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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직원 박모(33)씨는 지난해 3개월간 출산휴가를 쓰고 회사에 복귀했다. 아기를 회사 내 보육시설에 맡겼지만, 젖 먹이러 갈 때마다 상사들 눈치가 보였다. 박씨는 아이를 집에서 키우기로 하고 조선족 도우미 아줌마를 불렀다. 하지만 도우미 아줌마가 매일 진한 화장을 하고 와서 그만두게 했다. 한국인 도우미도 써 봤지만 자기 집 빨래를 갖고 와 함께 세탁기에 돌렸다. 박씨는 두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돼 아이를 돌보고 있다.
직장인 주부 '워킹맘'들에게 애 낳고 키우는 일이 고역(苦役)이 된 지 오래다. 회사에서 늘 아기 문제로 눈치를 봐야 하고 그렇다고 믿고 맡길 데도 없다.
◆눈치 보며 애 키우는 워킹맘들
워킹맘 전모(35)씨는 "올 초 아이가 신종플루에 걸려 3일 휴가를 썼는데, 회사 눈치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며 "출산 전후에는 중요 프로젝트를 맡기지 않을까 봐 배가 부른 티가 나는 6개월까지 임신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임모(33)씨는 지난 3월 아이를 낳고 복직했지만 좌불안석이다. 임씨는 "아이 때문에 야근 빠지는 일이 많아져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죄인이 된 느낌"이라며 "어쩔 수 없이 늦게 귀가하는 경우도 있어 일도, 보육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애 키우는 데 집중하면 직장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된다. 대기업에 근무했던 이모(37)씨는 출산 후 2년간 아이를 키우다가 재취업을 위해 대기업 7~8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낙방했다. 이씨는 전에 다녔던 직장보다 연봉이 500만원 적은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이씨는 "집에서 놀던 아줌마를 쓰려 하는 직장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임신도 순서 정하는 법원·병원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 간호사 김모(30)씨는 3년 전 출산 후 복직한 자리에서 수간호사로부터 "가능하면 순번을 정해서 임신하자"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첫째 낳고 바로 둘째를 갖고 싶었는데 눈치가 보여 2년 터울로 낳았다"고 했다. 병원에선 '임신 순번제'가 공공연하게 시행된다. 김씨는 "임신이라는 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보니 어쩌다 같은 병동에서 간호사 2명이 동시에 임신하면 둘 다 바늘방석에 앉는다"고 했다.
병원뿐 아니라 법원에서도 임신 순서를 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김모(30) 판사는 "강요는 아니지만 업무가 많다 보니 임신할 때는 서로 고려한다"고 했다. 김 판사는 "순서를 정해 임신하는 것도 문제지만 출산휴가를 다녀와서는 3개월간 쌓인 일을 하기 위해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며 "아이 보는 일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친정·시부모 모여 살고 주말부부 수두룩
서울 강서구에 사는 회사원 김나현(33)씨는 친정·시부모님과 10분 거리에 산다. 원래 성북구와 마포구에 거주하던 양가 부모님들이 2년 전 김씨 집 근처로 이사했다. 맞벌이하는 김씨 부부를 대신해 4살·2살 손자·손녀를 돌봐주기 위해서다. 김씨는 "친정과 시집이 집 가까이 온 뒤로는 애들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도 한결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아이 봐줄 보육 도우미와 함께 사는 경우도 있다. 회사원 김모(34)씨는 3년 전부터 조선족 보육인 아주머니와 같이 산다. 한 달 130만원을 주고 있다. 김씨는 "돈도 부담되고 같이 사는 것도 불편하지만 부부가 모두 퇴근이 늦으니 할 수 없다"며 "아이를 늦게까지 봐주는 보육시설을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육아 문제 때문에 주말부부 생활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회사원 이모(34)씨는 현재 32개월 된 아이와 함께 친정에 들어가 살고 있다. 남편은 평일에는 집에서 혼자 산다. 남편은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친정에 들러 애를 보고 저녁을 먹은 뒤 혼자 집에 간다.
재단법인 한국보육진흥원 박숙자 원장은 "24시간 아이를 봐주는 보육시설이나 직장 보육시설을 늘릴 필요가 있지만 양육부모들에게 근로시간을 줄여주거나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해 일도 하고 애도 키울 수 있도록 하는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젊은 부부 애태우는 '보육 현실'] [2] 맘 놓고 낳고 키울 수가 없다
워킹맘들 눈치보며 육아… 동료끼리 '출산 순번' 정하기도
"애 낳으면 경력에 큰 손해… 야근 등 빠져 죄짓는 느낌"
보육 때문에 주말부부 생활, 친정·시부모와 함께 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