르지 않는다. 보육교사 경력 20년차인 박민자(49)씨는 "현재 월급이 120만원 정도"라며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월급은 거기서 거기"라고 했다.

    딸이 보육교사인 안모(52)씨는 "20대인 딸이 2~3세 아이들을 보육시간 내내 안아주고 업어주다가 허리디스크와 관절염에 걸렸다"며 "월 120만원을 받는데 근무시간을 따져보면 시간당 4000원 조금 넘는 아르바이트 수준"이라고 했다. 안씨는 "비싼 등록금 내고 4년제 대학까지 졸업시킨 딸이 이런 근무조건에서 언제까지 일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대열린어린이집 이인혜(49) 원장은 "요즘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격무에 시달리는 보육교사를 하려는 사람이 없다"면서 "지금까지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보육교사가 노동력으로 대신한 셈이다. 보육교사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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