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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은 누굴까? 키 큰 농구 선수나 격투기 선수? 덩치가 산만 한 역도 선수? 아니, 바로 등을 구부린 이 사람이야. 한 스님이 세상이 좁다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어. 몸을 구부렸는데도 화면이 꽉 찼지. 스님을 만나러 그림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세상에서 가장 깊은 잠
이렇게 쪼그리고 자는 잠을‘고주박잠’이라고 해. 고주박이 뭐냐고? 땅에 박힌 채 썩은 소나무 그루터기를 말해. 스님이 웅크린 모습과 비슷하지? 이 그림 제목은 ‘오수삼매도(午睡三昧圖)’야. 중인 출신으로 도화서 화원을 지낸 유숙(1827~1873년)이란 화가가 그렸지. 유숙은 그림 솜씨를 인정받아 임금의 초상인 어진도 세 번이나 그렸대.
그림 제목인 ‘오수삼매’는 ‘낮잠에 푹 빠졌다’는 뜻이야. 정말 스님은 달콤하게 자고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불편하기만 한데.
▶자세한 얼굴 묘사
스님 머리 모양이 아주 예뻐. 달걀처럼 갸름하잖아. 그뿐이 아니야. 이마도 넓고, 귀도 길쭉하고, 눈썹도 짙어. 제법 잘생긴 스님이지만 젊은 스님은 아니네. 나이 든 분이 이렇게 자고 있으니 더욱 안타깝지.
이번에는 발가락을 볼까? 신발 앞창이 툭 터져 발가락이 모두 삐져나왔어. 궁색한 형편이 그대로 드러났지. 그래도 수행으로 다져진 몸이야. 스님은 두 손을 얌전히 무릎에 모으고 그 위에 얼굴을 살짝 묻었어. 그러고는 잠에 빠져들었지.
화가는 스님의 얼굴과 몸은 대체로 자세히 묘사했어. 하지만 옷은 누더기 이불을 덮어 놓은 듯 굵은 선으로 대충 그렸어. 세속적인 삶에는 별 관심 없는 스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지.
▶먹의 농담을 살린 표현
가운데 늘어뜨린 선은 아주 굵고 진해. 물을 많이 탄 먹을 붓으로 듬뿍 찍었어. 옛 그림은 화선지에 그렸잖아. 이렇게 하면 종이에 먹물이 스르르 번지는 효과가 나거든.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운 멋 가운데 하나지.
오른쪽 선은 반대야. 붓에 먹물을 빼고 옅게 그렸어. 굵은 가운데 선과 비교해 봐. 옅고 짙음이 뚜렷하지? 먹의 농담을 살리는 것이 우리 옛 그림의 특징이야.
이렇듯 전체적으로 보면 가늘고, 굵고, 짙고, 옅음을 마음대로 구사했어. 물 흐르듯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붓질이야. 보통 솜씨가 아니라는 말이지. 느릿느릿하고 흐물흐물한 붓놀림으로 조는 스님을 깨우지 않으려는 배려 아닐까?
▶같은 듯 달라!
오수삼매도는 달마 스님이 갈댓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는 모습을 담았어. 백은배(1820~?)의 ‘좌수도해도’를 볼까? 오수삼매도에 나오는 스님과 똑같은 자세로 잠든 채 강을 건너고 있어. 갈댓잎과 바다를 빼면 오수삼매도와 똑같아 보이지만, 맑은 색채가 더해져 훨씬 부드럽고 편안한 그림이 되었지. 이렇듯 화가에 따라 같은 주제라도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그림이 나온단다! -
▶(위)유숙, ‘오수삼매도’, 종이에 수묵, 40.4X28.0cm, 간송미술관
▶(아래)백은배, ‘좌수도해도’, 종이에 담채, 31.0X51.0cm, 국립중앙박물관
[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유숙의 ‘오수삼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