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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8시 20분 서울 서초동 A초등학교 앞 도로에 '○○학원'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18인승 노란색 승합차가 멈춰 서고 문이 열리자 가방을 멘 초등학생 10명이 차례로 내렸다. 학생들은 20m 앞 정문을 통과해 학교 교실로 들어갔다. 이날 학교 앞은 학생들을 단체로 태운 승합차 10여대와 자녀들을 등교시키는 학부모들의 승용차 40여대로 붐볐다.
노란색 승합차들은 자녀들의 안전한 통학을 위해 학부모들이 발벗고 나선 일종의 '자구책(自救策)'이다. 가까운 동네에 사는 학부모끼리 돈을 모아 승합차를 빌린 뒤 자녀들을 공동으로 등·하교시키고 있다. 공동 통학을 위해 빌리는 차량은 사설 학원 버스나 유치원 버스들이다. -
승합차 운전기사 조모(51)씨는 "우면동과 포이동 주택가에 사는 아이들 13명을 일일이 집앞을 돌며 태워 등교시키고 있다"며 "수업이 끝난 학생들을 하교시킬 때도 집 앞에 내려준다"고 했다. 조씨는 "집에서 학교가 멀어서 승합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마을버스로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인데도 승합차를 이용하는 집도 꽤 있다"고 말했다. 단지가 큰 아파트는 승합차가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태우거나 내려주고, 작은 단지 아파트는 한 군데에서 학생들을 모아 태우거나 내려준다.
이날 하교 시간(낮 12시 30분~오후 2시)이 되자 노란색 승합차들이 다시 학교 주변에 나타나 대기하다가 수업을 마치고 학교 밖으로 나오는 학생들을 태워 갔다.
노란색 승합차는 이 학교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스쿨버스'로 불린다. 이 학교는 국립이어서 학교가 운영하는 스쿨버스가 없다. 대신 학원 승합차가 학생들을 안전하게 실어나르면서 학교 버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머니 김모(38)씨는 "아이를 매일 학교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힘들고, 혼자 버스나 전철을 태우는 것도 위험한 것 같다"며 "학기당 50만원 정도 돈이 들지만 아이 안전을 생각하면 비싸지 않다"고 말했다. 정모(55)씨는 "초등학교 1학년 조카 아이가 평소에는 스쿨버스로 통학하는데 금요일은 방과 후 학교 수업이 있어 맞벌이하는 부모 대신 조카 아이를 데리러 간다"며 "요즘 학교 운동장에서 초등학생을 납치·성폭행한 김수철 사건 때문에 시끄러운데 스쿨버스가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학교도 경비도 믿을 수 없어… 우리가 돈 모아 승합차로 등교시켜요"
양모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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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 안전통학 자구책 “이번 사건 보고 가슴 철렁 아이 생각하면 비싸지 않아”