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유숙의 ‘오수삼매도’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기사입력 2010.06.25 10:39
  •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은 누굴까? 키 큰 농구 선수나 격투기 선수? 덩치가 산만 한 역도 선수? 아니, 바로 등을 구부린 이 사람이야. 한 스님이 세상이 좁다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어. 몸을 구부렸는데도 화면이 꽉 찼지. 스님을 만나러 그림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세상에서 가장 깊은 잠

    이렇게 쪼그리고 자는 잠을‘고주박잠’이라고 해. 고주박이 뭐냐고? 땅에 박힌 채 썩은 소나무 그루터기를 말해. 스님이 웅크린 모습과 비슷하지? 이 그림 제목은 ‘오수삼매도(午睡三昧圖)’야. 중인 출신으로 도화서 화원을 지낸 유숙(1827~1873년)이란 화가가 그렸지. 유숙은 그림 솜씨를 인정받아 임금의 초상인 어진도 세 번이나 그렸대.
    그림 제목인 ‘오수삼매’는 ‘낮잠에 푹 빠졌다’는 뜻이야. 정말 스님은 달콤하게 자고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불편하기만 한데.

    자세한 얼굴 묘사

    스님 머리 모양이 아주 예뻐. 달걀처럼 갸름하잖아. 그뿐이 아니야. 이마도 넓고, 귀도 길쭉하고, 눈썹도 짙어. 제법 잘생긴 스님이지만 젊은 스님은 아니네. 나이 든 분이 이렇게 자고 있으니 더욱 안타깝지.

    이번에는 발가락을 볼까? 신발 앞창이 툭 터져 발가락이 모두 삐져나왔어. 궁색한 형편이 그대로 드러났지. 그래도 수행으로 다져진 몸이야. 스님은 두 손을 얌전히 무릎에 모으고 그 위에 얼굴을 살짝 묻었어. 그러고는 잠에 빠져들었지.

    화가는 스님의 얼굴과 몸은 대체로 자세히 묘사했어. 하지만 옷은 누더기 이불을 덮어 놓은 듯 굵은 선으로 대충 그렸어. 세속적인 삶에는 별 관심 없는 스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지.

    ▶먹의 농담을 살린 표현

    가운데 늘어뜨린 선은 아주 굵고 진해. 물을 많이 탄 먹을 붓으로 듬뿍 찍었어. 옛 그림은 화선지에 그렸잖아. 이렇게 하면 종이에 먹물이 스르르 번지는 효과가 나거든.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운 멋 가운데 하나지.

    오른쪽 선은 반대야. 붓에 먹물을 빼고 옅게 그렸어. 굵은 가운데 선과 비교해 봐. 옅고 짙음이 뚜렷하지? 먹의 농담을 살리는 것이 우리 옛 그림의 특징이야.

    이렇듯 전체적으로 보면 가늘고, 굵고, 짙고, 옅음을 마음대로 구사했어. 물 흐르듯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붓질이야. 보통 솜씨가 아니라는 말이지. 느릿느릿하고 흐물흐물한 붓놀림으로 조는 스님을 깨우지 않으려는 배려 아닐까?

    ▶같은 듯 달라! 

    오수삼매도는 달마 스님이 갈댓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는 모습을 담았어. 백은배(1820~?)의 ‘좌수도해도’를 볼까? 오수삼매도에 나오는 스님과 똑같은 자세로 잠든 채 강을 건너고 있어. 갈댓잎과 바다를 빼면 오수삼매도와 똑같아 보이지만, 맑은 색채가 더해져 훨씬 부드럽고 편안한 그림이 되었지. 이렇듯 화가에 따라 같은 주제라도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그림이 나온단다!


  • ▶(위)유숙, ‘오수삼매도’, 종이에 수묵, 40.4X28.0cm, 간송미술관

    ▶(아래)백은배, ‘좌수도해도’, 종이에 담채, 31.0X51.0cm,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